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들 사이에서 ‘르네상스맨’으로 불리는 남경태님과 두 권의 책을 만들었다. 6만부가 넘게 팔려 인문 책의 힘을 다시 느끼게 한 ‘개념어 사전’이 첫 번째이고, 이 책 ‘철학’이 두 번째다. 사실 원고는 ‘철학’이 먼저 쓰여졌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인문학 개념어들을 정리해서 먼저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철학’을 잠시 미뤄두고 그때부터 쓰고 만들어진 것이 ‘개념어 사전’이다. 말하자면 ‘철학’은 ‘개념어 사전’의 어머니인 셈.
흔히 ‘철학은 어렵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랬다. 철학 책을 보면 저절로 이 말이 튀어나온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저자는 편집자의 어리석은 우려를 산뜻하게 배반한다. ‘개념어 사전’을 만들면서 남경태식 이야기법에 맛을 들인 후라 어느 정도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그 어려운 ‘철학’까지 이렇게 깔끔하게, 시원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정리해낼 줄은 미처 몰랐다. 특히 이 책은 대부분의 철학서가 19세기까지를 다루고 그치는 데 비해 20세기 철학에 책의 4분의 1을 할애했다. 원고를 읽어가면서 현대철학 부분이 얼른 보고 싶어서 안달을 낼 정도였으니 그 재미는 감히 보증한다.
남경태 지음/들녘/2만3000원 |
책은 보통 ‘철학사’라고 불리는 생각의 역사를 다룬다. 하지만 생각과 현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인류 문명사이듯이 생각의 흐름만 좇지 않고 현실의 맥락을 곳곳에 반영한다. 그동안 동서양사와 한국사의 통사서들을 펴내면서 쌓인 남경태의 내공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인류 절반의 역사를 아우르면서 저자는 자신의 관점을 일관적으로 투영시킨다. 그러면서 독자에게도 스스로 사유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꼬드긴다.
‘철학’은 ‘교양’ ‘책’ ‘과학’ ‘인간’으로 이어지는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시리즈의 하나다. 번역서인 이전의 책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국내 필자인 것도 특징이다. ‘철학’도 ‘개념어 사전’만큼 폭넓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한편으로 생각의 역사 ‘철학’과 인문학 용어집 ‘개념어 사전’, 이 두 권의 형제가 될 책을 저자와 후속작으로 준비 중이다. 남경태식 사유의 즐거움을 기대해도 좋다.
책을 만들면서 이만큼 많이 배우고,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 운이 좋았다. 앞으로도 필자에게 계속 빚지고 감사할 일만 남았으니 기쁠 따름이다. 이젠 이 기쁨을 독자들에게 되돌려주고 싶다.
김인경 들녘 인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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