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는 풍부한 향의 '시라즈'가 좋아 “옷 색깔이 참 곱네요.”(필자)
“정말, 버건디 레드야.”(친구)
“버건디 레드? 그건 프랑스의 유명한 레드 와인 산지인데….”(필자)
“그래. 난 와인은 잘 모르지만 여기선 이 색깔을 이렇게 부르던데…”(친구)
영국에 살 때 옷 색깔을 놓고 친구와 나눈 대화다.
와인에 문외한인 친구는 버건디를 색의 한 종류로 알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보르도와 함께 양대 와인 산지로 꼽히는 부르고뉴(영어명 버건디)의 레드 와인은 빛깔이 곱기로 유명하다. 이 아름다운 빛을 만들어주는 적포도 품종이 바로 ‘피노 누아(Pinot Noir)’이다.
‘피노 누아’는 다른 품종에 비해 맑고 영롱한 밝은 루비빛이 일단 애주가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숙성이 덜 되었을 때는 체리, 딸기, 라즈베리 등의 산뜻한 붉은 과일 향이 코끝에 맴돈다. 좀 더 숙성이 되면 이런 상큼한 과일 향이 삶은 양배추 향이나 버섯 냄새, 가죽 냄새 등으로 변하면서 마시고 난 뒤 좀 더 길고 섬세한 여운을 준다.
◇레드 와인 |
타닌이 강한 보르도나 과일 맛이 풍부하고 진한 뉴월드 와인 스타일에 익숙한 사람은 처음 이 와인을 접할 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게다가 이 품종은 병충해에 약해 재배하기도 까다롭고 생산량도 그리 많지 않다. 값도 비싼 편이라서 초보자들에게 친해지기 쉬운 품종이 아니다. 하지만 일단 ‘피노 누아’의 매력에 빠지고 나면 좋아하는 와인을 말할 때 주저 없이 이 품종을 꼽을 정도로 흡인력이 강하다.
이처럼 ‘피노 누아’가 까다로운 입맛의 와인 애호가들에게 인기를 얻는다면 초보자나 젊은 세대에게는 풍부한 향과 맛을 지닌 ‘시라즈(Shiraz)’를 소개하고 싶다.
프랑스의 오래된 와인 산지인 론(Rhone) 지역은 주 품종인 ‘시라’로 과거에 가장 좋은 품질의 프랑스 와인으로 로마 교황청에 와인을 진상하던 산지이다. 이 지역의 시라가 호주로 건너가면서 그곳의 기후와 토양에 맞게 시라즈라는 품종으로 재탄생했다.
그냥 이름만 살짝 달라진 것이 아니라 와인 스타일도 차이가 난다. 타닌이 강하고 직선적인 스타일의 시라에서는 후추와 같은 자극적인 스파이시 향에 블랙베리와 같은 검은 과일 향과 더불어 아스파라거스나 피망 등의 야채 향이 감돈다.
그에 비해 ‘시라즈’는 타닌이 있지만 부드럽고 입 안에서 꽉 차는 바디감에 정향(클로브)이나 감초 같은 스파이시한 향이 코끝에서 맴돈다. 거기에 풍부한 햇살을 받아 농익은 과일 향이 진하게 풍겨나오고 당도가 높아 알코올 도수도 높게 나오는 편이다.
오크 처리를 통해 토스티한 향이나 초콜릿, 바닐라 풍미도 잘 나타나며 시중에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에 마실 만한 와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시라 100%로 만든 와인은 그릴에 구운 고기 요리와 잘 어울리고, 론 지방에서 시라에 다른 품종들을 블렌딩해서 만든 ‘코트 뒤 론(Cotes du Rhone)’ 같은 스타일의 와인은 스파이시한 향이 강한 한국 요리에도 무난하게 잘 어울려 한식을 먹을 때 자주 곁들인다.
WSET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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