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인도 승려였던 달마는 북위를 거쳐 쑹산의 소림사로 왔다. 당시 중국의 불교는 권력층과 결탁해 대중과 유리되었고, 승려들은 수행을 등한시했다. 이에 달마는 불교의 근본이 참선을 통한 깨달음이란 것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줬다. 9년간에 걸친 토굴에서의 면벽수행이 그것. 이에 많은 제자들이 달마를 따랐다.
달마는 면벽수행으로 몸이 쇠락했다. 이에 기력을 되찾기 위해 수련을 하게 됐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무예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 후 제자들이 무예를 수행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였고, 이것이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점차 다듬어지고 정교해져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소림사의 무술이 명성을 얻은 것은 당나라를 건국한 태종 이세민 때다. 당시 이세민은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뤄양에 왔다가 그만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때 소림사에서 무예가 가장 뛰어난 13명의 스님을 선발해 이세민 구출에 나섰다. 13명의 스님은 적진에 들어가 수십명의 병사들을 물리치고 이세민을 구출했다. 그 후 소림사 무술이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소림사의 무술은 일상생활에서 얻어진 것이 많다. 소림사 장경각 앞에 전시된 거대한 무쇠솥과 맷돌이 좋은 예다. 무쇠솥은 무게가 1300근(650㎏)이나 나가는데, ‘찬공’이란 무술은 이 솥에 밥을 짓던 기술이 발전해 만들어졌다. 이 큰 솥에 밥을 지은 후 주걱으로 섞는 과정에 만만치 않은 힘이 필요했고, 주걱을 돌리는 요령이 권법이 됐다는 것이다.
맞은 편에 있는 맷돌은 8명의 스님이 달라붙어야 돌아갔다는데, 지금은 어른 20명이 달라붙어도 돌리기 어렵다고 한다.
현재 소림사에는 200여명의 스님이 있다. 이 가운데 100여명은 방장과 함께 세계 각지를 돌며 순회공연을 벌인다. 나머지 100여명의 스님들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 쑹산의 깊은 곳에서 수행을 하고 있다.
스포츠월드 김산환 기자
[관련기사][SW뉴스①]중국무술의 본산 소림사에 가다
[관련기사][SW뉴스③]선종소림 음악대전, 세계 최대의 ''환상무대''
[관련기사][SW뉴스④]허난성 둘러보기, 룽먼석굴·운타이산 경이
[관련기사][SW뉴스③]선종소림 음악대전, 세계 최대의 ''환상무대''
[관련기사][SW뉴스④]허난성 둘러보기, 룽먼석굴·운타이산 경이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