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닷컴] 함소원의 '좌충우돌 중국 활동기' ⑦
모든 사람들이 정석대로 사는 것은 아니다.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이 대기업이나 교수가 아닌 떡볶이 집을 한다던가, 중학교만 나왔지만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업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이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일 거다.
사실, 연예인은 소속 기획사가 있고, 매니저를 통해 스케줄 등을 체크하는 것이 수순이다. 하지만 불과 몇개월 전까지 나에게는 소속사도 매니저도 없었다.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일구어 나가는 것이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 라고 말하는 용기 있는 결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의 연예인은 아닌 것은 맞는 것 같다.
소속사와 매니저도 없이 중국에서 어떻게 활동했느냐고? 보통 중국에서 이메일과 전화로 스케줄섭외가 들어온다. 전화로 왔을 때는 내가 간단한 중국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측에서는 내가 함소원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매니저인줄 알고 계속 스케줄과 금액 등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 굳이 내가 누구라고 밝히지 않고 매니저인척할 때도 많다. 내가 함소원이라고 하면 중국쪽에서 불편해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매니저인 척 하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 일의 진행이 빨라진다.
한번은 항상 혼자서 중국에 가니깐 행사 관계자가 매니저는 어디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여서 안 왔다고 말했지만, 서로 친해지고 나서는 사실은 매니저가 없다고 솔직하게 말해버렸다. 그랬더니 매니저 없이 혼자 다니는 내가 신기한지 엄청 놀라면서 한국에는 원래 매니저가 없느냐고 묻는 것이다. 한국도 매니저가 있지만, 나는 그냥 혼자 다닌다고 말했더니 고개를 갸웃거려 웃음만 지었던 기억이 난다.
혼자 다녀서 편한 점도 있지만, 혼자이기 때문에 두배로 힘들 때가 있다. 사람들 물건 챙기는 것, 코디나 사진작가 분의 비행기표 확인하는 것 등 매니저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행사장에서 다른 팀들은 다 매니저도 있고 통역관도 있어서 그런지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오직 혼자니 분장 팀이나 영상 팀에서 호텔에 물건을 두고 가면 내가 가져다 줘야 한다. 우리팀원들은 말이 통하지 않으니깐 그나마 약간의 중국어를 할 수 있는 내가 움직여야 한다. 공연해야지 팀원들 챙겨야지 통역관 역할도 해야지. 때로는 13번, 24번, 43번의 자아들을 꺼내서 일을 시키고 싶다.
이렇게 하루 종일 바쁘게 뛰어다니고 나면 아주 가끔 허무감이 밀려온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잘 끝냈는데 마치 내가 한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허공에 붕 떠있는 느낌이랄까. 공연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아마도 혼자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의욕에 넘친다. 앞으로 중국에서 펼쳐질 미래의 모습에 설렌다. 사랑의 열병을 앓는 것처럼 나는 앓는다. 설렘과 걱정, 기대와 충만한 의욕이 마구 뒤섞여 대단한 열병을 앓고 있다.
영화 일포스티노의 우편배달부 마리오가 아름다운 여성인 베아트리체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져버렸을 때, 네루다를 찾아가 이런 말을 한다.
“전 사랑에 빠졌어요. 치료 약은 없어요. 치료하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 전 사랑에 빠졌어요.”
나도 마리오처럼 사랑에 빠진 걸까. 치료하고 싶지 않고 계속 아프고 싶은 병, 중국에 대한 열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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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 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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