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제기 절차도 유명무실… 제도 보완 필요 올해 초 사기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은 A씨는 1심 재판에서 작성된 공판조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1심 재판 당시 자기 측 증인의 진술이 본래 의도와는 달리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A씨가 이전 직장의 업무에 관여해 피해자들에게 각종 조언을 했는가가 재판의 쟁점이었는데, 이에 대한 검사의 신문에 증인이 “예”라고만 대답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그러나 A씨는 “증언 취지는 ‘A씨가 맡았던 업무에 대해 피해자들이 물어 보면 예전엔 어떤 식으로 처리했다고 알려준 정도였다’는 것이었다”며 “공판조서만 보면 마치 내가 적극적으로 관여한 것처럼 돼 있다”고 말했다.
공판중심주의 도입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공판조서의 정확성과 객관성을 검증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의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판조서란 재판 중에 나왔던 신문 내용, 증언, 공판 절차 등을 재판부가 작성하는 서류를 말한다. 확정된 공판조서는 ‘절대적 증명력’을 가진다.
공판중심주의는 법원에 제출되는 검찰과 변호사의 각종 기록을 배제하고 재판정에서 나온 진술을 토대로 유무죄를 가리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공판조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A씨의 사례처럼 공판조서가 신문 취지와 증언 내용 등을 정확하게 담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실과 다르더라도 이의 제기조차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공판조서는 속기록과 재판부의 메모, 녹음 내용 등이 종합돼 작성된다. 그러나 증언의 뉘앙스나 취지 등이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게다가 증언이나 신문 등을 취사선택하고 요약하기 때문에 내용이 왜곡될 소지가 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내가 만난 의뢰인의 30∼40%는 증언이 틀리게 기록됐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재판부가 작성한 공판조서에 대한 이의 제기 절차가 이제까지는 사실상 유명무실했다는 점이다. 형사소송법은 ‘이전 공판의 주요 사항을 5일 이내에 조서로 기록해 고지하고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변경을 청구하거나 이의를 진술한 때는 그 취지를 기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의 제기를 통해 검찰과 변호사, 피고인 등이 공판조서를 검증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보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절차는 생략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늑장 작성’이 우선 문제다. 선고 2∼3일 전에 작성돼 이의 제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는 게 변호사들의 주장이다. 공판조서 작성을 고지하지 않는 일도 다반사다. 검사나 변호사의 잘못도 없지 않다. 검사는 이제껏 대부분의 형사재판이 검찰 조서로 진행돼 왔기 때문에 이의 제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변호사들은 이의를 제기하면 재판부의 업무가 증가하기 때문에 지레 눈치를 봐왔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검찰조서는 피의자 확인·서명 절차를 반드시 거친다”며 “공판조서는 지금까지의 관행대로라면 판사 마음대로 작성해도 통제할 수단이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법에 정해진 공판조서 이의신청 절차를 이용하지 않는 변호사와 검사의 소극적인 태도가 더 문제”라고 반박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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