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경향이 심각해져 요즘에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내가 한 행동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남과 좀 다른 것’이라고 변명하는 유력인사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선 다른 행동을 하는 타인을 향해 잘못했다고 비난하는 교활함까지 엿볼 수 있다.
이들처럼 자신의 이해득실로만 ‘다르다’와 ‘잘못했다’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늘다 보니 진실과 거짓이 뒤죽박죽된 사회로 변해 버렸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양심 불량이 집행유예를 받으면서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상황에 따라 적군도 아군도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이 같은 이중적 잣대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이는 한국인 특유의 욕심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들은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배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세간의 말에서 우리 민족이 얼마나 욕심과 심술이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욕심이 많은 이들은 자신이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은 욕심이 많은 것이 아니라 강한 신념을 가졌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본능적 편견과 비정상적인 고정 관념을 가지고 상대적 가치와 절대적 가치를 판단한다.
그래서 사안의 본질과 수단이 무엇인지, 세상에서 변하는 것은 무엇이며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때그때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려는 생각과 절대적 가치보다 상대적 가치에, 혹은 내용보다 포장에 더 가치를 둔다.
요즘처럼 끝없이 추락하는 도덕성의 붕괴와 부패한 양심은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인간관계 망(network)을 파괴한다.
또 우리 사회의 진실과 거짓에 대한 판단의 잣대까지도 혼란에 빠뜨린다. 이 혼란은 우리로 하여금 ‘너와 내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나는 옳고 너는 잘못했다’라고 생각하거나 ‘나는 잘못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해괴한 이분법적 논리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얼굴이나 신체를 성형한 모습에서 자신감을 느끼거나 가짜 명품으로 치장해 자신의 콤플렉스를 감추는 태도, 가짜 학위를 가지고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포장해서 비뚤어진 욕망을 쫓는 인격적 장애인들을 양산하는 것이다.
이들 행태를 보면 변질한 양심이 건강하고 다양한 개성을 우롱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더욱이 거짓되고 변질한 개성이 권력과 이해득실 앞에서는 상황적 논리로만 적용되면서 언어와 행동을 왜곡해 표현하고 잘못된 행동까지도 정당화하는 슬픈 현실이 안타깝다.
양진규 명지전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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