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화시킨 패스트 트랙부터 선행"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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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회의원과 장관 등 고위공직자들이 주로 이용해온 인천공항 귀빈실 무궁화룸 전경 |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회의원과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들이 주로 사용해온 공항 귀빈실을 기업인 1000여 명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발표가 있은 뒤부터다. 공항주변에선 차기정부의 친기업 정서에는 공감하면서도 공적으로 사용하는 공항 귀빈실을 이렇게까지 개방해야 하느냐는 반발 기류가 감지된다.
기업인의 귀빈실 이용확대조치에 앞서 정부가 사회적인 위화감 조성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외국 귀빈이나 기업인 등에게 입출국 절차를 간소화해 편의를 제공하는 서비스) 제도부터 먼저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바빠진 귀빈실과 공적 특혜 논란=인수위가 제시한 공항 귀빈실 이용대상 기업인수 1000여명을 감당하기엔 인천공항 귀빈실 규모와 담당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는 현재 설치돼 있는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동편 귀빈실이 기자회견장을 포함해 모두 7개로 최대 110여명만 수용할 수 있고, 6월 완공 예정인 서편 귀빈실도 현재 귀빈실의 절반 크기에 불과한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인천공항공사는 여객터미널 중앙에 150석~200석 규모의 기업인 전용 오픈 라운지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김영준 인천공항 의전팀장은 “오는 3월에 브리핑룸과 각종 편의시설 등을 갖춰 문을 열면 기업인 전용 귀빈실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럴 경우 현재 인수위가 제시한 1000명 기업인을 어느정도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건설교통부도 오는 16일 관계기관 종합대책회의를 갖고 귀빈실 확대 운영과 관련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출입국이 잦은 기업인들에 대한 의전도 고민이다. 기업인의 귀빈실 사용이 허용돼 기업인 1명당 1년에 평균 3차례 정도 해외를 나갈 경우 의전 횟수는 3000건이 된다. 지난해 인천공항 귀빈실이 담당한 의전 횟수가 2711건인 것을 감안할때 업무량이 두배로 폭증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인천공항 귀빈실 의전담당 직원은 7∼8명. 하루 평균 10명~15명의 VIP에게 의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방침대로라면 인원 확충이 불가피하다.
반면 김포공항의 경우 이미 지난해 귀빈실 유료화를 선언하고 일반인들에게까지 문호를 개방한 상태라 파장이 덜한 편이다.
김용문 김포공항 의전팀장은 “지난해 유료로 귀빈실을 사용한 기업인들의 상당수가 무료로 장관급에 준하는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며 “하지만 시설과 인력확충은 귀빈실 이용객 추이를 봐가면서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귀빈실 확대 운영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인들에게 공적 특혜를 주는 것이 과연 합당하냐는 비판에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시민단체인 ‘기독교사회책임’ 지난 8일 인수위 조치와 관련,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기업인에게 주는 특권이 부유층에게 주는 특권으로 비쳐지게 되면 사회적 위화감이 커질 수 있다”며 기업인의 귀빈실 이용 계획을 재고해줄 것을 요청하는 등 일부에서는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
◆백지화시킨 ‘패스트 트랙’부터 풀어야=당초 인천공항공사는 올 1월1일부터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승객들 가운데 1등석 항공권을 가진 탑승객들이 별도의 통로에서 출입국 수속을 받을 수 있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었다.
이 제도는 귀빈실 직원의 대리수속과 귀빈실 사용이 허용되지 않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인들이 귀빈실 이용객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인천공항공사가 제도 시행을 위해 1년6개월을 공들인 이 조치는 국민적인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국가정보원 등 일부 공항상주기관의 반발에 부딪혀 지난 연말 갑자기 백지화됐다.
항공사 한 관계자는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주요 공항상주기관들이 공항 서비스 질을 높이고 더 많은 국민이 신속한 출입국 수속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서 패스트 트랙 도입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는데도 불구 국정원이 반대하는 바람에 계획 자체가 무산됐다”면서 “기업인 1000명에게 귀빈실 사용을 확대한다면 패스트 트랙도 당연히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업인들은 귀빈실 이용보다 패스트 트랙을 통한 출입국 절차 간소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한 관계자는 “외자 유치 등을 위해 외국 기업인을 데려올 때 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간소화해 주면 외국인에게도 좋은 인상을 줘 투자유치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면서 “귀빈실 이용 확대 조치에 앞서 패스트 트랙 서비스 제한조치부터 먼저 풀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도 “그동안 국민적인 정서상 특혜로 비춰져 도입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미 세계 유명 공항에서 공항 차별화 정책의 하나로 패스트 트랙 등 프리미엄 서비스를 시행중이고, 항공사별로도 1등석과 비즈니스석,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손님들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도입을 추진해볼만 하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1등석과 비즈니스석 이용자에게 패스트 트랙 등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곳은 영국 히드로 공항을 비롯, 태국 스완나폼공항,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공항,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 네덜란드 스키폴공항,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스위스 취리히 공항, 홍콩 첵랍콕 공항 등이 있다.
인천공항=박병진 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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