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주목,이사람]김형중 조선대교수 "인문학은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지혜”

입력 : 2007-11-15 14:23:00 수정 : 2007-11-15 14:23:00

인쇄 메일 url 공유 - +

김형중(39) 조선대 교수는 광주의 유일한 인문사회과학 서점인 ‘청년글방’ 운영자로 유명했다. 김 교수가 폐업 위기에 몰린 청년글방을 인수한 것은 서점이 문을 연 지 10년째 되던 해인 1998년. 대학시절 자신의 꿈과 확신과 친구를 키웠던 청년글방이 사라질 수 있다는 말에 전남대 조교 퇴직금을 몽땅 털어넣었다.
그는 2005년 여름 광주문화연대에 운영권을 넘기기 전까지 7년간 서점을 문화사랑방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매주 문화이론과 영화 등 4개의 공부모임과 매달 강연회, 공연과 같은 문화이벤트를 열었다. 그렇지만 “인문학은 돈이 안 돼”라는 세태 변화는 녹록지 않았다. 결국 5000원에서 1만원까지 회비를 꼬박 내준 조합원들에 대한 미안함을 뒤로하고 광주문화연대에 공을 넘겼다. 1억원이 넘었던 빚을 그나마 2000만원으로 줄였다는 게 하나의 위안이었다.
그럼에도 청년글방은 김 교수에게 여전한 생활·연구·친목의 공간이다. 매주 한 번씩 청년글방에서 공간을 제공하는 8개 공부모임 중 영화세미나에 아내와 함께 참석한다. 20살 된 대학 신입생부터 70대 할아버지까지, 일용직 노동자부터 대학교수 등까지 머리를 맞대고 각자의 의견을 치열하게 나누는 모임이다. 지난달 8∼12일 인문주간에는 청년글방이 전남대 인문학연구소와 함께한 ‘문학사회를 위한 골목길 인문강좌’를 개최했다.
그는 “그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었다”고 말했다. 서동욱(서강대 철학과 교수), 고미숙(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박만우(2006 부산비엔날레 예술감독), 김연수(소설가), 이종민(전북대 영문과 교수) 등 당대 최고의 문화예술인이 서울에서 내려와 지역 주민·학생들과 이야기와 술을 나누면서 일상에 신선한 자극을 줬다는 느낌 때문이다. 청년글방 골목길을 가득 메운 청중과 열의에 가득 찬 강사들의 눈빛에서 그는 인문학의 여전한 효용과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는 “매일매일이 그때와 같은 분위기였다면 결코 인문학의 위기란 말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문학의 효용을 돈으로 따져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인문학은 근본적으로 교양이자 생활문화이고 지혜일 뿐이다. 좀 더 세태와 타협하자면 ‘게임과 영화 등 최고 부가가치를 가진 창조적 문화콘텐츠의 원천’으로 불릴 수도 있겠다. 드라마 ‘태왕사신기’나 리니지와 같은 게임물이 모두 인문학의 창조성에 기대고 있다. 장기적으로 확대하자면 사회통합비용을 줄이는 데 일조할 수도 있다. 지역 갈등과 외국인노동자 문제 등 제도로는 바꿀 수 없는 인식 변화를 인문학은 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인문학의 본질은 아니다.
“삶의 질 차원이라고 봅니다. 인문학적 지식이 많아지면 삶이 매우 풍요롭고 윤택해집니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낙엽을 보며 ‘치우는 데 돈 많이 들겠는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관련 시 구절과 그림을 떠올리는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소설 100편을 읽으면 최소 100명의 삶을 경험한 셈입니다. 누가 더 올바른 판단을 할까요?”
분명 효용성만 따지자면 인문학은 자연과학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황우석과 같은 괴물 자연학자와 ‘부도덕하더라도 잘살게만 해 달라’는 주문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김 교수는 “올림픽 사격경기 중계방송을 보다가 한 루마니아 사격선수가 경기 도중 짬이 나자 시집을 꺼내 읽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면서 “삶의 질은 경제력이 아닌 정서와 문화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문학을 살리는 길은 전체 국민의 교양·문화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있다고 봤다. 인문학을 효용성의 잣대에 맞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과만 따지는 풍토는 위정자들도 마찬가지. 광주를 ‘문화중심도시’로 만든다며 수조 원이 들어가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세운다고 난리법석이다. 지난달 일주일간의 인문강좌에 든 예산은 총 2억원. 이 같은 인문강좌를 한 달에 1번씩 10년간 계속한다면 240억원이 소요된다는 얘긴데 이러한 강좌나 골목길 곳곳에 위치한 풀뿌리 문화공간, 토론모임 등을 지원하면 문화도시는 저절로 이뤄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 교수는 “인문학자로서 그리고 문화운동가로서 인문학이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니라 생활과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지혜라는 점을 적극 알려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광주=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이주빈 '신비로운 매력'
  • 이주빈 '신비로운 매력'
  • 한지민 '빛나는 여신'
  • 채수빈 '여신 미모'
  • 아일릿 원희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