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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되찾고 취직·결혼 가장 뿌듯한 순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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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01-29 14:39:00 수정 : 2007-01-29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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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째 기형얼굴 어린이 돕는 백 롱 민 교수 “얘기를 모으면 책 한 권이 될 정도예요. 그래도 힘든 줄도 몰랐어요. 혈기왕성한 나이이기도 했지만 제가 하는 일이 즐거웠거든요. 지금도 유명한 관광지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보건소는 어디 있는지 다 알죠.”
최근 얼굴기형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커지면서 다양한 단체에서 수술을 지원하고 있다. 이 가운데 1989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96년 정식 재단법인으로 설립된 ‘세민얼굴기형돕기회’는 우리나라 얼굴기형 어린이돕기 운동의 모체가 된 의료봉사단체이다. 백롱민(49) 교수는 이 단체를 만든 형 백세민(64) 박사의 뒤를 이어 동료 의사들과 함께 18년째 의료봉사 활동을 해오고 있다.
2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백 교수는 “다른 사람과 마주하기도 꺼리던 얼굴기형 환자들이 제 모습을 되찾은 뒤 직장을 구하거나 결혼을 했다고 연락해 올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얼굴기형은 흔히 ‘암보다 큰 고통’이라고 불린다. 대부분의 질병은 조기 발견되면 완치가 가능하고 나은 뒤 깨끗이 잊어버릴 수 있지만, 얼굴기형은 재수술을 받더라도 평생 완치가 힘든 데다가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과 편견으로 마음의 병까지 얻게 되기 때문이다.
◇전국 순회 무료진료에 나선 백롱민 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최근 한 시골 마을에서 어린이 얼굴기형 무료수술에 대해 상담하고 있다.

“대부분 환자가 사회적 편견이 두려워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 숨어 지내고 직장생활은 꿈도 못 꿉니다. 안타까운 건 어린 나이에 고치는 것이 효과적인데도 잘 모르거나 돈이 많이 들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수술할 엄두를 못내 때를 놓치는 사람이 많다는 거죠.”
구순열(언청이)은 신생아 500명 중 1명에게 나타날 정도로 흔한 병이라고 백 교수는 설명한다. 주위에 얼굴기형 환자를 찾아보기 힘든 것은 많은 환자들이 사회와 차단된 채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백롱민 교수(오른쪽)가 구순열(‘언청이’)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를 진찰하고 있다.

1990년 성형외과 전문의가 된 백 교수는 마음이 맞는 동료 의사와 친구 등과 함께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환자를 찾아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함께 의료봉사를 하는 든든한 동료이다.
처음에는 전국 보건소나 교육청에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환자만 모아 달라”고 부탁한 뒤 날짜가 잡히면 백 교수가 운전대를 잡고, 형은 진료 장비를 챙겨 ‘출동’했다. 동료 의사들도 번갈아 참여했다. 평일에는 병원에서 내내 일하고 쉬는 주말을 이용해 2주일에 한 번꼴로 전국 순회 진료를 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한번은 경남 진주로 가기로 한 날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한 폭우가 쏟아졌다. 예약한 항공기가 기상악화로 뜨지 못했고 다음날 출발하자니 점심 때가 돼서야 도착할 듯했다. 백 교수는 결국 운전대를 잡았다. 고속도로에서 빗길에 미끄러진 뒤차에 추돌까지 당했으나 사고를 수습할 겨를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제 시간에 진주에 도착한 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간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진료를 마쳤다.
◇백롱민 교수(가운데)가 2005년 베트남 의료봉사를 갔을 때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살피고 있다.

“얘기를 모으면 책 한 권이 될 정도예요. 그래도 힘든 줄 몰랐어요. 혈기왕성한 나이이기도 했지만 제가 하는 일이 즐거웠거든요. 지금도 유명한 관광지는 몰라도 보건소는 어디 있는지 다 알죠.”
얼굴기형 환자는 수술을 받고 싶어도 돈이 없어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백 교수와 동료들은 그런 이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수술을 해준다. 그 돈마저도 구할 수 없는 환자에게는 각자 주머니를 털어 무료 시술을 해 주는데 그게 벌써 여러 번 됐다. 그동안 600여명에게 새로운 얼굴을 찾아줬다.
봉사동호회 차원이던 세민얼굴기형돕기회가 1996년 정식 재단법인으로 확대개편된 뒤 이들의 활동은 날개를 달았다. 많은 의사, 병원과 네트워크가 생겨 환자를 적절한 곳으로 안내할 수 있게 되었고, 기업이나 독지가 후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얼굴기형에 대해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이 모이기 시작했다.
◇분당서울대병원 백롱민 교수(왼쪽)가 한 환자에게 새 얼굴을 찾아주는 수술을 하고 있다.

병원과 기업 후원으로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베트남과 우즈베키스탄에 의료봉사를 가게 됐다. 지금까지 무료 수술을 해 준 베트남 어린이만 2200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몽골 얼굴기형 어린이도 도와달라는 제안을 받고 이번에는 아예 환자를 우리나라로 데리고 오는 방법을 생각 중이다.
또 2002년 평양에 가서 북한 어린이 얼굴기형 수술에 대해 합의한 뒤 북한 어린이 무료수술도 추진하고 있다. 서해교전, 북핵문제 등 해마다 터지는 북한 관련 사건 때문에 계획이 연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북한에도 희망을 전해주고 싶다.
“제 몸이 허락하는 한 얼굴기형 어린이를 돕기 위한 봉사활동에서 은퇴는 없을 겁니다. 일과 나눔을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제가 더 이상 이 일을 못한다고 해도 저 대신 많은 동료와 후배들이 이 일을 계속 이어갈 거예요.” 그의 ‘아름다운 욕심’은 끝이 없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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