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초속 5센티미터’. 이들은 각각 참신한 소재와
따뜻한 그림으로 서정적 애니메이션의 진수를 보여준다.
‘슈렉’ 으로 상징되는 할리우드의 3D 스타일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블록버스터급 작품들이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의 주류를 차지한 지금,
정감어린 2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이들 작품이 선사하는 울림은 결코 작지만은 않다.
◆유쾌한 사춘기의 기억 ‘시간을 달리는 소녀’=불가역적 개념인 시간을 내 마음대로 되돌릴 수 있다면? 영화는 이 만화 같은 상상력을 경쾌하게 펼쳐놓는다.
사춘기 여고생 마코토는 우연히 시간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초능력을 갖게 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니 지각할 일도 없고 성적도 좋아진다. 교통사고가 났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자리에서 피하면 된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면 갈수록 일상은 점점 꼬여만 간다. 게다가 무한정인 줄 알았던 이 능력에도 횟수 제한이 있다. 이제 마코토는 자신이 벌여놓은 일들을 수습하기 바쁘다.
영화는 1965년 발표된 동명 베스트 셀러를 만화로 옮긴 작품. 청춘, 성장 소설의 고전으로 알려진 원작에 충실한 만큼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가슴 설레는 청춘 영화이자 알싸한 사춘기의 기억이 코끝을 찌르는 성장 영화다. 주인공은 과거를 넘나들면서 우정과 사랑을 조금씩 깨달아간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따뜻한 캐릭터와 감성적인 화면으로 시간의 소중함과 삶의 의미를 일깨운다.
지난해 일본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받았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미 불법 다운로드로 작품을 접한 국내 팬들이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어할 정도로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다. 14일 개봉.
◆아련한 첫사랑의 그리움 ‘초속 5센티미터’=누구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바로 좋아한다는 말 한번 제대로 못하고 떠나보낸 첫사랑의 얼굴. 시간이 지나 그때의 안타까움은 추억으로 박제되고, 사람들은 ‘첫사랑은 원래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며 위안을 삼는다. 그래도 당시의 아련함이 불쑥 찾아 올 때면 명치에 박힌 유리 파편처럼 아찔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인생의 가장 찬란하고 순수했던 시절의 두근거림과 아쉬움은 그렇게 평생 떠나지 않는다.
‘초속 5센티미터’는 이런 아릿한 첫사랑의 기억을 되살리는 애니메이션이다. 어린 시절 서로를 좋아했던 남녀 주인공이 세월이 흘러 직장인이 되면서 상대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점차 극복해가는 이야기. ‘벚꽃 이야기’ ‘코스모나우토’ ‘초속 5센티미터’로 이루어진 3부작 옴니버스로 남자 주인공의 시점에서 시간의 흐름을 담아낸다. 제목은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가 초속 5㎝…”라는 극중 대사에서 따왔다.
1인 제작 시스템을 선보이며 일본에서 차세대 주자로 떠오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아름다운 영상으로 관객의 향수를 자극한다.
특히 필름 카메라처럼 깊이가 느껴지는 화면과 섬세하게 표현된 일상의 디테일이 돋보인다. 감독은 눈발이 흩날리는 지하철 플랫폼이나 세탁기, 손목 시계 등의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일상의 평범한 장면을 인생의 빛나는 순간으로 재창조한다. 올해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개막작으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21일 개봉.
이성대 기자 karis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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