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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졸업식때 일가 친척 다 모였는데…"

입력 : 2006-02-10 09:18:00 수정 : 2006-02-10 09: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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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고 졸업생들이 말하는 ''졸업의 추억'' 졸업식 풍경은 세월 따라 변화무쌍하다. 예전엔 빛 바랜 흑백사진에서 묻어나던 뭉클함이 있었다면 요즘엔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경쾌함이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라고 할까?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은 인천 송도고의 졸업식도 그 세월만큼이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문성모(84), 권영섭(57·송도고 교무부장), 권오룡(52·시민단체 간부), 백일남(48·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 사무차장), 이상선(39·기업인), 임현섭(30·대학 조교)씨.
송도고 올드보이들이 ‘졸업의 추억’을 말한다.

# 검정 교복과 백색 밀가루 폭탄 세례
1960, 70년대 졸업식 하면 떠오르는 풍경은 검정 교복 위로 쏟아지는 하얀 밀가루 세례. 요즘도 졸업식장에 밀가루가 등장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애교 수준. 당시 졸업은 검은색 교복이 상징하는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32년째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1968년 졸업생 권영섭씨가 말했다. “우리 졸업식은 교복에 밀가루를 뿌리거나, 아니면 아예 교복을 찢고 얼굴에 구두약 바르던 기억밖에 없다. 그래서 졸업식 때면 학교에 비상이 걸렸다. 밀가루 가져오면 모두 뺏고…. 그때만 해도 일본식 교복의 단추 하나만 끼우지 않아도 난리가 나던 시절이었으니….”
금기가 많던 시절이라 졸업은 해방과도 같았다. 1977년에 졸업한 백일남씨는 “요즘에야 학교 다닐 때 벌써 카페도 가고 맥주도 마셔 보고 하지만, 그때는 극장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시절이었다고. 졸업식 끝내곤 친구들과 막걸리를 먹으러 갔는데 얼마나 좋던지….”
교복과 밀가루는 바늘과 실의 관계일까? 1983년 교복 자율화 조치로 중·고등학생도 사복을 입게 되자 졸업식의 ‘밀가루 폭탄’은 잠깐 사라진다. 그러다가 1986년 교복이 부활하자 밀가루 세례 풍경이 다시 등장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40년에 졸업한 문성모씨의 졸업식은 엄숙함 그 자체였다. 송도고는 원래 1906년 개성에서 개교했다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피란 내려와 인천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송도고의 송도는 인천 송도(松島)를 말하는 게 아니라 개성을 뜻하는 송도(松都)다. 문씨의 졸업식 추억은 늘 개성과 함께했다. “개성 북쪽 송악산 아래 교정에서 졸업생 160명과 선생님들이 모여 조촐하게 졸업식을 했어. 요즘처럼 요란을 떨지는 않았고 그냥 차분하게 지냈지. 사진기가 귀하던 시절이라 개인적으로 가져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그냥 졸업식 후에 운동장에 모여서 다 같이 기념사진 찍으면 그것으로 끝이었어.” 일본 메이지(明治)대학으로 진학한 문씨는 태평양전쟁이 격화되자 학병으로 끌려가 1년8개월간 복무한 뒤 광복과 함께 풀려났다.



◇1964년 송도고 졸업생들

# 카메라 빌려 찍고 나니 필름 없어 황당
졸업식의 감초, 기념사진으로 화제가 넘어간다. 권영섭씨가 “말도 마라”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60, 70년대만 해도 졸업식 일주일 전부터 사진기를 수배해야 해. 아마 한 동네에 몇 대 없었지. 지금이야 디지털 카메라가 있지만, 그때는 빌린 카메라로 찍을 줄도 몰라서 현상하면 시커멓게 나온 경우가 많았어. 그래서 졸업사진이 없는 사람도 많아. 어허허. ” 1973년 졸업한 권오룡씨가 겸연쩍게 웃었다. “나도 카메라가 귀하니까 집에는 없었고, 졸업식 때 한 대를 억지로 빌렸거든. 신나게 찍고 나서 보니 필름이 없었던 거야. 그래서 졸업식 사진이 하나도 없다니깐.”
1985년에 졸업한 이상선씨 때만 해도 확실히 우리나라 경제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 그는 “우리 때는 그래도 다 카메라 가져와서 친구들과 함께 찍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1995년 졸업한 임현섭씨가 캠코더 자랑을 한다. “우리는 아무래도 더 풍족한 세대잖아요. 우리 땐 필름 카메라 대신 캠코더가 등장한 시기죠. 영화 찍듯이 졸업식 풍경을 동영상으로 만들고….”
졸업식날 먹었던 별미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거리다. 권영섭씨가 회상했다. “우리 때는 자장면 한 그릇이면 최고였지. 중학교 졸업식 때였지. 친구 서너 명의 부모님이 못 오신 거야. 그래서 우리 부모님이 다 데려가서 자장면 한 그릇씩 사주었거든.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 먹었던 자장면을 잊을 수 없다고들 해.” 권오룡씨가 “나는 그래도 졸업식날 탕수육 맛은 봤지”라고 하자, 백일남씨가 “선배님, 저도 탕수육에 볶음밥이랑 군만두가 나왔습니다”라고 맞장구를 친다. 임현섭씨가 “우리는 갈비세대”라며 “졸업식 때 가족과 함께 자가용 타고 시내로 나가 불고기 갈비 먹었던 세대”라고 말하자 모두 웃는다. 역시 세대가 다르다.
# 졸업은 새로운 미래 향한 출발점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적게는 10년, 많게는 6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시간의 차이만큼이나 졸업에 대한 느낌은 다를 것이다. 졸업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일까?
문성모씨가 옛 기억을 더듬는다.“ 나는 너무 옛날 사람이라서…. 일본이 만주, 중국 침략하고 동남아 침략할 때 학창 시절을 보냈지. 소학교에서 대학교까지…. 그래도 난 행운아였어. 일제 시대에 대학도 갔으니. 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게 아쉽기도 했지만 하나의 기쁨이기도 했지. 전통 있는 학교의 졸업생이란 긍지를 갖고 살려고 했어.”
권오룡씨가 말했다. “우리 때는 고교 졸업을 하면 교복을 벗고 대부분 사회로 나가기 때문에 어른이 된다는 느낌이었어. 지금도 졸업은 성인이 된다는 것이니 앞으로 착실히 살아갈 계획을 스스로 세워야 할 때가 아닐까?”
권영섭씨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강조한다. “요즘은 졸업식의 의미가 많이 준 것 같아. 졸업은 성장 과정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인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백일남씨도 졸업은 성장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했다. “졸업을 몇 번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컸다는 것을 느꼈어요. 인간적으로 성장한다고나 할까. 졸업이 중요한 것은 끝이 아니라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작은 발판이자 시작점이라는 것이죠.” 막내인 임현섭씨도 의젓하게 말했다. “책임이죠. 특히 고교를 졸업하면 이제 성인으로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지요. 살면서 새로운 시작이고요.”
이상선씨가 말했다. “예전에 신만영이라는 음악 선생님이 계셨어요. 우리 학교엔 졸업 30년 후에 동기들이 다시 만나는 재상봉회라는 게 있거든요. 그분은 ‘졸업 후 얼마나 성공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인생을 충실히 사는 게 중요하다. 후회 없이 살아서 30년 재상봉회에서 친구들을 자랑스럽게 만나라’라고 하셨어요. 앞으로 9년 남았는데 졸업 시즌이 되면 항상 그때 말씀이 기억나죠.”
인천=글 김청중·박진우, 사진 송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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