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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광부만들기2-시험의 추억[3-3]

입력 : 2008-01-05 18:55:59 수정 : 2008-01-05 18: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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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파독 광부들은 독일에 가기 전 국내 광산 등에서 현장 교육을 받았다. 사진은 국내 교육훈련 소집통지서(권이종 제공)


▶독일 광부 만들기2-시험의 추억


예비 광부로서 기초훈련과 독일어 교육을 받았던 파독 광부들. 당시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에 시험에서 선발되기 쉽지 않았다.

파독 광부들은 일부 순서가 뒤바뀌기도 했고 때론 필기시험을 치르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필기시험과 면접, 신체검사 등 크게 3 가지를 치러 뽑혔다. 하지만 경쟁률이 워낙 치열했기에 시험 과정에서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 녹아있는 ‘추억’이 쏟아졌다.

필기시험은 대체로 광산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연장의 이름과 기능 등 광산실무가 다수를 이룬 가운데 일부 상식을 묻는 문제가 출제됐다고, 파독 광부들은 분석했다.

면접은 광산 경력과 성실성 등을 점검하는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지원자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면접을 통과하려 했다고 한다. 멀쩡한 손을 시멘트 바닥에 갈아 오는가 하면, 허름한 옷을 입고 면접장에 들어오기도 했다. 먼저 치른 면접자들의 질문이 재빨리 복사되어 뿌려지기도 했다.

또 ‘가짜 광부경력 만들기’ 등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1주일~1개월 정도의 현장 경험이 1~3년짜리 광부 경력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광산회사와의 뒷돈 거래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정래의 리얼한 묘사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화순 탄광행을 서두른 것은 배상집이었다. 탄광은 강원도에 많지만 곳곳마다 서독에 가고 싶어하는 ‘나이롱 광부’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 이미 소문나 가짜 경력증을 의심받기 십상이라는 거였다. 가짜 경력증이 들통나지 않게 하려고 동떨어진 데를 골라낸 것이 화순탄광이었다.
“5만원이면 쌀 열가마값이긴 하지만 많다고 생각할 건 없어. 그보다 몇십 배 많은 돈을 벌기 위한 투자니까. 그리고 양심이니 뭐니 하는 것도 생각할 것 없어. 어차피 가짜끼리 벌이는 경쟁이고, 한국에선 돈 안 쓰고는 되는 일이 없으니까. 인생살이 다 돈 놓고 돈 먹기야.”
배상집은 마치 세상살이에 이골이 나고 산전수전 다 겪은 장돌뱅이처럼 말했다. 그 돈 5만원은 가짜 경력증을 만드는 데 필요한 뒷돈이었다(조정래, 『한강4』, 해냄:서울, 2003, 116~117쪽).

신체검사는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서독의 광업에서 기계화가 많이 이뤄져 있다고는 하지만, 광산 노동은 기본적으로 육체노동이었기 때문에 체력이 중요했다. 1972~1973년 파독광부 시험에 지원한 1559명을 연구한 최삼섭의 연구에 따르면, 신체검사 불합격율은 무려 47.9%(746명)였다(최삼섭, 「우리나라 독일광부 지원자에 대한 건강상태에 관한 조사연구」,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74, 25쪽 참고).

키는 160센티미터, 몸무게 60킬로 이상이어야 했다. 눈에 확연하게 드러나는 키와 달리, 몸무게를 둘러싼 에피소드가 더욱 많았다. 잘 먹지 못하던 시대였기에, 몸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았다. 밥을 몇 그릇씩 먹는 사람, 물을 잔뜩 먹는 사람, 납덩이를 속옷 속에 넣고 저울대 위에 오르는 사람 등. 한 파독 광부(1976년 3월 파독)의 고백이다.

군에서 63kg을 유지하던 나는 사회에 나와 1년간의 시달림과 심한 흡연으로 인해 53kg이라는 체중미달 상태에서, 1차 종합검진에서 불합격판정을 받아, 일주일 후에 체중만을 다시 확인하는 재검사에 응해야 했다.
일주일 사이에 4kg(당시의 기준은 57kg)을 채운다는 것은 나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검사를 앞에 둔 하루하루의 시간은 빨리 지나갔고, 꼭 가야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누구에선가 힌트를 얻어 팬티 밑에 납덩이를 매달기로 결정을 내렸다. 동대문시장 주변을 돌아다니며 구입했던 작은 납덩이들도 고작 3kg 이상을 늘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머지 1kg은 먹어서 채우는 방법 밖에 없었다. 지정된 체중검사 날이 되어, 내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는, 체중을 다는 저울에 오르기 전에 먹을 대로 먹었던 상태에다, 미리 준비했던 생계란 20개를 풀어 다 마시고 저울에 올라섰으니, 위장이 감당할 수가 없었다.
저울의 바늘눈금에 서자마자 화장실에 뛰어가서 토하고 또 토했더니, 신체검사를 담당하시는 분이 조용히 자기 방으로 불렀다. 부정한 방법으로 검사에 응했다는 것 자체가 불합격이며, 위경련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충고와 함께 나무라셨다(안양수, 「물새 동기회에 대한 소고」, 재독한인글뤽아우프친목회 엮음, 『파독광부 30년사』, 1997, 194쪽).

X-레이 촬영도 중요한 과정이었다. 주로 폐결핵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지만 되레 경력 광부를 떨어지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3년 이상의 대다수 경력 광부들은 엑스레이 검사에서 폐에 탄가루가 있는 게 발견됐던 것이다.

1차1진 이후 회충의 보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대변 채취도 이뤄졌으며, 시력과 혈압 등도 측정됐다. 넓이뛰기와 60킬로그램짜리 모래주머니들기 등도 측정됐다.

주요한 불합격 요인을 분석해 보면, 신장보다 상대적으로 체중 때문에 떨어진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체중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에피소드가 많은 배경이기도 하다.

최삼섭의 연구에 따르면, 키 때문에 불합격한 비율은 0.6%이고 체중미달은 3.1%이었다. 체중미달이 신장미달보다 5배나 많아, 키 보다는 몸무게가 사람들을 더 괴롭혔다. 원인별 불합격비율은 척추선천성기형이 7.1%로 가장 많았고, 골성관절염(6.3%), 폐섬유증(4.7%), 만성기관지염(4.6%), 고혈압(3.6%), 척추골절(3.4%), 체중미달(3.1%), 척추관절염(2.0%), 폐결핵(2.0%), 늑막염(1.7%), 척추열증(1.0%), 매독(1.0%), 색맹(1.0%), 신장미달(0.6%) 등 순이었다(「우리나라 독일광부 지원자에 대한 건강상태에 관한 조사 연구」,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74, 32~33쪽).


슬퍼 말아라, 이윽고 밤이 오나니
그때면 흰 야산 위에
차가운 달이 몰래 웃는 것을 우리는 보며
손을 맞잡고 쉬게 된다.
(헤르만 헤세, 「유랑의 길(크놀프의 추억)」; 김희보 편저, 『독일 명시선』, 서울: 종로서적, 1984, 190~191쪽)



***자료제공 또는 문의=파독 광부와 간호사님과 관련한 사진, 자료 등이 있으시다면 저의 이메일(kimgija@segye.com)로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가능하다면, 소중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파일 용량이 많을 경우에는 알집으로 압축해서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3-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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