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를 소재로 한 사극들은 300억∼500억원의 대규모 제작비와 100부작에 이르는 스케일로 웬만한 영화 몇 편은 찍을 수 있는 수준. 역사극의 대가와 방송사 역량이 총결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MBC ‘주몽’은 ‘허준’ ‘상도’의 최완규 작가와 ‘다모’의 정형수 작가가 공동 집필한다. SBS ‘연개소문’은 ‘용의 눈물’ ‘영웅시대’의 이환경 작가와 ‘토지’의 이종한 PD가, 김종학 프로덕션의 ‘태왕사신기’는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의 명콤비 김종학PD와 송지나 작가가 뭉쳤다.
◆고구려 영웅들, ‘나를 따르라’
MBC 100부작 ‘주몽’과 SBS ‘연개소문’은 벌써 포문을 열었다. 둘은 5월 월화 드라마 시장에서 맞붙는 ‘전면전’을 택했다. MBC는 ‘연개소문’보다 1∼2주 앞서 시작하기 위해 편성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지난 1월 촬영을 개시한 ‘연개소문’ 역시 최근 대규모 안시성 전투를 촬영했다. 주인공의 청년 시절부터 시작하는 사극의 관례를 깨고 1∼2회에서 플래시백(회상) 기법을 써서 안시성 전투 장면을 배치해 기선을 제압한다는 전략에서다.
지자체의 드라마세트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규모 세트 제작 경쟁도 볼거리다. ‘연개소문’ 세트장은 경북 문경 석탄박물관 부근 1만3000여평 부지에 고구려성, 신라성, 연개소문과 김유신 생가, 안시성과 요동성 등 세트를 제작 중이다. ‘주몽’은 전남 나주시 3만5000평 부지에 오픈세트장을 조성 중이다. ‘태왕사신기’는 제주도에 2만여평 규모로 고구려 광개토대왕 궁궐 등을 건립해 이달 말 경 촬영에 들어간다.
◇‘주몽’의 송일국 |
◆정통 남성사극 vs 퓨전사극
‘주몽’은 송일국과 한혜진이, ‘태왕사신기’는 배용준과 문소리, ‘왕의 남자’의 정진영 등이 캐스팅됐다. ‘연개소문’은 유동근이 연개소문 역. 이환경 작가가 “‘주몽’ ‘태왕사신기’가 퓨전사극인 반면 ‘연개소문’은 정통 남성사극”이라며 여성 배역을 강화하지 않겠다고 선언, 애초 유동근과 함께 부부로 출연키로 했던 전인화의 출연이 불투명해진 상태다.
빈약한 사료는 작가적 상상력의 곳간일 터. ‘태왕사신기’는 광개토대왕 역의 배용준이 윤회를 거듭하는 등 판타지 사극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왕의 남자’나 ‘대장금’처럼 허구적 재미를 강조한 사극과 달리 이들 고구려 사극은 민족주의적 영웅 일대기를 다루는 만큼 균형 잡힌 역사의식이 전제된다. 이환경 작가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해 훼손되는 우리 역사를 지키고 복원하자는 취지로 드라마를 쓰게 됐다”면서 “중국인들이 최고의 황제로 여기는 당 태종 이세민이 안시성 전투에서 연개소문에게 크게 패하고 한쪽 눈까지 잃어버리는 장면 등이 방영되면 중국이 ‘중국 비하’라며 불편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14일 경북 문경에서 열린 ‘드라마 연개소문 제작과 고구려의 이해’ 학술세미나에서 우리역사문화연구소 김용만 소장은 “고구려를 소재로 한 방송 드라마 제작이 활발해지는 데 대해 반가움과 동시에 우려가 생긴다”면서 “일례로 연개소문을 백전불패의 영웅이나 예언자, 독재자의 모습으로 그려내기보다 7세기 고구려가 그에게 요구한 것에 얼마나 충실했으며, 시대적 요구에 맞는 미래상을 실천했는지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경=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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