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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문화 확 바꾸자]잊었나? ''닛산 추락''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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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02-01 18:11:00 수정 : 2007-02-01 18: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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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분규 악순환→경쟁력 저하→공멸
과거 대결관행 접고 ''상생의 길'' 찾아야
닛산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도요타와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일본의 대표적인 자동차 업체로 군림했다. 하지만 이후 지속되는 경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외국 자본에 경영권이 넘어가는 비운을 맛봤다.
한때 ‘기술 닛산’이란 소리를 들으며 세계 자동차 업계를 호령해온 닛산의 주인이 바뀌게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결정적인 것은 노사 관계 악화였다. 닛산은 1940년대 말 전후 급진 좌파가 득세하면서 극심한 노사 분규를 겪었다. 당시 노조의 극렬한 투쟁으로 위기에 몰린 닛산은 정리해고의 칼을 빼들었고, 이는 또다시 노조의 파업을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53년에는 ‘닛산 대쟁의’로 불리는 100일 파업을 벌였고, 이후에도 닛산 노조의 ‘정치파업’은 멈출 줄을 몰랐다.
닛산은 계속되는 노사 분규에 경쟁력을 잃어가던 81년 영국에 공장 설립을 추진했다. 유럽 각국이 일본 자동차 수입규제를 강화하자 현지생산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포석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은 노조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수포로 돌아갔다.
노조가 회사 경영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온 결과는 자명했다. 닛산은 결국 치열한 생존 게임에서 탈락하며 99년 프랑스 르노그룹으로 주인이 바뀌고 말았다.
도요타도 1950년 노조 파업과 그에 따른 경영 악화로 부도 직전까지 몰리면서 창업자인 도요다 기이치로 사장이 퇴진하는 등 후유증이 엄청났다.
하지만 파업이라는 홍역을 앓은 이후 도요타는 닛산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도요타는 이때부터 지난해까지 56년 동안 단 한 번도 파업을 하지 않았다. 62년에는 노조가 아예 파업권을 회사에 반납했다. 84년 미국 공장 진출을 추진할 때에도 노조는 “기업과 노조는 수레의 양 바퀴”라며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노사 상생의 결과는 놀라웠다. 도요타는 올해 생산량과 순이익, 첨단기술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자동차 업계 부동의 1위였던 GM을 따돌리고 세계 최고의 자동차 업체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노사 관계의 명암이 기업의 운명을 바꾼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탈리아 피아트자동차도 한때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페라리를 인수하는 등 명성을 떨쳤으나 70∼80년대 노사 관계가 악화되면서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노사 분규로 인한 기업의 경쟁력 상실이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영국은 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과 함께 세계 자동차 업계를 양분했던 자동차 강국이었지만, 소모적이고 대립적인 노사 관계로 토종 업체들이 거의 대부분 외국 자본에 넘어가 이제는 해외 메이커 생산기지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파업 등 강성 노동운동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민주노총 등 상급 단체들의 정치파업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고, 현대차 등 일부 대기업 노조의 파업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일부에서 한국의 선진국 진입 여부는 노사 문제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의 노사갈등은 노사 공멸은 물론 한국 경제의 추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노조와 기업, 정부가 과거의 잘못된 노사 관행을 과감히 버리고 혁신과 변화를 통해 상생의 노사문화를 정착시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병오 기자 eagleey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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