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사원이란 힌두교 사원 때문인데, 들어가면서부터 사원 옆에 높게 솟은 탑문인 고푸람이 눈길을 끈다. 높이가 40∼50m 정도 되는 고푸람에는 신화에 등장하는 3만3000위의 신과 악마의 조각들이 새겨져 있어 현란하기 그지없다. 사원 주변에는 신화 속의 거대한 동물 조각들이 사람들을 압도하고,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씻는 연못인 가트도 보인다.
사원 안은 수많은 힌두교 순례객들로 번잡스럽다. 코코넛 기름 태우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지성소 안에서는 시뻘건 불이 담긴 쟁반을 든 사제 앞에서 힌두교인들이 기도를 한다. 한쪽에서는 바닥에 새겨진 연꽃 주위에서 가족이 둘러앉아 기도문을 외우기도 하고, 두 손을 합장한 채 신상 앞에서 기도를 하거나 시바신의 남근을 상징하는 둥근 기둥 형태의 링가 앞에서 명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땀 냄새와 불기운, 그리고 신자들의 종교적 열기가 뒤얽힌 묘한 분위기로 인해 종교라면 성스럽고 경건한 분위기를 연상하는 우리는 충격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관점일 뿐, 인도의 힌두교인들에게는 종교란 원래 이런 것이다.
모든 힌두교인들에게 힌두교는 종교 이전에 오랫동안 몸속에 짙게 배어버린 생활이자 관습이다. 인도 땅에는 그동안 축적되어 온 수많은 신, 의례,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고등 종교의 교리와 의식에 지배당하지 않고 그대로 살아 남았는데, 이는 과거 우리의 모습이기도 했다.
스리 미낙시 사원은 2500년 전에 만들어졌다가 17세기에 다시 증축되었는데 여기에는 신화가 서려 있다. 마두라이에는 물고기 모양의 눈과 3개의 젖가슴을 지닌 처녀 미낙시가 살았는데, 예지자로부터 그녀의 남편은 히말라야에 사는 시바신이며, 그를 만날 때 젖가슴 한 개가 없어질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이 말을 들은 미낙시는 히말라야의 카일라슈 산에 살고 있는 시바신을 만나러 갔고, 그를 만나자마자 가운데 젖가슴이 사라졌다고 한다. 시바신은 우선 미낙시를 돌려보냈고, 8년 후에 순다레슈와라라는 화신의 형태로 이곳에 와서 미낙시와 결혼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 사원에서는 매일 밤 9시30분에 순다레슈와라가 탔다고 믿는 가마를 순다레슈와라의 처소에서부터 미낙시의 처소로 운반하고, 아침 6시30분이 되면 다시 그 가마를 미낙시의 처소에서 순다레슈와라의 처소로 옮기고 있다. 즉, 신화 속의 일들이 매일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미낙시 사원의 신상 |
힌두교 신화에는 창조의 신 브라마, 보호·유지의 신 비슈누 그리고 파괴의 신 시바신이 있다. 이렇게 창조, 유지, 파괴가 순환하면서 동시에 삼신은 일체를 이룬다. 이 같은 체계는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형성된 것이지 누군가 만든 것이 아니다. 힌두교에는 교조가 없다. 그리고 수많은 지방에서 발달한 토속신들은 힌두교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비슈누신과 시바신의 화신으로 통합된다. 미낙시 사원에는 시바신의 또 다른 화신인 춤의 신, 나타라자의 조각도 보인다. 남신들은 각자의 배필인 여신들이 있는데, 여신들 또한 수많은 화신을 갖는다. 그래서 어떤 지방에 가면 시바신의 부인이 칼리 여신이고, 어떤 지방에서는 두르가 여신, 파르바티 여신 등으로 이름이 달라진다. 그래서 힌두교 신화나 현장을 접하는 사람들은 신들의 관계가 매우 복잡하고 가끔 모순되는 얘기를 접하게 되어 혼란스러운데, 각 지방의 토속신들을 화신 사상으로 통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발생한 현상들이다.
13세기 남인도를 방문했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보면 남인도의 힌두교 사원들을 묘사하는 가운데 이 같은 얘기가 나온다.
◇미낙시 사원의 가트 |
“이 지방 사람들은 남신과 여신들이 쾌락을 즐긴다고 믿고 있는데, 힌두교 사제들에게 자기 딸들을 바치기도 한다. 가끔 사제들이 남녀 신들의 사이가 틀어졌다고 하면 소녀들은 사원의 우상들 앞에서 춤을 춘다. 그 다음날 아침 사제는 소녀들의 춤으로 인해 남녀 신들의 사이가 좋아졌다고 말한다. 이 소녀들은 살집이 얼마나 팽팽한지 살집의 어떤 부분도 손으로 집거나 꼬집을 수 없을 정도다.”
물론 지금은 이 같은 풍속을 볼 수 없다. 그러나 마두라이의 힌두교인들은 여전히 시바신의 화신인 순다레슈와라와 그의 부인인 미낙시가 현재도 사원 안에 살고 있다고 믿으며, 오늘도 꽃다발을 바치고 기도를 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이런 광경을 어떻게 판단하는가는 우리의 자유겠지만, 수많은 종교적 전통과 관습이 삶 속에서 이어지고 있는 인도는 매력적인 땅임에 틀림없다.
◇미낙시 사원의 회랑 |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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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라이의 미낙시 사원을 처음 방문했던 7월 중순경은 매우 더웠다. 사원의 그늘 밑에서 쉬고 있는데, 아이들 둘이 접근했다.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간단한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아이들 아버지는 도망갔고 사원에서 재스민꽃을 엮어 파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은 하루 두 끼 혹은 한 끼를 먹을 때도 있는데 모두 ‘노 프러블럼(괜찮다)’이라며 웃어 보였다. 어린 나이에 체념을 배운 아이들이 너무도 안쓰러워 밥과 아이스크림을 사 줬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배고픈 서러움이란 똑같지 않겠는가.
인도인들도 똑같은 사람이기에 가난이 서럽고 힘들며, 생존하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간다. 또한 인도는 온갖 모순들로 가득 차 있으며 비참한 일들이 일어나는 땅이다. 그러나 모든 가난한 인도인들이 불행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양 극단의 것이 공존하는 인도는 천당과 지옥이 뒤범벅이 된 땅이다. 그리고 그 극단 속에서 다른 나라에서는 할 수 없는 진한 체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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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의 어느 지역에서든 마두라이까지 버스와 기차가 연결된다. 숙소는 미낙시 사원의 서쪽 부근에 많이 몰려 있어 편리하다. 미낙시 사원 안의 지성소는 다른 사원과는 달리 힌두교도들 이외에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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