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와 미국 외교협회(CFR)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프랑스가 아프리카 외교에서 다자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양자주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 애매모호함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프리카 문제에 국제기구 등과 연대해 대처하겠다고 공언하면서도 실제로는 독자적인 개입을 더 중시한다는 뜻이다.
세계 각국에 배치된 프랑스의 평화유지군 규모는 약 1만2000명. 이 중 절반이 넘는 7000여명이 아프리카에 몰려 있다. 프랑스는 자국민 보호와 지역 안정 확보라는 명분으로 세네갈과 코트디부아르, 가봉, 차드, 지부티,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프랑스의 아프리카 정책이 지닌 양자주의 성격을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다.
◆프랑스의 군사 개입=아프리카에 거주하는 프랑스인은 약 24만명. 아프리카는 프랑스 전체 수출의 5%를 차지한다. 무엇보다 천연·광물자원과 에너지의 주요 공급원이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 지역은 프랑스 대외정책의 우선 순위에 올라 있고, 프랑스 정치 지도자들은 틈만 나면 아프리카와의 전략적인 관계 강화를 강조했다.
문제는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의 민주주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경제 원조를 하다 보니 국내외에서 아프리카 군사독재 정권을 지원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컨대 1960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프랑수아 보지즈 대통령은 2003년 군사 쿠데타로 권좌에 올랐다. 이후 형식적인 선거를 통해 2005년 대통령에 당선된 그의 유일한 정치적 버팀목은 프랑스의 지원이다. 기세등등한 반군으로부터 수도 방기를 겨우 지켜내고 있는 것도 프랑스군 덕분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코트디부아르에서 프랑스가 물밑 지원하는 정부군과 반군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면서 사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이라크전에 비유하며 ‘프랑스의 꼬마 이라크’라고 비꼬았다.
코트디부아르 등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7개국은 1960년대에 독립하면서 프랑스와 방위조약을 맺었고 25개국은 군사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체결한 조약이나 협정은 대부분 지금도 유효하며, 구체적인 내용이 베일에 가려진 비밀조약도 많다. 이러한 조약 등에 기초해 프랑스는 1962∼95년 19차례에 걸쳐 아프리카에 군사 개입을 했다.
프랑스는 부족 간 내전으로 무려 80만명이 희생된 1994년 르완다 사태 당시 후투족의 투치족 학살 행위를 돕고, 1996∼97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의 전 독재자 모부투 세세 세코를 지원했다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때부터 프랑스에서는 아프리카에 대해 독자 개입보다는 다자주의 전략을 취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지만 프랑스 정부는 확실한 원칙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흔들리는 프랑스 입지=프랑스가 전통적인 양자주의 아프리카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원조 정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채텀하우스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기준 프랑스의 대외 원조 규모는 모두 74억유로(약 9조800억원)로 국민총소득(GNI)의 0.44%에 달한다. 프랑스는 2012년까지 그 규모를 GNI의 0.7%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프랑스는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하기도 하지만 대외원조의 무려 70%는 정부 산하의 원조개발청(AFD)을 통해 이루어졌다. 대외원조가 대부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 집중된 점에 비추어 프랑스는 아프리카 원조의 ‘큰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채텀하우스는 이 점을 들어 프랑스가 아프리카로부터 석유와 광물 등의 자원과 개발권을 따내기 위해 대외원조를 마케팅에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정부는 특히 지난 50년간 경제원조를 미끼로 아프리카의 정부 관료, 정치인, 군부 지도자 등 엘리트 집단과 특별한 네트워크를 형성했으며, 이들 사이의 부적절한 결탁에 따른 부패도 끊이지 않았다. 프랑스가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해 아프리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을 가리켜 ‘신식민주의’라는 용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그러나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으로 상황이 변하고 있다. 프랑스가 양자주의와 다자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다른 선진국들은 무한한 개발 잠재력을 지닌 검은 대륙을 둘러싼 각축전에 돌입했다. 미국과 중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두 나라는 경쟁적으로 아프리카에 구애 작전을 펼치며 거의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다시피 한 프랑스의 위치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이달 초 아프리카사령부(AFRICOM) 창설 계획을 발표했다. 표면적으로는 유럽사령부와 중부군사령부 등이 나눠 맡던 일을 전담하도록 하는 조직 개편 성격을 띠고 있지만 더 큰 맥락에서 보면 아프리카에서 프랑스군 역할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라고 CFR 보고서는 분석했다.
