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가다가도 수시로 졸음이 오기 시작 하면 견딜 수가 없다. 몸은 아직도 한국 시간에서 헤어나지 못하니 낮엔 잠을 자고 밤엔 올빼미처럼 깨어서 TV를 본다.
낮에 메릴랜드 시골에 갔다. 볼일이 있어서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 타고는 올라 타자 마자 잠이 쏟아졌다.
시차 적응을 빨리 하려면 낮에 졸려도 좀 참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한국에서의 일들이 꿈속에 떠오르며 마음은 아직도 고국에 있다.
김천역 행진하는 군인들의 뒷모습 |
군인들이 행진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이어서 나는 8월 초에 갔던 경북 선산 옥성면을 떠올린다. 남편이 한국 떠나기 전 꼭 한군데 다녀오라고 심부름을 시켜서다. 선산으로 가기 위해 머물고 있는 수원에서 우선 천안까지 전철을 탔다.
강남 터미널에 가서 고속버스를 타고 가면 되지만 나는 이미 수원에 있으니 북쪽으로 후진해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천안역에서 기차 지도를 보니 대전 가서 버스 타라는 남편의 말을 듣지 않아도 김천 까지 내려가는 것이 더 좋을 듯하여 김천까지 8700원으로 표를 끓었다.
김천 역에 도착하여 선산은 어떻게 가느냐고 물으니 저 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가면 시외 버스터미널이 있으니 거기 가서 타고 가라고 한다.
날씨는 푹푹 찐다. 생전 처음 가는 길인데도 두렵지 않은 것은 여기가 내 나라 내 땅이기 때문이리라. 모르면 물어보고 무슨 말이든 다 알아 듣는다. 제주도 말 빼고는 경상도 말, 전라도 말은 못 알아 들을 말이 없다.
김천 역전 마당에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장면이 눈에 뜨이니 바로 어린 군인 아이들이다. 삼복 더위에 군복을 입고 배낭을 메고 대장을 따라 행진한다. 얼굴 모습들은 영판 어린 십대들이다.
밥들은 다 먹었지?
넷!
그럼 앞으로 행진 한다.
대장의 뒤를 따라 가는 저 어린것들은 내가 어린 시절 생각 하던 군인 아저씨가 아니다. 이미 내가 알던 군인 아저씨들은 모두 노년의 할아버지가 되어 있으리라. 왜 군인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찡한가 생각해 보니 내 친구들의 아들들이 많이 군대에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집이고 저 집이고 군대간다는 아이들이 있다. 대학을 합격해놓고 우선 군대 갔다와서 학교 간다는 아이도 있고 이미 대학 2학년인데 영장이 나와 학업을 중단하고 입영 하는 아이도 있으며 대학 졸업후 입대하니 나이 어린 아이들하고 군 생활하니 힘들다는 아이에 별별 사연이 많다.
그러니 대학을 졸업 하려면 6년은 걸린다. 마음이 영 안좋은 나는 군복을 입고 배낭을 메고 행진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나도 쓰던 모자를 벗고 땡볕에 얼굴을 내밀고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대신했다.
내 아들은 미국사람이라 그런 고충이 없으니 다행이기도 싶고, 어서 우리나라도 병역이 의무가 아닌 지원제로 바뀌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아니, 어서 남북 통일이 되어 군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김천에서 선산은 버스로 45분 정도 걸렸다. 마을 입구가 긴 신작로가 보이고 그 긴 신작로를 걸어가면 산 밑에 아름다운 동네가 있다.
넓은 들판은 벼가 푸르게 자라고 잔디밭처럼 파란 물결이 바람에 흔들거린다. 가는곳 마다 높고 낮은 산이 있고 들판이 푸르다. 선산에서 상주로 가는 시골 버스를 타고 옥성면에서 내리니 식당 하나 없는 깡촌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다시 천안역에서 배낭을 맨 군인들이 기차를 타려고 서 있었다. 김천에서 본 군인들 보다 좀더 밝고 웃으며 장난도 친다.
그래, 그래야지. 맨날 긴장만하면 사람 피곤하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아직도 조국은 두 동강이 나서 우리를 힘들게 한다.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고 여기저기서 연일 떠들어 댈 때 군대간 아들을 둔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요즘 비상이래유! 북한에서 미사일 쏘아 올렸대유. 아이구, 우리 아들 군 복무 잘 마쳐야 하는디……
언제나 이런 근심 소리 안들려 오는 조국에 가볼까? 통일된 조국에 가서 다시 한번 삼천리 금수강산을 여행 하고 싶다.
사람 사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엊그제, 바로 며칠전엔 서울에 있었는데… 지금은 버지니아에서 메릴랜드를 오가며 다시 미국 생활에 젖어 있다. 과학 발달로 이렇게 살기 좋은 세상에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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