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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을 빛낸 9인의 ‘클러치 플레이어’

입력 : 2006-12-31 13:17:00 수정 : 2006-12-31 13: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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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닷컴=심현석 기자] 2006년이 저물어간다. 항상 한 해가 끝나갈 쯤이면 지나간 1년의 필름들을 돌아보게 된다. 그 속엔 작은 끝맺음이 있고 연속된 소단락들은 365일이라는 자취를 남겼다. 잘 마무리한 것도, 그렇지 못했던 것도 혼재한다.

승부처 하나하나가 모여 큰 승리로 수렴하는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승부사들은 유달리 이 ‘끝맺음’에 강했고, ‘내가 이 순간 잘 할 수 있는 최고의 플레이’를 가장 극적일때 남김없이 쏟아냈다. 이들을 다른 말로는 클러치 플레이어(Clutch Player)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치열함,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이기심 아닌 책임감, 그리고 자기역할에 대한 열정. 2006년을 빛낸 9인의 클러치 플레이어들에게 1년의 끝맺음은 또 다른 목표를 의미한다.

◎ 드웨인 웨이드…플래시가 번쩍하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긴다



지난 6월 14일 NBA 파이널 3차전. 댈러스에 2연패로 몰린 마이애미는 이날 지면 사실상 시리즈를 내줘야 할 만큼 어려웠다. 4쿼터도 13점차 열세. 시간이 흐를 수록 소속팀 백전 노장 샤킬 오닐, 게리 페이튼, 알론조 모닝은 젊은 웨이드의 얼굴만 쳐다봤다.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경기 종료 1분 16초전 1점 차로 추격하는 점프슛을 터뜨리더니, 결국 팀이 2점 앞선 종료 3초전에는 덕 노비츠키의 빗나간 자유투를 리바운드해 득점, 팀에 귀중한 승리를 안겼다. 이후 상승세를 탄 마이애미는 내리 3연승을 거두며 NBA 챔피언에 등극했고, 웨이드는 시리즈 MVP가 됐다.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 때문에 생긴 웨이드의 별명 플래쉬(Flash)처럼 그의 성장속도가 놀랍다. 프로입성 3년만에 자신이 주역으로 떠오르며 이런 큰 성공을 이룬 선수는 많지 않다. 어려울때 팀을 주도하고 오닐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메워 리더십까지 장착, 언제부터인가 마이애미의 간판은 오닐이 아니라 웨이드가 됐다. 웨이드의 강점은 아무리 힘든 디펜스 방어벽도 허무는 저돌적인 공격성. 댈러스 감독 에이버리 존슨은 파이널 6차전이 끝난 직후 “웨이드를 막지 못했다. 그는 더블팀을 비롯한 우리의 모든 수비 전술을 뚫었다”며 상대 가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웨이드가 번쩍하면 그곳에 클러치가 있다.

◎ 오승환…Oh! 카리스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는 그의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통해 "그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것에서 나는 너무나 인간적인 면을 본다"며 그 요소로 영리하고 냉철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무자비하고 조소적인 인간의 모습을 거론했다.

2006년 오승환이 그랬다. 자신의 투구를 활용하는 영리함과, 얼음장 같은 냉철함, WBC 일본전 마지막 타자 다무라 히토시를 타석에 주저앉혔던 직구의 무자비함. 오승환은 때로 감정과 고장없는 퍼펙트 피칭머신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아시안게임 일본전에서 허용한 끝내기 홈런포의 일시적 조소까지 다행히(?) 있었기에 그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이다.

오승환은 올시즌 단순히 공격만이 클러치의 전유물이 아님을 증명했다. 반드시 잡아야 할 26번째, 27번째 아웃카운트, 그는 주저없이 공을 던졌고 투수가 승부의 고비에서 공격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장면을 수차례 보여줬다. 직구가 포수 미트 한가운데로 들어올 것임을 타자가 알아도, 그 공을 던질 것을 말없이 예고해도 승자는 오승환이었다.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상대가 긴장했던 투수 카리스마의 부활, 10월 29일 마침내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우승을 확정하는 순간, 비로소 함박웃음을 지었던 오승환의 얼굴 위로 승부의 치열함이 평화롭게 스며들었다.

◎ 로저 페더러…신체 능력보다 더 무서운 두뇌



스포츠선수 중 아이큐가 가장 궁금한 선수가 페더러다. 페더러의 강점은 단연 두뇌플레이다. 이 분야의 대명사였던 안드레 애거시가 올해 은퇴해 이제 더욱 독보적이 됐다. 파워 플레이어보다는 절묘한 테크니션이지만 포인트를 얻는 과정이 예술로 평가받는다.

매서운 포핸드를 바탕으로 자로 잰 것처럼 구석으로 향하는 슬라이스, 실수를 용납치 않는 발리와 3수·4수 앞을 미리 예측한 듯한 경기 운영. 공격은 물론, 수비까지 빈틈이 없다. 당연히 이겨야 하는 게임에서 페더러가 밀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언급한 ‘완벽함’ 때문에 ESPN은 올해 페더러=타이거 우즈=마이클 조던이라는 새로운 등식도 도출했다.

