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림사건은 사건은 우리 사회를 급속히 동백림정국으로 바꿔버렸다. 동백림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한 일간지.
▶1967년 ‘동백림 사건’, 세계를 강타하다
독일과 유럽의 ‘68운동’이 파독 광부와 간호사 사회, 나아가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한국 사회가 독일과 유럽 사회에 충격을 준 경우도 있었다. 1967년의 ‘동백림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북괴는 6․25사변 때 완전히 궤멸됐던 남한의 지하세력을 재건하기 위해서 대남공작기구를 정비 강화하고 직접 또는 일본을 통해서 간첩을 침투시키는 한편 구미지구를 통한 간첩의 합법적 침투를 기도하여 1957년도부터 비교적 동서통행이 용이한 여건을 갖춘 동백림(동베를린)에 공작거점을 설치하고 북괴동독대사에 대남공작 경험자인 박일영을 임명하였고 대사관원은 대부분 훈련된 공작요원으로 충당하였음은 물론 다수의 공작책을 서구 각국에 합법적으로 주재시켜 적극적인 대남공작을 벌여왔다. 이 같은 북괴의 대남공작은 1958년부터 서독을 위시한 서구 각국에서 재학 중인 유학생과 각층의 장기체류자들에게 심리전 공작을 전개하면서 서서히 마수를 뻗치기 시작했다.”
1967년 7월 8일 오전. 양복을 깔끔하게 입고 나온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동백림(東伯林,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적화공작단 사건’에 대한 1차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소위 ‘동백림 사건’이 한국 사회와 세계를 강타하는 순간이었다.
사건은 이기양 조선일보 서독주재 특파원의 실종에서 시작됐다. 1967년 4월14일, 이 특파원은 당시 공산국가였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린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체코로 출국한 뒤 행방이 사라졌다.
5월14일 조선일보에 이기양 기자의 실종사건이 보도되자, 임석진 당시 명지대 교수는 이 기자의 납치를 확신하고 5월17일 박정희 대통령에게 자수해 자신이 서독 유학 시절 서울대 친구였던 이 기자를 1960년 8월 주독북한대사관에 연결시켰고, 이 특파원뿐만 아니라 재독동포와 유학생 10여명도 연결시켰다고 밝힌 것이다.
중앙정보부는 임 교수의 진술을 바탕으로 40여명의 ‘간첩혐의자’를 파악한 뒤, 소위 ‘GK-6717공작계획’에 따라 6월 10일부터 황청씨를 총책임자로 3차례로 걸쳐 공작요원 39명을 해외 현지로 급파했다. 황청 등은 6월 15일부터 현지요원인 양두원 참사관 등의 도움을 받아 문서 수신과 발신을 통제하는 등 주독한국대사관을 장악했다.
서독에 급파된 중앙정보부 공작요원들은 6월16일 3~4명씩 1개조로 혐의자 거주지를 향해 출발했고, 6월 18일 독일과 프랑스 등에선 ‘동백림 사건’ 혐의자 40여명을 일제히 검거해 이 가운데 30명을 한국으로 강제 귀국시켰다. 김형욱 부장은 이후 20일간의 수사 뒤인 7월 8일 동백림 사건을 발표했다.
김 부장은 임석진 교수가 1958년 9월 북한 공작원에 포섭돼 교양과 지령을 받으러 동베를린으로 들어가 주독북한대사 박일영 등을 접촉했으며, 이후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을 오간 사람은 1967년 5월까지 서울대 문리대 부교수 황성모씨를 포함 모두 15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그는 또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을 찾은 이들은 북한대사 박일영과 이원찬 등과 접촉하면서 사상교육과 난수표 조립과 암호해독 통신청취 등의 연락방법에 대한 간첩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임 교수 등 7명은 1961년 8월부터 1965년 8월 사이 북한측의 안내로 소련과 중국 등을 거쳐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고 김 부장은 밝혔다.
포착된 혐의자는 임석진 명지대 조교수, 정하룡 경북대 조교수, 조영수 정치학 박사, 김중환 한일병원피부과장, 천병희 성신여대 강사 등을 포함한 194명이며, 이 가운데 107명을 입건 또는 구속수사중이라고 김 부장은 밝혔다.
