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에 따르면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는 손자에게 죽을 것으로 예언됐다. 이에 왕은 무남독녀 다나에를 청동 탑에 가둬 스스로 대를 끊으려 했다. 그러나 탑 속에서도 다나에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했고 이 소식은 바람둥이 주피터의 귀에 들어갔다.
주피터, 즉 제우스는 아름다운 여성에게 사족을 못 쓰는 호색한이었다. 예의 그 능수능란한 변신술을 이용해 ‘황금 비(golden rain)’로 변신, 청동 탑 속 그녀의 몸에 스며드는 데 성공한다. 이리하여 주피터와 다나에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으니 그 이름이 ‘페르세우스’다.
탄생 자체가 위협이었던 페르세우스는 상자에 담겨 바다로 떠밀려 가고, 길고 긴 우여곡절 끝에 용맹한 청년으로 장성해 메두사를 처치하는 등 일약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아무리 멋진 영웅도 혈족 없는 설움에 혼자 외로운 법. 종내 외할아버지를 찾아 나서지만 아크리시오스는 손자가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 피신한 터였다.
자신이 조부의 저승사자임을 모르는 페르세우스는 할아버지를 쫓고, 그 여정 중 원반 던지기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던진 원반은 관중석으로 날아가 아크리시오스 왕의 머리를 강타해 신탁 예언이 현실이 되고 만다. 그 시신을 확인한 다나에는 슬퍼했고, 많은 관람객은 아무도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에 두려워했다.
이 신화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일깨워 생이 주는 고통과 슬픔을 수긍케 하는 위로 효과 때문이다. 받은 사랑만큼 화폭에도 많이 옮겨졌는데, 마뷔즈의 ‘다나에’는 제우스가 황금 비로 변해 다나에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담았다. 황금 비를 치마폭으로 받는 데 집중한 다나에의 발갛게 상기된 볼, 수줍게 드러낸 한쪽 가슴과 어깨가 풋풋하고 아름답다. 탑의 내부 전경 또한 정교하다.
생명의 상징이기 때문일까. 특히 황금 비가 다나에에게 흘러 드는 모습이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제우스가 다나에를 수태시키기 위해 고안한 이 황금 비는 현대의 불임 부부들에게 사용되는 ‘인공수정법’과 상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불임으로 고통 받는 부부가 해마다 크게 늘어가는 이 시점에서, 다나에는 인공수정을 기다리는 많은 여성들에게 많은 부러움을 살지도 모르겠다. 다나에가 청동 탑에서의 길고 외로운 시간을 보낸 끝에 페르세우스를 갖게 됐듯, 아기에 대한 기다림이 큰 불임 부부에게 건강하고 씩씩한 아기가 찾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년 돼지해, 재복을 타고날 아기들을 위해 예비 부모들이 서둘러 결혼한다는 이 초겨울.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부부들에게 신화처럼 아름다운 아기가 점지되길 바란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www.brea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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