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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세계'' 뒷면엔 추악한 ''전류전쟁'' 있었다

입력 : 2006-03-11 12:04:00 수정 : 2006-03-11 12: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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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미국 뉴욕주 사법당국은 전통적 사형집행 방법인 교수형의 대안을 찾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게 토마스 에디슨의 전기의자. 그는 사형집행용 의자를 직접 만들고 “고압 전류가 가장 빠르고 고통 없이 사형수에 죽음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인다. ‘열흘마다 사소한 것, 6개월마다 중요한 것’을 발명하며 평생 1093건의 특허를 받은 ‘발명왕’이 전기의자에까지 집착한 사연은 무얼까.
이 책은 전력산업 초창기인 19세기 말 전력 공급 사업권을 놓고 벌어진 기업 간 ‘전류 전쟁’을 소개한다. 막대한 부와 명성을 놓고 벌인 전류 전쟁. 주연은 에디슨, 조연은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와 기업가인 조지 웨스팅하우스였다.
에디슨이 선호한 직류 방식은 전류를 강하게 만들 수 있지만 전압이 낮았다. 송전 시 발생하는 전선의 저항으로 전기량이 감소해 발전소 인근에만 전력을 공급할 수 있었다. 반면 웨스팅하우스의 교류 방식은 전압이 높아 멀리까지 전기를 공급했다.
그러나 높은 전압 때문에 감전사 위험이 높다는 단점이 있었다. 각각의 장단점을 가진 양측은 크고 작은 전력사업에서 마찰을 피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벌인 세 번의 큰 충돌은 미국 기업사에서 가장 별나고 추악한 기업 전쟁으로 꼽힌다.
선공은 에디슨이 했다. 그것도 아주 비열한 방법으로. 에디슨은 원래 사형제도에 반대해 왔지만 사업 앞에서는 달랐다. 그는 뉴욕주 사형집행에 자신이 직접 고안한 전기의자를 사용토록 로비했다. 그러나 전기는 전압이 높은 교류를 쓰도록 했다. 웨스팅하우스의 교류전류를 ‘사람을 죽이는’ 전류로 인식시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도끼 살인마’를 상대로 한 최초의 전기의자 사형집행에서 사형수를 즉사시키는 데 실패하면서 에디슨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두 번째 대결은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장에서 벌어졌다. 미 금융재벌 J P 모건은 에디슨의 회사 등을 합병한 거대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을 탄생시켜 만국박람회장 조명설비 입찰에 나섰다. 이때 또 한 번 끼어든 웨스팅하우스는 테슬라가 개발한 교류 시스템을 앞세워 입찰을 따내는 데 성공한다. 에디슨 진영의 두 번째 참패.
마지막 ‘나이아가라 대결’은 이들의 승부에 쐐기를 박는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한 발전소를 설치한 캐터랙트사는 약 26마일 떨어진 버팔로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송전 사업자를 물색했다. GE는 입찰에 뛰어들어 최후의 일전을 벌이지만 승리의 여신은 또다시 웨스팅하우스의 손을 들어줬다. 전류 전쟁은 끝났다. 웨스팅하우스와 테슬라. 그리고 교류가 이겼다. 웨스팅하우스와 테슬라는 ‘스타’인 에디슨을 조연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그러나 비신사적인 방법까지 동원하고 고배를 마신 에디슨에게도 박수는 보내야 한다. 인류를 위해 남긴 그의 공헌은 결코 폄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테슬라의 전류 전쟁은 경제계 거물들이 ‘빛의 제국’을 창조할 기술을 지배하기 위해 벌인 기업 전쟁의 한 서사시일 뿐이다.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게 당연한 생리 아니던가.


빛의 제국/질 존슨 지음/이충환 옮김/양문/2만3500원


전류 전쟁의 전모를 밝혀주는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개별 인물 탐구에 있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전류 전쟁 주연과 조연의 심리나 성격, 인생역정을 꼼꼼하게 담아냈다. 사업가로서 에디슨은 무자비하고 악랄했다. 사형장에 전기의자를 도입해 ‘교류=죽음’으로 연결시키려는 노력에서 더이상 흰머리에 자상한 모습을 한 ‘발명가’의 모습은 찾기 힘들다. 변압기를 발명하며 전류전쟁을 승리로 이끈 테슬라는 천재였지만 기인이었다. 다른 사람과 악수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진주목걸이를 한 여성을 혐오했다. 에디슨과의 대결에선 냉혹한 승부사의 면모를 보인 웨스팅하우스는 값싸고 풍부한 전기로 동력을 공급받는 세계를 상상한 이상주의자였다. 또 자금 압박에 처했을 때 노동자를 끝까지 챙기는 자상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들 이전에 등장한 선구적 전기 연구자들의 얘기도 눈여겨볼 만한다. 정전기를 실험하는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부터 폭풍 속 연을 날려 번개가 전기임을 밝혀낸 벤저민 프랭클린 등도 전류 전쟁이 있기까지 빼 놓을 수 없는 숨은 조연들이다. 원제는 ‘Empires of Light’.

안석호 기자
sok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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