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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없는 아이들의 꽃 '하얀 카네이션'

입력 : 2007-05-14 00:00:00 수정 : 2007-05-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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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를 다닐땐 어머니날에 어린이도 카네이션을 달고 다녔다.

빨간 습자지 종이로 잘 접어서 꽃을 만들고 파란 색갈로 잎파리도 두어개 만들고 옷핀을 꽂고 그걸 오른쪽 가슴에 달고 다녔다.

그런데 누구나 어머니가 있어서 세상에 태어났지만 불행하게도 어머니가 아주 일찍 돌아 가셔서 할머니나 큰어머니나 혹은 작은 어머니댁 같은 친척 집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한 둘은 있었다. 그래서 장난이 심한 아이들은 저애는 엄마가 없는 애라고 짖궂게 놀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엄마가 없는 아이들은 가슴에 하얀 카네이션을 달고 다니게 했다. 평상시에도 엄마 없는 설움을 받는 아이들은 가장 슬프고 싫은 것이 어머니날이 었다.

미술 시간에도 자기 어머니 얼굴을 그리는 수업을 했는데 어머니가 없는 아이들은 어머니 얼굴을 상상해서 그리거나 현재 같이 살고 있는 할머니나 백모나 숙모의 얼굴들을 그리기도 했다. 애써 돌아 가신 어머니의 얼굴을 상상하여 그리는 아이들은 어머니 얼굴이 영 생각에서 멀어 진다고 기억속에서도 어머니가 사라진다고 눈물을 굴썽이던 아이가 있었다.

그런 친구가 없었으면 이런 생각이 안날텐데 내 초등하교 동창 중엔 꼭 두 사람이 어머니 없는 친구가 있어서 언제나 5월 8일엔 하얀 카네이션을 달고 다녔었다. 별로 성격이 씩씩하지도 못해서 금방 울고 찔찔 짜고 다녔다.

김정주라는 공부 잘하는 초등학교 동창이 있었다. 건너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얼굴에 하얀 버짐이 피고 몸이 약했다. 정주는 5살때 친엄마가 시골 화장실에서 쓰러져 돌아가셨는데 지병을 앓고 계셨었다. 상당히 부농이고 부자였던 정주 아버지는 금방 새어머니를 얻었다.

정주는 좋은 새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잘 지냈는데 자기가 5살때 친어머니 장례식 하는 것을 잊지 못했다. 상여가 종을 흔들며 딸랑! 딸랑! 하고 갔다고 엄마의 무덤에 갈때는 딸랑 엄마의 무덤에 간다고 했다. 친엄마라는 말을 딸랑 엄마라고 한다고 해서 동네 사람들은 그애를 놀려 댔다.

새어머니가 있는데도 정주는 하얀 카네이션을 달고 다닌걸 보면 친엄마가 없으면 역시 엄마가 없는걸로 생각했던 것 같다. 몇년 전 동창회에서 정주 이야기가 나왔는데 역시 몸이 약해서 중학교도 안 가고 요양하다가 십대에 아주 일찍 저 세상으로 같다는 소문이다.

얼굴에 언제나 허연 버짐이 핀걸 보면 무언가 그애도 몸에 이상이 있었나보다. 또 한사람 윤정란이라고 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애 역시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하얀 카네이션을 하고 다녔었다. 집이 학교 에서 아주멀었다. 책보를 옆에 끼고 우리집 옆을 지나 다녔었는데 지독히 가난했다.

월사금을 못내서 초등학교 6학년때 후반기에는 학교를 안나왔었다. 그래서 졸업 사진에 그애는 없었다. 엄마란 존재가 무엇인지 언제나 5월 8일이 오면 죽은 엄마 이야기를 한다. 마흔 다섯에 정란이를 막내로 낳고 산후 후유증에 시달리다 가버려서 그애는 자신의 어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나이차이 많은 큰언니가 엄마 노릇하며 살았는데 3년전 여름 동창회에서 가난해서 졸업 못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고 하얀 카네이션이 어린 가슴을 얼마나 슬프게 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땐 왜 그런 풍습이 있었을까?

지금은 어머니가 있든 없든 우리가 어머니이고 할머니이다. 어머니날엔 모두들 어머니 은혜에 감동 하고 어머니를 기리는 엄숙한 날이지만 하얀 카네이션을 달아야 했던 엄마 없는 아이들의 생각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마흔 두살 까지 친정 엄마가 생존하셨던 내가 그 하얀 카네이션을 이해할 리가 없다. 미국은 해마다 5월 둘째주가 어머니날이다. 금년은 5월 12일이다.

어머니 은혜에 감동하는 이야기는 별로 없고 꽃장사를 해서 한몫 챙겨야 한다는 꽃 환드레이징하는 이야기만 주위에서 들려온다. 대한민국의 생활력 강한 어머니들은 꽃팔아서 자녀들 여름 방학에 한국 보낼 생각들만 한다.

해마다 돌아오는 어머니날에 금년엔 왜 하얀 카네이션이 크로즈업 되어 오는 이유는 무언지 모르겠다.

◆ 유노숙 님의 블로그 <유노숙의 장애우 천국 >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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