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문학]삶의 부조리에 인간은 속절없다

입력 : 2007-06-09 14:15:00 수정 : 2007-06-09 14:15:00

인쇄 메일 url 공유 - +

이동하 소설집 ''우렁각시는 알까''

운명의 여신은 짓궂다. 선량한 여성을 극악한 연쇄 살인범의 칼 앞에 세우고, 모지락스럽게 일해 겨우 아파트 한칸 마련한 가장에게 돌연사를 안긴다. 갑작스러운 불행 앞에서 개인은 한없이 무력하다. 이동하(65·사진)가 10년 만에 펴낸 소설집 ‘우렁각시는 알까?’(현대문학)에선 삶의 부조리에 속절없이 말려든 인간들이 보인다.

표제작 ‘우렁각시…’는 순박한 택시기사 황보만석의 파멸기다. 이 블랙코미디 속에서 내조의 대명사 우렁각시는 한 남자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팜므 파탈’로 변한다. 마흔을 앞둔 황보만석은 늙은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노총각이다. 삶이 팍팍해도 그는 늘 싱글벙글 웃으며 산다. 어느 날 그는 버스터미널에서 “아저씨네 집에 재워줄래요? 여관 가기 싫어서요”라고 부탁하는 여인을 태운다. ‘우렁각시’를 집에 들인 후 황보만석의 일상은 점차 빛과 향기를 얻는다. 극장에서 영화를 즐기고, 새벽에 약수터로 향하는 ‘웰빙’ 생활을 한다. 행복은 길지 않았다. 우렁각시는 가출 주부였고, 남편인 듯 보이는 청년이 찾아오자 황보만석을 떠난다. 졸지에 며느리를 잃은 어머니가 세상을 등지고, 황보만석 역시 노숙인으로 전락해 동사한다. 이동하는 “가진 자의 기분전환용 일탈이 약한 자에겐 시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며 “소시민은 아무리 노력해도 가혹한 운명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함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담배 한 대’는 부조리의 극치다. 외제차를 탄 호스티스가 무뢰배에게 담배 한 개비를 꾸려다 살해당한다. 도대체 운명은 그녀 편이 돼 준 적이 없다. 유년 시절엔 가난에 시달렸고,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죽었으며, 커서는 남자에게 배신당했다. 형편이 펴질 만하자, 별 이유 없이 야산에 끌려가 산 채로 묻힌다. 그는 42년을 살면서 “누구든 그런 식으로 느닷없고, 황당하게 중도하차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호스티스는 담담히 흙비를 맞으며 생매장당한다. 작가는 1994년 세상을 들쑤셨던 ‘지존파’사건에서 줄거리를 따왔다. “그 강렬한 사건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무력하게 죽어가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부조리를 극복하는 초인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작가 자신의 한을 표출한 작품도 있다. ‘사모곡’은 서른일곱 짧은 생을 살다 간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궁색한 봉지 쌀 살림을 꾸렸던 어머니를 대형 마트의 풍요 속에서 떠올리며 가슴앓이를 한다. 그밖에 가정에 충실한 가장이 아파트 붕괴로 목숨을 잃는 ‘누가 그를 기억하랴’, 정년퇴직자의 허탈한 일상을 그린 ‘앙앙불락’ ‘남루한 꿈’ 등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동하는 올해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직에서 물러난다. 잠깐 휴식한 뒤 본래 직업인 소설쓰기로 되돌아 갈 생각이다. 그는 “신세대 작가가 외면하는 전통적 서사미학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은퇴 이후의 계획을 밝혔다.
심재천 기자 jayshim@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박보영 '상큼 발랄'
  • 박보영 '상큼 발랄'
  • 고윤정 '매력적인 미모'
  • 베이비돈크라이 이현 '인형 미모'
  • 올데이 프로젝트 애니 '눈부신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