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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를 눈으로 맡아봐!

입력 : 2007-09-11 13:35:00 수정 : 2007-09-11 13: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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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미술관 ''쉘 위 스멜''
전각종 냄새 시각적 이미지로 재현
향기는 기억에 뿌리박은 경험들과 함께 연상될 때 활발하게 작용한다. 마들렌 과자를 차에 적셔 먹다가 그 과자냄새로 어린 시절을 더듬어보는 남자주인공이 등장하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처럼 냄새는 우리 기억 속에 잠자던 이미지를 깨우는 열쇠다.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숨을 들이쉬듯 세상의 향기를 맡고 살아간다. 커피 향은 감정을 부드럽게 하고, 법당에 피어오른 향은 종교심을 일깨우며, 봄의 꽃 냄새는 생명력을 자극한다. 페로몬과 같이 구애의 미끼로써 성과 욕망의 중심에 위치하기도 한다. 향기와 냄새를 시각적 이미지로 재현해낸 현대미술 작품들은 그래서 복잡한 설명이 없어도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씨에서 오는 11월3일까지 열리는 기획전시 ‘쉘 위 스멜
◇박성원의 ‘판도라의 방’

(Shall We Smell)’전은 향기를 현대미술로 풀어 보는 자리다. 후각은 그동안 철학자나 과학자들에 의해 시각보다 신체성과 즉각성에 근거한 하류 감각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현대미술이 후각에 의미를 두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일방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에 비해 직관적이고 경계를 넘나들며 범주를 와해하는 후각의 속성은 포스트모더니즘적 감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관람객은 입구에 설치된 향수를 맡는 것으로 전시 관람이 시작된다. 박성원은 향수병을 확대하고 왜곡한 유리조각 작품들을 계단과 난간 위에 붙여 놓았다. 향수병 위에 투명하게 투사되는 빛은 그 자체로 향수의 메타포이면서 시적 감흥이다. 그 배경이 되는 벽면에는 유현미가 흐릿한 은빛 글씨로 향기와 관련된 시를 적었다. 향기의 순간성과 감각성, 모호한 실체는 시적 감정을 닮았다. 유현미는 향기의 이러한 시적 속성을 간파한 것이다.
옆 방에는 무용수의 몸짓을 향이 피어오르는 이미지처럼 묘사하고 소리까지 곁들인 강은수의 영상이 자리 잡고 있다. 무용수의 춤추는 이미지에서 출발한 일종의 사이보그 생명체 래링시안의 영상 이미지가 투사된다. 영상은 거대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반대편 벽에 반영된다. 관객은 자신의 피부를 스치며 지나가는 진동 소리와, 마치 향을 피워 올린 듯한 래링시안의 미세한 영상 움직임에서 코끝을 자극하는 냄새의 감각을 일깨운다.
다음 방에서는 이혜림이 샤넬, 디오르 등 유명 브랜드 향수병 안에 여성의 육감적인 신체 부위를 집어넣은 영상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상업적으로 소통되는 향수병 이미지 속에 담긴 여덟 종류의 파편화된 여성 신체들을 제시한다. 입술, 가슴, 엉덩이, 다리, 성기 등 잘려진 여성 신체 이미지는 사이버 문화에서 남성 욕망과 관음증적 환상을 실현하는 일종의 페티쉬(fetish)로 기능한다. 여성 신체의 상업화를 엿볼 수 있다.
김세진은 ‘당신에게 냄새와 향은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실시한 거리 인터뷰 자료를 토대로 영상작업을 했다. 성별, 나이와 상관없이 냄새에 대한 불안과 공포, 기쁨과 환희의 기억들은 축약된 텍스트와 함께 단편영화처럼 드러난다. 부친의 죽음과 병원 냄새, 지난한 삶의 여정과 여름날 습한 방 냄새 등 냄새란 무의식 속에 잠재하지만 특정 계기에 의해 떠오르는 트로마(trauma)와 같음을 시사한다. 사적이고 은밀한 개인의 이야기가 ‘냄새’라는 매개를 통해 전달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냄새풍경처럼 보인다.
리경의 작품은 구약시대 사람들이 가장 정결하고 향기로운 어린양과 같은 동물을 번제하여 그 연기 신호를 신에게 올려 보냄으로써 죄 사함을 기원하였다는 고대 후각의식에서 출발한다. 신은 그 연기를 흠향함으로써 기뻐하고 인간을 속죄하였다는 것이다. 속죄를 위한 이러한 향 공양은 신약시대로 넘어오며 예수라는 존재로 대체된다. 고대 신당과 같은 공간에 한 줄기 붉은빛이 투사되고 수초 동안 연기가 뿜어지면서 빛 사이로 드러나는 것은 바로 미켈란젤로가 보여주었던 예수의 피에타상이다.
김진란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만든 비누 관(棺)을 출품했다. 비누는 희생자들의 기름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무엇인가를 씻어내고 정화하는 데 사용되는 물건. 수용소에 끌려갔던 아들을 기다리면서 어머니가 불렀던 노래가 비누 향기와 함께 전시장에 퍼진다.
이 밖에도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 나오는 조향사의 방을 연상하면서 손정은이 만든 실험실, 꽃의 향기에 이끌리는 나비의 모습을 담은 대만작가 린지운팅의 인터랙티브 영상 작품, 김치 고깃덩어리 등 냄새나는 물건들을 전시하면서 잉카부족 등의 후각용어를 함께 보여주는 박상현의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코리아나미술관 유승희 부관장은 “후각은 시각에 비해 평가절하돼 왔다”며 “이번 전시는 인간의 본성과 문화, 시대정신을 ‘향과 냄새’라는 창틀을 통해 들여다보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02)547-9177
편완식 문화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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