페더러가 밝힌 대로 19살 나이에 2001년 윔블던 16강전에서 당대 최강이었던 피트 샘프라스의 31연승을 저지한 것이 선수생활의 전환점. 이후 윔블던 4연패와 US오픈 3연패 등 메이저대회 9승을 거두며 거침이 없었다. ‘클레이코트의 제왕’ 나달에 유독 약점을 드러냈지만 페더러는 내년엔 나달의 프랑스오픈 우승을 빼앗고 지미 코너스가 보유하고 있는 160주 연속(73~77년) 세계랭킹 1위까지 갈아치우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 안정환…2006년 한국축구의 가장 중요한 골



선정하는데 가장 어려움을 준 선수가 안정환이다. 올시즌 한국 축구가 침체를 맞기도 했지만 박지성·설기현 보다는 52년 만에 월드컵 원정 첫 승을 안긴 토고전 골의 상징성이 컸다. 이 한 골로 2006년 클러치 활약을 대표하기엔 부족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만약 한국이 첫 경기 토고전을 1-1 무승부로 끝냈다면 무슨일이 벌어졌을까. 안정환의 골은 2002년 신화의 재현을 목마르게 기다렸던 4년의 어려운 간극을 훌륭하게 이어줬으며 한국축구의 위상도 상당부분 유지시켜줬다.

한국스포츠사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이탈리아전 헤딩슛을 포함, 쇼트트랙 오노 파동을 풍자한 미국전 골세리머니 등 안정환은 황선홍 이후 가장 깊게 국민들의 염원을 현실로 바꿔준 선수였다. 뛰어난 신체 능력은 아니지만, 정확한 위치 선정과 결정력을 발휘하는 골감각으로 약점을 보완했고, 수려한 외모와는 달리 항상 겸손한 자세와 배려로 대표팀 후배들에게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

월드컵 이후 자리를 잡지 못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지만 “안정환의 골은 하나같이 특별했다”는 지난 6월 LA 타임스의 보도처럼 그는 팬들앞에 다시 ‘특별한 의미’로 다가 설 날을 준비하고 있다.

◎ 타이거 우즈…빨간 셔츠안에 숨어있는 5명의 천재



“5년전보다 더 무서워졌다” PGA 선수 팀 클라크의 말이다. 5년전 무슨 일이 있었나. 1999년에서 2000년 사이 우즈는 6연속 우승의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연속 우승 타이를 이룬 올해는 63타 경기 두 번을 포함, 총 언더파(-79→-109)와 투어 평균 타수(68.6→66.8) 등 그때보다 더 업그레이드 됐다.

원인은 끝까지 승부의 끈을 놓치 않는 집중력이다. 우즈가 3라운드까지 앞섰다면 상대는 역전을 포기해야 한다. 96년 데뷔 이후 빨간 셔츠를 입고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했던 12차례 메이저대회에서 뒤집힌 횟수는 제로(0), PGA에서도 우즈는 리드하며 마지막 라운드에 들어선 41개 대회에서 무려 38승을 쓸어담는 괴력을 발휘, 92%의 가공할 확률을 기록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우즈는 베이브 루스의 과감한 스윙, 조 몬태나의 판단력, 피트 마라비치의 볼 컨트롤, 테드 윌리엄스의 히팅 지략과 마이클 조던의 승부 근성을 혼합한 선수”라고 극찬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 은퇴해도 놀랍지 않을 정도로 기념비적인 업적을 이룬 그의 나이가 이제 31세라는 점. 향후 10년간 우즈가 샷을 하는 순간은 역사가 라이브로 쓰여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 강혁…욕심없이 욕심내는 부드러움 속의 칼



경희대 재학시절 부상으로 퉁퉁 부은 발을 억지로 농구화속으로 밀어넣고 뛸 수 있다고 한 선수가 강혁이었나. 강혁은 참 특이한 선수다. 욕심없는 듯 욕심을 낸다. 그 욕심이 적시에 빛을 발한다. 사실 강혁의 이름은 여기 모인 9명의 플레이어들 중 가장 네임밸류가 낮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나머지 8명이 1대1로 ‘클러치 맞장’을 뜨면 누구도 그에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강혁은 강하다. 생김새도 유하고 그 흔한 쇼맨십이나 환호도 거의 찾기 힘들다. 코트에서도 잘 관찰해야 보일 정도로 눈에도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이 부드러움 속에 내장된 칼에 당한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칼에 변속기어가 있다는 점. 강혁은 팀이 원하는 상황에 맞게 언제나 준비가 돼 있다. 수비가 필요하면 하드코어 디펜스를, 득점이 요구될땐 어떻게 해서든 점수를 뽑아내고야 만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데다 넓은 코트 비전으로 경기 흐름까지 꿰뚫고 있어 안준호 감독은 강혁을 신뢰 할 수 밖에 없다. 올해 챔피언 결정전에서 선보인 끈질긴 농구로 MVP가 된 강혁은 이번 시즌 서장훈과 이규섭이 빠진 위기의 기간에도 팀을 성공적 견인, 클러치 데이(Day)의 진수를 떨쳤다.

