의사소통 중심 교육 방향은 맞지만 너무 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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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영 한국외대 영어교육과 교수 |
1990년대부터 불었던 세계화 바람을 타고 영어교육은 듣기·말하기 중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장은 입시의 중압감으로 의사소통이 중심이 되는 수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에 새 정부 들어서면서 국가 차원에서 추진은 않기로 했지만 몰입교육이 거론되었는데 의사소통 중심 교육의 심화·확대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방향성은 맞는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영어교과를 넘어 타 교과에까지 이를 확대한다는 이야기인데, 말레이시아의 경우 초등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영어로 가르치도록 했다. 말레이시아는 영어교육에 관한 한 아시아지역에서 가장 우수한 곳 중 하나임을 볼 때 몰입교육이 영어 구사력 향상에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말레이시아처럼 수학과 과학 등의 과목으로 국한해 영어로 가르쳐 보는 것은 좋은 시도라 생각한다.
다만 우리와 같은 우랄 알타이계인 핀란드는 문제 제기 후 15년 이상 준비해 지금 영어교육의 효과를 보고 있다. 교사는 어느 순간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사범대에서 4년간이나 교사로 훈련받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영어만 잘 구사한다고 시험 한 번에 임용을 하는 것은 마치 원어민이 영어를 훌륭하게 구사하기에 무자격자임에도 임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으며, 우리는 작년에 무자격 원어민에 대한 사회적 이슈를 기억하고 있다.
이길영 한국외대 영어교육과 교수
국민 동의없이 일방 강요… 탁상공론의 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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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희 한글문화연대 대표 |
인수위는 영어 사교육비를 절감하고 조기유학 등으로 야기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중등 수업 중 국어나 국사 같은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방법을 제시한 바 있으나 다행히 철회됐다. 우리 교육의 지상 목표가 오직 영어란 말인가. 광적인 영어 숭배로 교육의 근본을 뒤흔들 이러한 발상이 어찌 우리 핵심 교육 방안의 하나라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영어몰입교육은 일선 교육 현장의 현실을 망각한 탁상공론이었다.
국민과 학생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도출된 이 방안은 학부모, 교사, 학생은 물론 모든 사회 구성원을 불안·초조로 허덕이게 했다. 영어 하나를 잘하면 곧 부강한 국가가 되고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낭비, 양극화, 영어 만능주의, 교육의 질 저하, 국가의 정체성, 민족의 정체성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문제점을 묻어두고 그저 피상적인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면서 우리와 자녀들을 그 위험한 실험대로 내몰겠다는 말이 아닌가.
또 뒤로 밀려나는 우리 국어교육은 대체 어쩌겠다는 말인가. 실제로 영어가 필요한 사람은 소수다.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영어 수요의 수준과 범위를 꼼꼼히 조사하고 그 대책을 강구해도 늦지 않은 것이다. 이 정책을 서두른 사람들은 대다수 국민의 고충을 외면하고 있다. 영어를 잘하는 국가가 잘 먹고 잘 산다는 주장 또한 터무니없다. 영어 실력 향상이 국가 생존의 필수조건인 것처럼 밀어붙이는 자본 논리가 지금 우리의 교육현장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
고경희 한글문화연대 대표
싱가포르·日 등 亞 국가선 공교육이 먼저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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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자 서울 매원초등교 교장 |
많은 학자들은 영어교육의 성공 요인은 사춘기 이전에 실시해야 한다는 시기적인 문제를 들고 있다. 또 언어의 유창성에 기반을 두고 가능한 한 많이 영어몰입 분위기를 조성해 학생들에게 노출시켜 주는 환경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영어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인식에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영어가 경쟁력’이라는 세계의 흐름에 맞춰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도 현재 초등학교 공교육에서 ‘이머전(영어몰입)교육’을 도입하고 있다.
본교의 영어몰입교육 프로그램은 ‘균형 잡힌 국제적 리더 양성’으로, 영어가 학습의 목적이 아니라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몰입식 영어수업은 많은 세월 동안 방황해 왔던 영어교육이 내용중심, 과제중심, 주제중심 교실수업활동을 기반으로 아침 수업 시작부터 점심시간, 방과후 하교지도까지 담임교사와 원어민 교사가 함께한다.
본교는 영어몰입교육을 실시할 경우 학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학부모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입학할 당시 영어교육에 대한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1학년 때에는 수준별로 그룹을 편성해 1년간 눈높이에 맞춘 교육과정 운영으로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시켜 2학년 이후에는 일반적인 그룹으로 수업하고 있다. 그 결과 본교는 학부모의 만족도가 점차 상승해 신입생모집에서 높은 경쟁률을 보이면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전신자 서울 매원초등교 교장
현장 영어 교사들의 창의적 연구 지원 뒷전 “답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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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전국영어교사모임 사무총장 |
교육과정의 정상화라는 측면에서 기존 교육과정의 연계성과 각 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인지 및 정서적 발달 단계에 따른 위계적 내용적, 배치를 무시하고 일반과목을 영어로 수업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개별과목을 영어수업화하는 과정 속에서 불완전한 영어를 통한 개별 교과의 전문적이고 심도 있는 지식체계 전달 및 이해를 저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즉 극단적으로 모든 교육과정의 과목이 영어 한 과목으로 대치될 수 있는 기형적 교육과정 실현의 가능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이라는 것이 영어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한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대학교에서의 영어 전용 강의 진행으로 야기된 많은 문제점 등이 고스란히 재현될 것이고 현실적으로도 교사 수급의 실현 가능성에서도 차기 정부의 영어 몰입교육정책은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지금 영어교육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열정과 사명감을 갖고 교육에 임하는 영어교사들에게 입시와 업무에 매몰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학생들에게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교육과정에 의해 기본적인 영어의 언어적·문화적 소양을 길러줄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다. 모든 학생들에게 영어 하나만을 위해 목숨 거는 환경을 만들라고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학교 업무와 반복되는 입시 위주의 보충수업에 지친 영어교사들이 더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고 학생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제도적·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것이지,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획일적 영어교육을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업무적 부담 그 이상은 아닐 것 같다.
이동현 전국영어교사모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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