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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선의 세계오지기행]<4>중국 구이저우성 자오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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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08-31 15:11:00 수정 : 2007-08-31 1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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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따운 둥족소녀 天樂之音에 취해… “사흘 맑은 날이 드물고, 삼십 리 안에 평지가 없고, 사람들 주머니에는 서푼 돈도 없다.”
중국 사람들은 구이저우(貴州)성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산지가 전체 면적의 87%인 구이저우성은 중국에서도 오지 중 오지다. 전체 인구의 약 40%는 소수 민족들이다. 특히 후난(湖南)성과 광시좡족(廣西壯族)자치구 경계에는 여러 소수 민족들이 모여 있어 수시로 다양한 축제가 벌어진다.

구이저우성의 주도인 구이양(貴陽)에서 동남쪽으로 약 500km 떨어진 곳에 있는 자오싱(肇興)은 소수민족인 둥족(?族)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곳이 유명한 것은 둥쭈다거(?族大歌)라 불리는 민속음악과 목조 건축물 때문이다.
자오싱을 찾아가는 길은 중국의 오지답게 길고도 험했다. 굽이굽이 산길을 수없이 지나고, 높이를 알 수 없는 다랑논도 지겹게 보았다. 한 구비 산모퉁이를 돌자 영영 나타날 것 같지 않던 둥족 자오싱 마을이 드디어 나타났다.
이곳에는 외지인들이 마을을 찾으면 술부터 권하는 풍습이 있다. 이 풍습은 인근에 사는 먀오족(苗族)들에게도 있는 풍습이다. 총각들이 긴 대나무 피리인 루성(蘆笙)을 불자 처녀들이 권주가를 부르며 술을 권한다. 술 한잔 받아 마시자, 이곳까지 왔던 길들이 아득해지며 고대의 중국 신화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든다.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 자오싱 마을은 정지된 화면처럼 아주 조용했다. 백여 채 될까 말까 한 오래된 목조 주택들이 작은 개천을 사이에 두고 늘어서 있다. 마을 중간중간 탑 같기도 하고 망루 같기도 한 목조 건축물, 구러우(鼓樓)가 높이 솟아 있었다. 마을 풍경이 마치 사극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둥족 농부. 등 뒤에 걸린 장화처럼 생긴 광주리는 낫 등을 꽂고 다니는 데 사용한다.

구러우 주변으로는 광장이 있다. 이 마을에는 다섯 개의 구러우가 있다고 한다. 하나의 구러우 주변으로 같은 성씨들이 모여 산다고 하니, 이 마을에는 다섯 성씨들이 있는 것 같다. 구러우에는 한국 사찰의 단청처럼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처마 끝에는 해학적인 여러 동물 형상들과 동자상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둥족들에게 이 건축물은 아주 중요하다. 이곳에서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집회를 하며, 특히 이곳에서 둥쭈다거를 노래한다.
20여m나 되는 구러우를 건축하는 데 사용한 목재는 삼나무다. 이 높은 건축물을 짓는 데 못 하나 쓰지 않았다고 한다. 둥족의 뛰어난 목조 건축물을 보기 위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인근에 있는 청양(程陽) 펑위교(風雨橋)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다리로 세계 건축사에 올라 있다고 한다.
마을 한가운데로 난 길 양쪽으로는 선물 가게들이 있다. 천연염료로 물들이고 수를 놓은 수공예품들을 팔고 있었다. 마을 중앙을 흐르는 개울 위에는 펑위교가 놓여 있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다리 위에 지붕이 씌워 있었다. 발밑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교각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니 펑위교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청양 풍우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다리라고 한다.

다리를 건너자 또 다른 구러우에서 둥쭈다거의 민속공연이 시작되었다. 네 명의 둥족 소녀들이 노래를 하고 있다. 어린 소녀들의 고음에 온몸에 전율이 인다. 소녀들이 부르는 노래는 1년 동안 해야 할 농사일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란다. 우리의 ‘농가월령가’ 같은 것이다. 노래에 맞춰 소년들이 춤을 춘다. 괭이로 땅을 파는 모습과 낫으로 풀을 베는 동작, 소를 몰고 밭을 가는 동작 등이 춤으로 표현된다.
이어 등장한 여덟 소녀들이 또 다른 노래를 한다. 남편이 출타 중일 때 남편을 그리는 사랑의 노래라고 한다. 이번에는 고음과 저음이 하모니를 이룬다. 그 절절함이 듣는 이의 영혼을 흔들어 놓는다.
둥쭈다거는 천락지음(天樂之音)으로 불린다. 이 노래는 자연의 소리를 모방한 것이라는데, 목소리의 떨림은 매미 소리를, 맑은 고음은 새소리를 모방한 것이란다. 문자가 없는 둥족은 문화와 풍속뿐만 아니라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노래로 전승해 왔다. 자식이 태어나면 어머니가 아기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아이들은 말보다 노래를 먼저 배운다.
◇동족의 대표적인 건축물 구러우(鼓樓).

이제 둥쭈다거는 중국뿐만 아니라 서방 세계에까지 알려져 있다. 1986년 프랑스 파리 공연을 시작으로 외국 순회공연도 하고 있단다. 서방세계에 알려진 후부터 서양인 관광객들이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 노래를 듣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저녁에는 연로한 마을 여자들을 초청해 노래를 들었다. 이곳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 직접 노래를 부르지 않고, 어린 자식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며 소일한다고 한다. 하루 종일 논에서 모내기를 끝낸 둥족 아낙들이 고단함도 잊은 채 노래를 했다. 어린 소녀들처럼 맑고 고운 목소리는 아닐지라도, 그들의 노래에는 삶의 깊이가 느껴졌다. 우리의 정선아리랑 같기도 하고, 진도농요 같기도 한 구슬픈 노래들이 때맞추어 솟아오른 보름달 빛에 실린다.
저들이 아직 식사 전이라는 걸 알았기에 몇 곡만 청해 들으려 했는데, 둥족 아낙들의 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이들은 노래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단함과 허기쯤은 참을 수 있다고 하였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둥족 아낙들의 애잔한 노랫소리에 자오싱의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여행작가


≫여행정보

중국 상하이나 윈난성 주도인 쿤밍까지 간 뒤 그곳에서 비행기나 열차로 구이양으로 간다. 구이양에서 둥족자치주인 충장(從江)현까지는 450km. 버스로 약 8시간이 걸린다. 그 곳에서 자오싱까지는 30km 남짓이지만 워낙 산길이 험해 버스로 약 3시간 걸린다. 버스는 하루에 2∼3편뿐이다. 충장에서 차를 빌려 타고 가기도 한다. 추석이 되면 이들은 성대하게 축제를 연다. 둥족은 중국 소수민족으로는 드물게 중추제(추석)를 지내는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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