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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커피와 담배''

입력 : 2006-07-14 11:08:00 수정 : 2006-07-14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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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삶 가련한 중생들에 한모금 청량제 ‘커피와 담배’는 짐 자무시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제작한 11편의 단편영화 모음이다. 이 현란한 디지털시대에 흑백을 고집한 영화들이다. 담배는 흑백 못지않게 구시대의 유물 같은 이미지다.

요즘 세상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마약을 취급하는 골동품처럼 여겨지는 추세 아닌가. 더구나 커피까지 그 옆에 나란히 있으니, 감독의 은근하면서도 도발적인 저의가 감지될 법하다.
‘자네 여기 웬일인가?’에 출연한 로베르토 베니니와 스티븐 라이트. 그들은 커피에 중독되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연신 진한 커피를 마셔댄다. 말도 안 되는 엉뚱한 대화로 일관하던 두 남자, 드디어 정말 말도 안 되는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치과에 대신 가주기로 한 로베르토. 그는 할 일도 없는데 일을 주어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고 일어섰다. 혼자 남은 녀석은 뭔가 할말을 제대로 못한 것 같은 미진함을 안은 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첫 단편을 보고 나면 커피도 담배 못지않은 중독성 기호품임을 알겠다. 그러나 이어지는 영화들은 ‘중독’에 관한 한 너그럽다. ‘브로큰 플라워’의 주인공 빌 머레이가 나오는 단편 ‘흥분’은 흥분할 만하다. 빌은 아예 커피를 주전자째 마신다. 그것도 점잖게 대체의학 운운하면서 차를 마시는 녀석들 앞에서. 대스타가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일하는 차림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실제로 스타의 현실을 영화 속에 그대로 끌어들여 코미디의 효과를 높였다. 빌은 ‘흥분하기 위해서’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단편모음 영화가 일방적으로 커피와 담배를 예찬하기 위한 작품은 아니다. 커피와 담배는 이야기를 나누는 배경의 소품이다. 그러니 커피와 담배는 인간들의 대화를 돕거나 엿듣는 소도구들인 것이다. 성공한 스타를 찾아온 또 하나의 스타. 그는 엉뚱하게도 자신이 그와 ‘사촌’ 사이라는 사실을 복잡하게 증명한 서류를 들고 왔다.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힘들게 촌스러운 인간의 접근을 막아내던 성공한 스타, 결국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지 않는 데 성공했는데 아뿔싸, 자신보다 더 성공한 녀석과 친구 사이라는 걸 미리 알았어야 했다.
‘금연’의 장점이 뭔지 아나? 이렇게 시작하는 대화는 결국 “담배 한 대 정도는 피워도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고, 두 사람은 서로 한껏 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한다. 그들은 참으로 가련한 중생으로 등장하는데, 담배야말로 그들을 그나마 살려내는 도구다. 맨 마지막에 배치된 단편은 늙은 두 사람의 방백 같은 영화다. 어디선가 아름다운 음악이 들려오고, 그 음악이 그치면 노인들은 커피잔을 들고 샴페인을 마시는 환상에 빠져든다. 그들은 추억을 ‘마시고’ 지나간 아픔을 ‘태우는’ 존재들이다.
“영화 속의 대사, 감정, 분위기는, 주인공의 연기가 배경 속으로 자연히 동화되도록 만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자욱한 담배연기, 진한 커피향이 감도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마치 커피숍에서 나온 것 같은 신선함을 느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미리 들었던 이런 평가들이 결코 허언은 아니다. 이 영화 모음집은 “카페인과 니코틴처럼 중독성이 강하다.”
조용호 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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