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바람개비, 평화를 춤추다 - 임진각 평화누리

입력 : 2006-07-14 12:03:00 수정 : 2006-07-14 12:03:00

인쇄 메일 url 공유 - +

[작가 임동헌의 우리 땅 우리 숨결] 바람이 일렁이는 순간 바람개비들이 원을 그리기 시작한다. 희고 붉고 푸르고 노란, 원색을 띤 바람개비들의 군무 앞에서 냉정해지기란 쉽지 않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다니기 바쁘고, 나이를 꽤 먹은 축들은 수수깡 끝에 바람개비를 꽂고 동네 골목길을 뛰어다니던 추억을 떠올린다. 지금, 눈앞의 바람개비들은 바람이 불어야 돌아가지만 예전의 바람개비들은 그렇지 않았다. 주인이 내달리기만 하면 언제든 돌아가는 바람개비였다. 예컨대 지금의 바람개비들은 겉은 화려하지만 수동의 영역이고, 예전의 바람개비들은 겉은 초라하지만 능동의 영역에 있었다.


임진각 옆 평화누리에 조성된 ‘바람의 언덕’에서 하늘의 변화를 관찰하며 서성인다. 바다빛 하늘에 구름 몇 점이 끼어들어야 바람개비 사진의 역동성은 한층 배가된다. 셔터 누르기를 잠시 미루고 있어도 바람개비의 군무에 흥을 돋우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은 즐겁다. 그뿐인가. 멀리서 바라보면 ‘바람의 언덕’을 이루는 바람개비들은 한반도 지도 모양을 띠고 있다. 서양화가 김언경씨의 작품인데, 동심을 상징하는 바람개비를 이용해 평화의 메시지를 구현한 것은 지척이 북한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임진각과 자유의 다리, 임진강변의 철조망 등에서 살벌한 느낌이 묻어났지만 이제 그런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하지만 불온한 느낌이 영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북한은 미국 독립기념일에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고, 세계는 지금 북한의 움직임에 따라 일희일비하고 있다. 평화누리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평화누리와 인접해 있는 임진각 옆으로는 자유의 다리 철교를 지난 기차가 도라산역을 향해 달리고 있고, 임진강 상공에는 헬리콥터가 저공 비행하고 있다. 일반인이 더 이상 갈 수 없는 자유의 다리 끝 지점에는 이산 가족들의 애절한 사연을 담은 천 조각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통일 된 그날 우리 이모 부둥켜안고’, ‘이 짧은 편지에 무슨 말을…’, ‘하나님 굽어 주옵소서’, 별다른 미사여구가 없어도 천조각에 씌어 있는 사연들은 그 자체로서 절절하기 그지없다. 이런 판국이니, 북한이 갈등과 평화의 염원은 못 본 척 ‘미사일 카드’를 꺼내들어 그들 고유의 생존 전략을 테스트하고 있는 상황은 현대사의 아이러니로 꼽힐 만하다.

바람개비가 뒤덮은 바람의 언덕 위, 짓푸른 하늘로 몇 점 구름이 섞여 든다.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셔터를 누르는 모습들도 다양하다. 경건한 수도자처럼 옴짝달싹하지 않고 피사체를 응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젊은이들 몇은 바람개비들 사이로 솟구쳐 오르며 이른바 ‘점프 샷’을 하기에 바쁘다. 출렁, 젊은이들이 점프 샷을 할 때마다 바람의 언덕 전체가 출렁이는 듯한 환각이 다가온다. 바람개비의 군무만으로 환각이 다가오는가. 그렇지는 않다.



◇‘바람의 언덕’에서 바람개비들이 화려한 군무를 펼치고 있다. 형형색색의 바람개비들은 한반도 지형을 이루고 있다.


평화누리의 수변무대 앞으로는 ‘음악의 언덕’이 펼쳐져 있다.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나간 푸른빛 ‘음악의 언덕’은 그 자체로서 열린 공간이다. 수변 무대에서 공연이 펼쳐질 때는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공연이 없을 때는 산책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으로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언덕의 높낮이를 따라 휘어져 나간 길은 평화누리의 순결한 바람을 체감하며 심호흡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고층 건물, 잡다한 소음, 현란한 색들의 부딪힘에서 벗어나 눈과 귀와 코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지점인 것이다.
여기에 ‘생명 촛불 파빌리온’이 더해지면 평화누리는 한층 색다른 의미를 취득한다. 지난해 평화누리에서 평화축전을 열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생명의 촛불 파빌리온’에 몰렸다. 3000개의 초에 불을 붙일 수 있는 파빌리온에는 모두 4200명이 참여했다. 그들이 참여하면서 기부한 금액이 1억2700만원이었다. 이렇게 모은 돈은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을 통해 북한 어린이 돕기에 사용됐으니 그야말로 생명 촛불로서의 기능을 훌륭히 소화해 낸 셈이고, 평화누리의 참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증명한 셈이 됐다. 평화누리는 이름에 걸맞게 공존과 배려, 나눔과 베풂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누리에서 가장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생명 촛불 파빌리온’. 초에 불을 붙일 때마다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어린이를 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 땅의 역할을 제대로 살리는 것은 이런 대목에 있다. 정지된 영상으로서의 아름다움, 자연의 아름다움만 빌려오는 이미지만으로는 땅이 지닌 가치를 온전히 살릴 수 없고,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평화누리는 임진각 옆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제의 마당이 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개성 관광 등 남북 왕래가 본격화될 경우 방북 길목에 있는 평화누리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꼭 들러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임진각에서 분단과 망향의 한을 달래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처소 역할을 하는 것도 물론이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땅도 역시 생물이다. 평화누리도 그 의미의 범주에 있다. 평화누리 자리는 본래 논이었다. 그랬으므로, 사람들은 임진각에만 시선을 주고 쓸쓸한 마음으로 떠나기 일쑤였다. 어쩔 수 없이 가눠야 하는 분단 국가 국민으로서의 자괴감이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광활한 논자락을 평화누리로 바꾸자 임진각을 찾은 사람들은 환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곤 했다. 임진각은 젖혀놓고 평화누리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가는 사람들도 늘기 시작했다. 땅의 기능이 바뀌면 사람들의 표정 역시 바뀔 수 있다는 사실, 땅도 역시 생물이라는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여름 한낮의 볕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평화누리에서만큼은 더위에 짜증스런 표정을 짓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문득 바람의 언덕 앞에서 동심으로 돌아간다. 거기에 바람개비를 들고 달리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자리해 있다. 사람들은 문득 텅 빈 음악의 언덕에 멈춰 선다. 연주회는 열리지 않고 있지만 귀 기울이니 하늘과 바람이 연주해 내는 음악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기에 파빌리온 촛불 한 점이 타오르는 모습이 겹쳐진다. 촛불 한 점이 탈 때마다 어린 생명이 되살아난다.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평화가 넘실거리는 곳, 평화누리의 시간이다.

작가 임동헌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있지 유나 '반가운 손인사'
  • 있지 유나 '반가운 손인사'
  • 에스파 카리나 '민낮도 아름다워'
  • 한소희 '완벽한 비율'
  • 최예나 '눈부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