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대표작 ‘외과실’은 보수적인 시대의 금기시된 사랑을 핏빛 에로티시즘으로 승화한 작품이다. 외과의사 다카미네는 9년 전 우연히 마주친 뒤 줄곧 연모해 오던 기후네 백작부인을 수술한다. 기후네는 혼몽 상태를 두려워해 한사코 마취를 거부한다. 맨정신으로 수술을 받던 기후네는 다카미네의 손에 들린 메스를 잡아채 자신의 가슴을 찔러 죽어가면서 “당신은, 당신은 나를 모르겠지”라며 아쉬운 사랑을 고백한다. 다카미네 역시 “잊지 않았습니다”라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때 두 사람의 모습이란 마치 주위에는 하늘도 땅도 없고 그들 단 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113쪽)
이 소설집에는 이 밖에도 특유의 초현실적인 작풍을 보여주는 ‘고야성’ ‘눈썹 없는 혼령’ 등 4편이 수록됐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교카는 가부장적인 현실에 눌려 비극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을 즐겨 그렸다. 그는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 나쓰메 소세키의 문우였으며 ‘라쇼몽’으로 유명한 아쿠타가와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심재천 기자 jay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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