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55㎝, 45㎏로 왜소한 체격의 여자선수가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여자 펜싱 대표팀의 남현희(25·서울시청)가 그 주인공. 남현희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플뢰레 단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8강에 진출한 국내 최고의 ‘여자 검객’이었다. 지난해 10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서미정·정길옥(이상 강원도청)과 함께 정상에 오르며 최고의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남현희가 지난해 12월 성형수술을 받은 것. 대표팀 훈련기간에 무단으로 수술을 받아 훈련을 게을리했다는 이유로 대한펜싱협회로부터 자격정지 2년이란 징계를 받았다. 자격정지 2년은 상습 약물중독자에게나 내려지는 중징계라는 점에서 ‘성형 수술이 그처럼 중대한 잘못인가’에 대한 거센 논란이 일었다. 자칫 선수생명이 끝날 뻔했던 위기.
이때 그를 붙들어 준 것은 펜싱 남자대표팀 선수인 원우영(24·서울메트로)이었다. 원우영은 지난 10월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딴 강자. 이들은 1999년 대표팀 상비군에서 처음 만나 7년째 공개적으로 사귀는 ‘펜싱 연인’이다. 원우영은 “강한 여자인데 내 앞에서 울더라”며 “운동을 그만두려고 해서 붙잡았다. 그동안의 노력이 아까우니까 아무것도 아닌 듯 흘려보내라고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얼마 뒤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사건이 전개됐다. 진상조사 결과 코칭스태프의 허락을 받았다는 것과 경기력 향상을 위한 불가피한 수술이었다는 것이 확인된 것. 눈썹이 눈을 찔러 염증을 일으켜 이를 막으려고 눈꺼풀 수술을 받으면서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던 양 볼에 간단한 지방이식 수술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상황은 역전됐고 비난의 화살은 순식간에 펜싱협회로 향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격정지 6개월로 징계가 완화됐고, 다시 태극마크를 단 남현희는 지난 10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전 5위, 단체전 동메달이라는 값진 성과를 얻었다.
남현희는 이번 도하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후 원우영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훈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12일 새벽(한국시간) 알 아라비 스포츠클럽에서 열린 여자 플뢰레 개인전 결승에서 서미정을 15-10으로 이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원우영은 관중석에서 뜨거운 박수로 연인의 금메달을 축하해 줬다. 이들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동반 금메달에 도전한 이후 결혼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남현희는 “성형 파문 이후 더 성숙해 진 것은 사실이다. 수술 뒤 자신감도 얻게 됐고 경기력도 향상된 것 같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는 이어 “성형이 아닌 실력으로 주목받게 돼 너무 기쁘다”며 “세계대회와 베이징올림픽까지 잘해서 펜싱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도하=유해길, 우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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