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또한 수민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영화 촬영이 다 끝났는데도 3개월 정도 힘들었어요. 몇달간 수민이로 살다가 막상 현실로 돌아오니까 적응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우울증 비슷하게 앓았어요.”
이송희일 감독 단편영화 ‘굿로맨스’(2001년)로 데뷔한 뒤 두번째로 건네받은 시나리오가 ‘후회하지 않아’였다. 동성애 연기가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처음 받았을 때 나름대로 대사를 보며 상상을 했는데 키스신, 베드신 같은 게 생각보다 수위가 높더라고요.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시나리오를 자꾸 읽다보니까 욕심이 생겼어요. 수민이란 역할도 볼수록 매력적이었고요.”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는 적응이 빨랐다. 상대역을 맡은 배우 이한과 끊임없이 대화를 해가며 머릿속으론 ‘이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촬영 초반 어색했던 사이는 중반 들어서는 눈빛만 봐도 호흡을 맞출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 복병은 따로 있었다. 추위를 이겨내는 게 가장 힘들었으니까.
“작년 10월부터 찍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추워지는 바람에 많이 고생했어요. 첫 장면이 계곡에서 수영하는건데 그때가 11월이었어요. 얼마나 추운지 발에 자꾸 쥐가 나서 애 좀 먹었어요.”
호스트바에서 옷을 벗고 춤을 춰야 하는 촬영도 쉽지 않았다. 그냥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수민과 그때 느꼈을 수민의 감정이 자꾸 아른거려 촬영이 끝난 뒤에도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수민이란 역할을 하게 되면서 그 역시 “삶이 조금은 깊어진 거 같다”고 평한다. 가볍게만 보였던 삶이 수민이란 역할을 하고 난 뒤 비로소 무게감이 느껴졌다.
애착이 가는 장면을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서슴없이 “수민이 재민의 약혼녀를 처음 만나고 난 뒤 재민에게 ‘우리 사이는 뭐예요?’라고 묻는 그 순간”이라고 답했다. 사랑의 애절함이 묻어나 가슴이 저리는 부분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기도 하단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때 입소문으로 알려진 영화는 개봉을 앞두고 인터넷에 카페가 먼저 생길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장편영화로 선보인 첫 발걸음이 꽤 괜찮다. 어떤 역할이든 열심히 한다는 게 그의 다짐이지만 언젠가는 뇌성마비를 앓는 장애인 역할을 해 보는 게 바람이다. 그 아픔을 나눠보고 싶다는 게 이유다.
글 윤성정, 사진 이종덕 기자 ys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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