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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vs 전공투 ''전설적 토론''

입력 : 2006-04-01 13:35:00 수정 : 2006-04-01 13: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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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일본 어느날 한 극우소설가가
극좌 학생운동 한복판에 뛰어들어가…
1960년대 일본은 헬멧과 곤봉으로 상징되는 학생운동의 시대였다. 1968년 의학부 파업으로 시작된 동경대 투쟁은 그 절정이었다. 동경대의 상징 야스다 강당을 점거한 학생들은 전공투(全共鬪·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를 결성하고 외부의 접근을 차단한 채 그들만의 ‘해방구’를 만들었다.
1969년 5월13일. 일본 최고의 극우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전공투가 점거한 야스다 강당에 혈혈단신 들어선다. 미시마는 ‘금각사’ ‘가면의 고백’ 등을 통해 전후 최고 소설가로 평가받지만 일본의 재무장과 자위대 총궐기 등을 주장한 대표적인 극우 지식인. 그는 이날 혁명 열기가 가득한 야스다 강당에서 극좌파 전공투 1000여명과 한바탕 격론을 벌인다. 이 책은 바로 이 ‘미시마 대 전공투’의 전설적 토론을 담았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미시마와 전공투 양측은 당시 자민당과 공산당으로 대변되는 ‘뜨뜻미지근한’보수와 진보가 이끈 전후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려는 근본주의라는 점에서 접점을 찾았다. 이들은 일본 권력구조와 체제 당국자의 눈 속에서 ‘불안’을 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서로의 지향점은 달랐다. 미시마는 ‘천황’을, 전공투는 ‘해방구’를 향해 달렸다. 미시마는 일본 문명의 중심에 천황을 놓고 “고대부터 내려오는 천황 숭배 사상을 현대에도 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공투는 ‘혁명’과 ‘해방구’라는 개념으로 맞섰다. 전공투는 당시 기득권 세력을 비판하며 ‘미일 제국주의 타도’와 ‘제국대학 동경대 해체’ 등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날 양측은 결국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그러나 이날의 격론이 양측 입장 차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면 ‘전설적인’ 토론으로 남지 못했을 터. 토론은 우익과 좌익, 진보와 보수 간 정쟁을 넘어섰다. 이들의 공방은 일본의 문제를 벗어나 ‘인간’과 ‘역사’라는 본질적 문제까지 파고들었다. ‘폭력 부정은 옳은 일인가’ ‘정치와 문학의 관계는?’ ‘시간은 연속적인가 비연속적인가’ 등 인문·사회 전반을 넘나드는 다양한 주제를 통해 서로의 견해를 듣고 발전적으로 수용할 자리를 만들었다.
이 때문인지 이날 만남에 대한 서로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미시마는 “전공투 방문은 대체로 유쾌한 경험이었다. 토론장 입구에 고릴라 모습으로 그려진 나를 보고 나도 웃고 학생들도 웃었다. 이때 이 회합에 웃음이 있음을 알았다. 적어도 사람은 웃으며 싸우지는 못한다”라고 회상했다. 훗날 전공투 측 인사도 “모든 이들의 얼굴이 살아 있었다. 특히 미시마의 얼굴이 그랬다. 아마 그에게는 이날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라고 평가했다.
이 책은 1부에서 미시마와 전공투의 토론을 담고 있다. 양측이 간헐적으로 주고받는 냉소적 농담부터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격정까지 현장의 숨결을 그대로 전달한다. 2부에서는 1999년 30년 만에 다시 만난 당시 토론 패널들의 대담을 엮었다. 1970년 자위대 본부를 점거한 채 시위하다 할복자살한 미시마를 제외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던 당시 20대 전공투의 토론자들이 다시 모여 그날의 격론을 반추하고 평가했다. 15시간에 걸친 이들의 마라톤 대담에서 한국의 386세대에 해당하는 일본의 50대가 돌아보는 격정과 열정의 시간이 엿보인다.
540쪽이 넘은 이 책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엘리트 지식인들의 격론은 대담 형식으로 가감 없이 담겨 있고, 유물론 관념론 변증법 등 쉽지 않은 사회과학 용어가 넘쳐난다. 그러나 좌우익,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일본 역사의 중요 순간을 체험하고 그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당시 역사적 토론을 주관한 전공투 회원은 “같은 생각을 가진 진보 인사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자기 목소리를 내는 미시마를 토론 상대로 택했다”고 밝힌다. 미시마는 그날 토론에서 “나는 제군들의 열정을 믿습니다. 다른 것은 일체 믿지 않더라도 이것만은 믿는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랍니다”라며 젊은 좌파 학생들의 열정에 깊은 신뢰를 드러낸다. 비록 ‘적’이라고 할지라도 생각의 차이는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일본 지식인들의 합리적 자세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석호 기자 sok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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