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블랙코미디 ‘키핑 멈(Keeping Mum)’을 소개하면서 이 같은 무거운 문제 제기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스터 빈’으로 유명한 코미디 배우 로언 앳킨슨이 출연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웃으면서 머리를 식히려고 이 영화를 선택한 사람들은 끝내 혼돈에 휩싸이고 말 것 같다. 코미디라지만 뒤끝이 썩 개운치 않다.
영화는 43년 전 영국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달리는 기차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아름다운 임신부가 창밖의 시원한 풍경을 보면서 차를 마시고 주변 사람들과 상큼한 눈인사도 나눈다. 동시에 화물칸 궤짝 아래로 피가 흘러나오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피를 발견한 승무원이 기겁을 하고, 기차가 다음 역에 정차했을 때 경찰들이 올라와 임신부를 체포한다. 경찰이 궤짝 안에 들어 있던 두 구의 토막시체가 누구인지 임신부에게 다그치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자신을 두고 달아나려 했던 남편과 그의 정부라고. 그녀는 정신이상 판정을 받고 장기복역에 들어간다.
현재 시점에서 다시 이어지는 영화의 무대는 영국의 한적한 시골 마을 목사의 가정이다. 월터 목사(로언 앳킨슨)와 그의 아내 글로리아(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이제 갓 17살에 불과한 딸 홀리, 초등학생 아들 피티가 일구어가는 가정이 배경이다. 글로리아는 신에게 ‘유머’를 빼앗긴 따분하고 소심한 목사 남편에 싫증을 느껴 골프강사와 놀아나고, 아직 성년에 이르지 못한 딸도 밥먹듯이 남자친구를 바꿔가며 섹스를 한다. 어린 아들까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신세이니, 이 목사 집안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이 집에 늙은 가정부 ‘그레이스’(매기 스미스)가 궤짝을 앞세우고 출현한다. 그녀는 이 가정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서슴없이 살육을 저지른다. 밤새 짖어대는 바람에 글로리아를 불면에 시달리게 하는 개에서 시작해 글로리아의 정부까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심지어 목사에게는 유머 공부까지 시켜 대도시의 목회자 모임에서 멋지게 연설을 하는데 일조하고, 그의 부부관계까지 회복시켜놓는다.
이쯤에서 관객들은 그레이스의 정체에 대해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녀와 이 목사 가족과의 연결고리는 영화를 보면 알게 되겠지만, 대단히 엽기적인 코미디라는 사실만큼은 이 정도만 들어도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이 영화가 더 엽기적인 이유는 화사한 화면과 가족적인 분위기, 신의 대리인으로 살아가는 목사의 일과들과 대비되는 황당한 숨은 줄거리 때문만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살인을 합리화하는 논리야말로 이 영화를 결코 가볍지 않은 엽기성 블랙코미디로 만드는 핵심이다. 월터 목사의 연설 중 한 대목.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다양한 처신이 가능하겠지만 신의 은총으로 간단히 해결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에게 설명을 요구해야 하나요? 글쎄요, 우리가 너무 많은 질문을 하는 걸 신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군요.”
아무것도 모르는 월터 목사의 이 연설 중 신의 ‘은총’과 ‘그레이스(grace)’라는 이름의 의미가 같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신은 과연 누구의 편인가.
조용호 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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