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비와 태풍 등으로 배추 무 등 채솟값 강세가 11∼12월 김장철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뛰는 채소값 때문에 김장 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여기에 무, 배추는 물론 고추, 마늘 등 김장에 반드시 필요한 양념채소의 작황도 부진해 재배 농가들은 시름에 잠겨있다.
실제로 지난 13일 오후 고랭지 채소재배지로 잘 알려진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에서 만난 손행수씨(61.사진)는“배추 작황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며 한숨 지었다.
올해로 배추 농사 15년째인 손씨의 배추밭은 이가 빠진 것처럼 군데군데 텅 비어 있었다. 배추들은 말라 비틀어져 마치 퇴비를 뿌려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배추는 이처럼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심한 악취 때문에 손으로 코를 틀어막고 배추 밭에 들어서자 물러 터진 배추가 상당량에 달했다. 구멍이 송송 뚫린 배춧잎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손씨는 “10월 초 출하해야하는 고랭지 여름 배추가 이상고온과 잦은 비로 성장을 제대로 못해 수확량이 작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며 “일조량도 크게 부족해 무름병 등 병충해까지 발생, 품질도 무척 나빠졌다”고 말했다. 손씨의 고민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김장용 가을 배추 또한 궂은 날씨로 인해 성장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
“김장용 배추를 11월 중순쯤 수확하기 위해서는 7월 말에서 8월 초 씨를 뿌려야 한다”는 손씨는 “하지만 올해는 비가 잦은데다 양도 많아 20여 일 늦게 씨를 뿌려서, 속이 꽉 찬 배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울상을 지었다.
경기 지역 채소농가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천 농업기술센터 이석형 농촌지도사는 “10월 1일 기준으로 배추와 무의 성장과정을 작년과 비교하면 크기가 2㎝가량 작게 조사됐다”며 “이는 이상 고온과 잦은 비가 원인이다”고 말했다.
◆뛰는 채소 가격= 14일 농협 하나로 마트에 따르면 배추 1통 가격이 2950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의 2000원에 비해 47.5%, 무 1개는 2350원으로 역시 지난해 2000원에 비해 17.5%나 높았다. 풋고추(100g)는 지난해 300원이던 것이 올해는 1300원으로 무려 333%나 각각 올랐다. 농협 하나로클럽 이원일 팀장은 “채소류는 산지에서 출하되는 물량이 줄어들고 있는데 반해 수요는 늘어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르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편, 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10월 채소관측 월보’에서 이달 상(上)품 10㎏ 배추 도매가격이 6500원 정도로, 지난해 같은 달 평균 가격(2784원)의 두 배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5년간 10월 평균 가격인 4742원에 비해서도 37% 비싼 수준이다.
김장에 주로 이용되는 가을 배추가 잦은 비로 생육이 부진해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16%, 평년보다 3% 줄어들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무값 역시 이달 출하면적이 5% 정도 줄어 상(上)품 18㎏당 도매가가 1만 원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보다 22% 오른 것이다. 고추·마늘·대파 가격도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연구원은 전망했다.
◆포장김치 업계 비상= 배추값이 ‘금(金)값’으로 치솟으면서 포장김치업계가 비상에 걸렸다. 김장철을 앞두고 포장김치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지만 궂은 날씨 영향으로 배추 수확량이 줄어들면서 물량확보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종가집 김치’를 판매하고 있는 대상은 올 여름 내린 잦은 비와 태풍 등이 배추 재배지역의 수확에 악영향을 끼치며 재배면적이 지난해 대비 30% 가까이 줄어들었다.
대상은 “하루 평균 주문받는 포장김치의 물량은 100여t 정도이지만 공급량은 70∼80t에 머물고 있다”며 “포장김치의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선정 김치’를 판매하고 있는 CJ제일제당 역시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대형 마트와 홈쇼핑 등을 중심으로 주문량이 작년보다 50% 이상 증가했지만 공급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일부 매장에선 제품 공급차질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채소류 작황이 크게 안 좋아 값싼 중국산 김치가 그 어느 때보다 판을 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김치수입량은 2000년에 473톤, 2001년 393톤, 2002년 1501톤, 2003년 2만8707톤, 2004년 7만 2605톤, 2006년 17만 7959톤 등으로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였다”며 “올해는 8월까지 12만 6726톤으로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영월= 김기환,민진기 기자 k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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