김 부장은 8일에 이어 ▲11일 서울대 황성모 교수 등 ‘민족주의비교연구회’, ▲12일 음악가 윤이상과 그의 처 이수자씨, 독일 기센대학 유학생 최정길씨, ▲13일 프랑크푸르트 대학 이론물리학 연구원 정규명씨 부부와 파독 광부 박성옥 김성칠, ▲14일 한국농업문제연구소장 주석균씨, 서울 하이델베르크대학 유학생 김종대씨, 로테르담대학 화학연구원 강규호씨, ▲15일 재불 화가 이응노씨, ▲16일 공광덕씨와 파독광부 김진택 등 모두 7차례의 ‘동백림사건’과 관련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7월 22일부터 검찰로 송치된 관련자들이 기소되기 시작했고, 11월 9일엔 기소된 피고인 33명(구속 26명, 불구속 7명)에 대해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간첩죄 및 외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첫 공판이 열렸다.
칠장이 히틀러는
색깔이 빼놓고는 아무 것도 배운 바 없어
그에게 정작 일할 기회가 주어지자
모든 것을 잘못 칠해서 더렵혔다네.
독일 전체를 온통 잘못 칠해서 더럽혔다네.
(브레히트, 김광규 역, 「칠장이 히틀러의 노래」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한마당: 서울, 2004, 76~77쪽)
1967년 12월13일, 서울지방법원. 서울형사지법 합의3부 김영준 부장판사는 정규명에게 사형을, 윤이상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등 2명에 사형, 4명에 무기징역, 나머지 13명에게 3년에서 15년형을 실형을 선고하고, 이수자씨 등 11명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다시 1968년 4월13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정태원 부장판사는 정윤 검사가 6명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4명에게 무기징역 등 더 무거운 형량을 구형한 것에 대해 전적으로 받아들어 언도했다.
하지만 1968년 7월30일 대법원(재판장 김치걸 판사)은 21명 가운데 이응로 등 9명의 형량을 확정하고 2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파독광부 김성칠을 비롯, 정규명 정하룡 임석훈 조영수 윤이상 어준 강빈구 천병희 최정길 김중환 정상구 등 12명에 대해서는 법 적용의 잘못과 증거 없이 사실을 오인했다는 점, 양형이 부당하다는 등을 이유로 들며 원심판결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이수길이 전한 당시 대법원 판결문 내용의 일부다.
“국가보안법 제2조, 헌법 제96조 제1항 소정의 간첩죄의 기수시기에 관하여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가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행위를 한 때로 보고 북괴로부터 남한에 잠입한 후에 다만 동지 포섭, 접선한 사실이 있을 뿐이요 지적할 만한 기밀의 탐지, 수집행위 자체는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기수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고 함이 본원의 판례이고 이를 변경할 필요는 없다.
피고인들이 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우리나라로 귀국함에 있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부터 국내에 돌아가면 동지 포섭, 지하당 조직과 같은 지령을 받고 돌아왔다 하면 반공법 제6조 제4항의 소정의 잠입죄에 해당한다. 국가보안법 제2조 헌법 제98조 소정의 국가기밀을 탐지 보고하라는 지령을 전혀 받은 바 없다면 귀국행위가 바로 위법한 소정의 간첩죄라고 볼 수 없다.”(이수길, 『한강과 라인강 위에 무지개다리를 놓다』, 지식산업사: 서울, 1997, 259~260쪽 재인용)
판결문의 핵심 내용은 피고인들은 한국정부를 전복하고 북한을 이롭게 하는 간첩행위를 하지 않았고, 간첩도 아니라는 내용이다. 다만 개인사정과 친구간의 얽히고설켜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을 방문하거나, 평양을 왕래했다는 것이다. 즉, 실정법은 위반한 사실은 맞지만 그렇다고 국가보안법 제2조 등의 간첩죄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내용이다.
사건은 1968년 1월15일 서울고법 형사부 재항소심(재판장 송명관 판사)에서 동백림사건 재항소심 공판에서 정규명, 정화룡에 사형, 조영수에 무기, 임석훈, 어준에 징역 15년, 윤이상에 징역 10년을 각각 선고했다. 1969년 3월31일 재상고심 재판부(재판장 방순원 판사)는 선고공판에서 정규명, 정하룡의 사형을 확정지음으로써 정부 수립 후 5심까지 오른 첫 공안사건재판의 막이 내렸다.
재판과정에서 형이 확정된 작곡가 윤이상은 1969년 2월24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으며, 이응로 화백도 같은 해 3월7일 풀려났다. 임석훈, 최정길 유학생 등 중형을 받았던 관련자들도 그해 1월과 3월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서독에 돌아왔으며, 1970년 광복절을 기해 사형이 확정된 정규명 정하룡까지 모두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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