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도 앤서니 아이아코카(사진)라는 본명을 가진 그는 1924년 펜실베이니아 앨런타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니콜라 아이아코카는 돈을 벌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 결혼하고 가족을 부양하고자 핫도그 가게를 열었다.
몇 년 후 핫도그 사업으로 모은 돈과 집을 팔아 렌터카 회사를 차렸고, 이것이 아이아코카의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아이아코카는 어린 시절부터 차를 많이 접하면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됐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헨리 포드였을 정도로 포드차에 애착을 가졌다. 포드사에 입사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발음과 기억이 쉬운 리(Lee)로 바꿀 정도였다.
1946년 프린스턴대학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딴 그는 포드사에 취직해 32년간 근무한다. 그가 재직하는 동안 ‘머스탱’을 출시했으며 1970년 회장직에 오른다. 그러나 그는 차기 회장이 될 헨리 포드2세와의 불화로 1978년 퇴임한다.
포드를 떠난 그는 1978년 크라이슬러로 출근하는데, 당시 35억달러의 적자와 누적된 재고, 부패한 간부와 고질적인 노사분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특단의 조치로 계열기업 중 21개를 정리하고, 35명의 부사장 가운데 33명을 해고한다.
TV에 출연해 대국민 호소를 하는 등 각고의 노력으로 정부 구제금융 20억달러를 얻어 크라이슬러 재건작업을 시작한다. 회사 살리기 전략의 하나로 다른 메이커와의 차별화를 위해 파격적인 대국민 캠페인을 시작한다. 업계 최초로 새 차를 산 고객에게 30마일 또는 1600㎞를 달린 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즉각 환불해 주고 보증기간도 5년 또는 5만마일로 바꾸었다.
이 조치와 함께 K프로젝트라는 신차 개발에 착수해 1981년 고연비의 전륜구동차인 K카를 선보인다. K카는 자동차 전문지에 ‘올해의 차’로 선정되고 첫해에만 50만대가 팔려나갔다.
1차 석유파동으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크라이슬러는 기록적인 흑자를 냈다. 1983년 9월 상환기간이 7년이나 남은 상태에서 정부 융자금 중 15억달러를 일시에 갚아 버린다. 융자금을 갚고도 크라이슬러는 당해 7억달러의 순이익을 남겼다.
아이아코카는 5년 만에 정리해고한 근로자들을 다시 불러들였고, 5% 삭감했던 근로자의 연봉도 원래 수준으로 되돌려놓았다.
크라이슬러 살리기에 성공한 그는 1992년 뿌듯한 마음으로 크라이슬러를 떠났으며, 1997년에는 20년간 꿈꿔온 전기자전거를 생산판매하는 EV글로벌 모터스를 설립했다. 1998년에는 ‘쿠쿠루’라는 체인식 레스토랑을 설립해 경영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도움말:삼성교통박물관〉
김기동 기자 kid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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