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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마른 꽃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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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08-25 15:20:00 수정 : 2007-08-25 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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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순 한국농업대학 교수·식품영양학
마른 꽃에도 향이 있다. 이미 시들어버린 로즈마리 꽃잎에서 향을 맡아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너무 진한 향에 어리둥절해질 것이다. 생생하게 피어 있는 꽃은 향기도 좋고 색깔도 아름다워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필자 역시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과 꽃병에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꽃, 심지어 풀밭에 숨어서 피어 있는 작은 꽃에도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적이 많다. 

마른 꽃과 시든 꽃은 물리적으로 거의 동일한 상태에 있다. 다만 꽃이 머금은 습도의 차이에 따라 구별할 뿐이다. 공통점은 시든 꽃이든 마른 꽃이든 이미 생명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시든 꽃에서는 좋지 않은 냄새가 풍기지만, 마른 꽃에서는 향기와 생명력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리적으로는 시든 꽃은 마른 꽃보다 더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시든 꽃에서는 다소간의 향기가 배어 있는 듯하지만 풍기는 냄새는 향기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마른 꽃은 다르다. 꽃 속에 박혀 있는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인류가 추구해온 아름다움은 일정한 시간적 제한을 갖기 마련이다. 이 시간적 제한을 벗어나려는 인간의 노력이 말린 꽃(dried flower)이라는 것을 개발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른 꽃의 그 아름다움은 영원성에까지 연결된 듯한 느낌이다. 고대 사람들은 인간을 아름다움의 극치로 생각했고, 그 영원성을 간직하기 위해서 미라를 궁리했다는 설도 있다. 마른 꽃은 ‘꽃의 미라’라고 할 수 있다. 꽃이 갖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생화가 내뿜은 향기를 지닐 수 있다면 그 아름다움은 지속될 것이다. 

필자는 고고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학자도 아니어서 미라에 대한 지식도 없고, 인조 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농업대학에 근무하면서 자연과 한 발짝 더 가까이 할 기회가 주어졌다. 처음엔 풀밭에 숨어 있는 작은 들꽃의 아름다움과 그들이 풍기는 향기를 조금씩 깨달아 가다 요즘엔 꽃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흠뻑 빠져 탐닉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예쁜 꽃을 더 선호한다. 그래서 심지어 호박꽃도 꽃이냐고 농담 삼아 되묻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름날 아침 짙게 어우러진 푸른잎 속에 이슬 머금은 샛노란 꽃봉오리를 지닌 호박꽃을 그 누가 아름답다고 하지 않겠는가? 형상도 예쁘지만 영양이 풍성해 먹을거리로도 한몫 하는 꽃이기도 하다. 

예쁜 꽃이든 아니면 호박꽃이든 그 아름다움의 극치는 조화에 있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 하더라도 한 송이 꽃만으로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평가받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장미와 초라한 안개꽃이 어울려 조화를 이룰 때 장미 본래의 아름다움이 돋보이고, 안개꽃의 향기는 장미향과 조화를 이루어 더욱 매력적인 향기를 발산하는 것이 아닌가. 또 그 꽃을 말렸을 때 짙은 꽃잎의 향기와 안개꽃의 청초함도 좋을 것이다.

꽃과 꽃의 조화를 이루는 작업을 플라워디자인(Flower Design)이라 한다. 이동성이 없는 꽃을 디자인하여 역동성을 보태고, 조화를 이루어 더욱 큰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이 플라워디자인의 목표라고 한다면 사람이 풍기는 매력과 사람이 갖는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사회는 어쩌면 휴먼디자인(Human design)의 목표가 아닐까.

플라워디자인으로 그토록 화려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는 재료가 많이 들지 않을 뿐 아니라 버리는 부분도 거의 없다.
우리가 함께 사는 사회도 그래야 한다. 너무 많은 물질을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어느 누구도 버리지 않는 사회를 만들라는 것이 플라워디자인이 주는 교훈일 게다.

이건순 한국농업대학 교수·식품영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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