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달러(약 950원) 미만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말리, 니제르, 기니비사우, 부르키나파소, 라이베리아, 가나, 토고 등 아프리카 빈국 청소년들에게 유럽은 꿈 속에서 그리는 낙원의 땅이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그들은 인생을 건다.
이들의 유럽행은 고난과 죽음의 길이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사하라 사막을 도보나 밀수 차량으로 횡단해 천신만고 끝에 유럽의 인접국인 모로코와 모리타니, 알제리, 리비아 땅에 도달한다.
그러나 그들 앞에는 지중해와 대서양이 가로막혀 있다. 여기서 또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된다.
모로코와 스페인을 잇는 지브롤터 해협이나 모리타니와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를 잇는 대서양을 밀수꾼들의 고무 보트나 낡은 배로 건너다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연평균 1000명을 웃돈다.
국제이주기구(IOM)와 국제이주정책개발센터(ICMPD)는 지난 10년 동안 유럽으로 밀입국하려다 지중해와 대서양에서 목숨을 잃은 아프리카인은 약 2만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는 사막을 건너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제외한 숫자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희생자는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다.
모로코와 스페인을 잇는 폭 14km의 지브롤터 해협은 불법 이민자들의 ‘집단 수중 무덤’으로 불리고 있다. 1998∼2001년에만 약 3000명의 젊은이들이 해협을 건너다 목숨을 잃었다.
스페인 남부 항구도시 타리파의 공동묘지에는 이름 없는 무덤이 수두룩하다. 수천㎞의 사막 길을 걸어와 유럽 땅 문턱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최근 불법 이민자들에게 인기 있는 유럽행 루트가 된 스페인 영토 카나리아 제도로 건너가기 위해 모로코와 모리타니에는 약 50만명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모로코 내무부가 최근 발표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2월까지 이 루트를 이용하다가 대서양에서 익사한 사람은 1300명에 달했다. 주 평균 60여명 꼴이다.
그럼에도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는 유럽행을 꿈꾸며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 250만명을 넘는 것으로 IOM은 추산하고 있다. IOM은 월평균 수입 60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는 모리타니 젊은이 50만명, 리비아 젊은이 20만명, 모로코 젊은이 5만명이 유럽행을 모색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이 유럽행을 위해 택하는 루트는 ▲모로코에서 스페인과 프랑스로 향하는 지중해 루트 ▲모리타니와 카나리아 제도로 이어지는 루트 ▲리비아와 튀니지에서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이나 람페두사 섬을 잇는 루트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은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빗장을 더욱 조이고 있다. EU는 국경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2007년까지 예산 2억4000만유로를 책정하고 올해 ‘국경보호기구(ARGO)’를 설치하는 등 불법 이민자 유입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망명신청 규제도 더욱 강화됐다. 스페인은 지브롤터 해협과 시칠리아 섬 해안, 에게 해를 감시하는 프로그램 SIVE를 마련해 해상 루트 단속에 나섰다.
스페인은 아울러 모로코 정부에 압력을 가하면서 국경 감시도 강화했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가는 관문인 모로코 내 스페인 도시 멜리야와 세우타는 불법 이민자 진입을 막기 위한 철조망으로 둘러쌓인 견고한 성곽으로 변했다.
문제는 불법 이민자 단속을 아무리 강화해도 가난과 전쟁을 피해서, 일자리를 찾아 유럽으로 향하는 아프리카 이주민의 엑소더스를 막을 길이 없다는 데 EU의 고민이 있다. 아프리카 인구 9억1000만명 가운데 25세 미만의 젊은이들이 71%를 차지한다. 또 전체 인구의 45.7%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한다. 전 세계 최빈곤 38개국 가운데 32개국이 아프리카에 있다. 1700만명은 정처 없이 이동하는 인구다.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유럽으로 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랑크푸르트=남정호 특파원
johnnam@segye.com
유럽행 첫 관문 세우타·멜리야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들이 ‘지상낙원’ 유럽으로 가는 길목 세우타와 멜리야.
죽음의 사하라 사막을 천신만고 끝에 넘은 뒤 유럽 땅을 밟으려는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첫 목적지는 모로코 안에 있는 스페인령 도시인 세우타와 멜리야다. 그러나 350년 전에 스페인 영토가 된 세우타는 불법 이민자들에게는 철조망으로 둘러쌓인 금단의 도시다. 스페인 본토와 14km 떨어진 세우타는 18.5㎢ 면적에 상주 인구는 6000명이다. 맑은 날엔 육안으로 스페인 남단 지중해상의 영국 영토 지브롤터가 바라보이는 곳이다.도시는 360도 회전하는 감시 카메라, 자동 최루탄가스 발사기들이 설치돼 있는 장벽과 높이 6m의 2중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고 스페인 해병대와 국경수비 경찰, 모로코 경찰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다. 지난해부터 철조망을 6m로 높여 스페인과 모로코가 국경 통제를 강화한 후 두 갈래 철조망 사이엔 개 한 마리 얼씬거릴 수 없다.
그런데도 지난해 9월 철조망 바깥 모로코 땅에서 유럽으로 가려던 아프리카 난민 1200여명이 담요를 덮고 사다리를 세운 후 철조망을 뛰어넘어 세우타 시내로 진입하려다 모로코 경찰이 쏜 총에 7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쳤다. 목숨을 잃은 이들은 1∼2년 동안 사하라 사막을 걸어서 모로코에 도착해 1인당 1000달러(약 94만9000원)에서 2000달러씩 주고 밀입국 안내인(브로커)을 따라 세우타 근방까지 온 니제르, 베냉, 토고, 말리 출신 주민들이었다.
세우타 시내에는 몇 개월 전 철조망을 용케 넘은 뒤 스페인행 밀수선을 기다리며 경찰과 숨바꼭질하는 불법 체류자가 수백명씩 움막과 천막에서 살고 있다. 낮에는 경찰의 단속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밤이 되면 시내로 내려오는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세우타에서 동남쪽으로 400㎞ 떨어진 모로코 내 스페인 도시 멜리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곳은 스페인의 지중해 연안 지역인 코스타 브라바나 좀더 멀리 프랑스 땅으로 건너가려고 밀수선을 물색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도시의 육지 쪽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들이 밀수선을 타려면 보통 2000달러를 내야 기회가 온다. 그러나 선박의 안전은 뒷전이다. 목숨을 건 도박이다. 밀항에 성공해도 도피 생활에서 벗어나진 못한다. 국제이주기구(IOM)는 유럽에서 불법 이주 알선으로 거래되는 몸값이 연간 100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평가했다.
프랑크푸르트=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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