중국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지난 3년간 100억달러를 아프리카에 무상 원조했다. 지난해 중국의 아프리카 교역액은 555억달러로 7년 전에 비해 9배나 급증했다. 중국은 미국 프랑스에 이어 아프리카의 교역 상대국 3위에 올랐다. 반면에 프랑스는 지난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 내 외국인 직접투자(FDI) 순위에서 4위에 그쳤다. 영국이 이 지역 내 FDI의 13%를 차지해 가장 많았으며, 프랑스는 미국(8%)과 네덜란드(5%)보다도 적은 4%에 불과했다.
김보은 기자 spice7@segye.com
프랑스 대선후보 현정부 정책 비판
오는 4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프랑스의 유력한 대선 후보 2명은 모두 지금까지와는 다른 아프리카 정책을 주문하고 있다.
세골렌 루아얄 사회당 후보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퇴임 전 주관하는 마지막 주요 외교 행사인 아프리카·프랑스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4일 시라크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AFP통신에 따르면 루아얄은 이날 “시라크 대통령은 아프리카의 수상쩍은 정권과 외교관계를 맺어왔다”며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신식민주의’에 바탕을 둔 프랑스 외교정책을 전면 수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루아얄은 “시라크 대통령이 국익이나 공익과 무관하게 개인적 친분관계에 따라 독재정권과 관계를 맺어 프랑스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면서 과거 이들과 체결한 비밀협정의 공개와 방위조약·군사협정의 전면 개정도 주장했다. 그는 또 의회가 프랑스군의 아프리카 주둔 문제를 짚고 넘어갈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대선 후보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도 지난해 5월 서아프리카 말리와 베냉을 방문한 자리에서 시라크 대통령의 신식민주의적 아프리카 정책을 비판하며 새로운 관계 수립을 주창했다. 사르코지는 신식민주의 전통이 가장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이 두 나라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경제적으로 프랑스는 더 이상 아프리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더 이상 프랑스의 원조가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아프리카와 깨끗하고 균형 잡힌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맺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사르코지는 “개인적 유대관계에 의존한 연대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며 시라크 대통령과 분명한 선을 그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는 1950년대에 출생한 이 두 후보가 프랑스의 식민통치 시대에 태어난 마지막 세대인 점을 들어 이론적으로는 프랑스 외교정책을 바꿀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들이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로비스트의 압력과 과거 인습에 굴복한다면 기형적인 아프리카 정책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김보은 기자 spice7@segye.com
오는 4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프랑스의 유력한 대선 후보 2명은 모두 지금까지와는 다른 아프리카 정책을 주문하고 있다.
세골렌 루아얄 사회당 후보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퇴임 전 주관하는 마지막 주요 외교 행사인 아프리카·프랑스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4일 시라크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AFP통신에 따르면 루아얄은 이날 “시라크 대통령은 아프리카의 수상쩍은 정권과 외교관계를 맺어왔다”며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신식민주의’에 바탕을 둔 프랑스 외교정책을 전면 수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루아얄은 “시라크 대통령이 국익이나 공익과 무관하게 개인적 친분관계에 따라 독재정권과 관계를 맺어 프랑스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면서 과거 이들과 체결한 비밀협정의 공개와 방위조약·군사협정의 전면 개정도 주장했다. 그는 또 의회가 프랑스군의 아프리카 주둔 문제를 짚고 넘어갈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대선 후보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도 지난해 5월 서아프리카 말리와 베냉을 방문한 자리에서 시라크 대통령의 신식민주의적 아프리카 정책을 비판하며 새로운 관계 수립을 주창했다. 사르코지는 신식민주의 전통이 가장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이 두 나라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경제적으로 프랑스는 더 이상 아프리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더 이상 프랑스의 원조가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아프리카와 깨끗하고 균형 잡힌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맺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사르코지는 “개인적 유대관계에 의존한 연대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며 시라크 대통령과 분명한 선을 그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는 1950년대에 출생한 이 두 후보가 프랑스의 식민통치 시대에 태어난 마지막 세대인 점을 들어 이론적으로는 프랑스 외교정책을 바꿀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들이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로비스트의 압력과 과거 인습에 굴복한다면 기형적인 아프리카 정책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김보은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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