◎ 데이빗 오티스…배트에 걸리면 게임 오버(Game Over)



“내 주먹에 걸리면 너희들은 스치면 사망이야” 3류 조폭 영화에 나올법한 대사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대로 유효하게 차용 가능하다. 오티스가 타석에 나오면 빈틈이 많아보인다. 육중한 체구는 브레이킹 볼을 헛돌릴 것 같고, 패스트볼에 늦은 방망이는 버스 지나간 후 올리는 무안한 손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 모든게 기우다.

2년전 밤비노의 저주를 끊었던게 기폭제였다. 올시즌 심장 이상으로 잠시 팀을 이탈하기전까지 오티스가 6번의 끝내기 상황에서 작렬한 안타만 5개(0.833). 그중에는 3개의 홈런이 포함돼 있다. 2005년으로 범위를 넓히면 13번 중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출루했다. 가히 클러치 타자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논란은 앨버트 푸홀스와의 비교다. 그러나 둘은 사자와 호랑이처럼 단순 데이터만으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그들만의 고유 영역이 있다. 각각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를 대표하는 클러치 양대 산맥으로 넘어가는 것이 선택의 고민을 덜어준다. 하지만 ‘천재’ 푸홀스보다는 AL의 특성상 4년 연속 지명타자상을 받은 오티스에게서 길들여지지 않은 타석의 야성이 조금은 더 짙게 묻어나온다. 이래저래 당하는 투수만 불쌍하다. 이제 조금전 언급했던 조폭 대사를 바꿔 간략하게 오티스를 요약 하자 “내 배트에 걸리면 끝났다고 복창해라”

◎ 박태종…없는 말이라고 말하지 말라



박태종이 안장위에 오르면 서울경마공원의 팬들은 괴로움에 휩싸인다. “태종이는 내가 사면 안들어오고, 안사면 들어온다”는 푸념, ‘박태종 머피의 법칙’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후자다. 박태종은 인기마와 비인기마를 가리지 않는다. 능력상 힘든 X말도 그가 타면 명마로 돌변한 것이 한 두 번인가. 87년 데뷔 이래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1,258승에 대상경주도 23번이나 우승했다. 올 2월에 펼쳐진 세계일보배에서도 박태종은 스트레이트캐시에 기승, 강력한 선행 승부로 1위를 거머쥐었다.

특히 직선 주로에서 그의 추진력을 한번이라도 관찰한 사람이면 박태종이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말과 하나가 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말의 모든 능력을 끌어낸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왔고 경이적인 복승률 29.1%와 ‘승부사 박태종’은 이 때문에 가능했다.

때로는 인기 1위마에 기승해 입상에 실패하고, 2006 그랑프리에선 섭서디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팬들은 그가 펼치는 ‘인마일체 드라마’를 미워할 수 없다. 경마는 항상 도박과 레저스포츠라는 경계선의 굴레에서 자유롭진 않지만 한국경마에서 박태종의 존재는 그 누구보다도 극적으로 빛난다.

◎ 이승엽…승부처 결자해지(結者解之), 그 치명적 카타르시스



승부처를 스스로 만든다. 그리고 직접 해결한다. 자의는 분명 아닐텐데 절묘하게 ‘클러치 시나리오’를 각본처럼 구성한다. 대개 그 플롯은 3단계, 부진과 굴욕→연마와 경험→여운과 도전. 이 싸이클이 계속 순환되며 치명적 카타르시스를 폭발한다.

한국야구와 지바 롯데, 올시즌 WBC까지. 그가 쏘아올린 홈런에는 ‘배반하지 않는 혼의 노력’이 깊게 응축돼 있다. 이제 이승엽이 승부에 강하다는 말은 판에 박힌 숙어처럼 굳어졌지만 자신이 총 연출하는 클러치 시네마이기에 여전히 식상하지 않다.

올시즌 요미우리로 이적해서도 개막전(3.31)부터 홈런을 신고하더니, 4월 21일 한신전에서는 1-2로 뒤진 연장 11회말 끝내기 2점포를 도쿄돔에 작렬, 잊지 못할 일본 진출 첫 끝내기 홈런을 그렸고, 첫 1경기 2홈런(6월 3일)에 이어 8월 1일에는 홈런 무효 오심을 딛고 400호·401호 아치를 연거푸 터뜨렸다. 시즌 막판 왼쪽 무릎 이상으로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왕을 내줬지만 이승엽은 실망하지 않는다. 클러치 플롯 세 번째 단계의 마지막 지점, 도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월드닷컴 심현석 기자 (hss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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