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일레븐 가게 앞에서 사람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웅성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저들은 누굴 기다릴까? 의구심이 생긴다.
나중에 동료들한테 그들이 막 노동 하는 사람들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자기들을 데려갈 차를 기다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세븐 일레븐 앞 가게는 새벽 인력시장이란 것이다.
자동차가 지나가며 맘에 드는 사람을 뽑아서 필요한 인원수를 태워 간다. 대개 집을 짓거나 도로를 만들거나 하는 막노동 일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인 9시 반쯤, 내가 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그 근처로 학교 버스를 타고 직업 훈련을 나가는데 그때 까지도 차에 태워지지 않은 사람들이 몇 사람 남아 있다. 그들은 새벽 6시 이전에 나와서 그렇게 지금까지 벌벌 떨며 일자리가 구해지기를 기다리며 서있다.
남은 사람들은 너무 늙었거나 몸이 약해 보이는 사람들뿐이다. 소시장에서 비실비실 한 소는 일을 잘 못할 것 같아 안 팔리는 것처럼…. 마치 노예시장에서 팔리지 않고 남아 있는 허약한 노예를 보는 것처럼 참 서글픈 기분이 든다.
물론 사는 게 신나고 재미있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가방 끈 짧고 몸 건강 하지 않아 하루 먹고 살기 위해 팔려 가는 소처럼 인력 시장이란 데서 차를 기다리는 인생이라면 참으로 이 세상 사는 게 고달프리라.
누가 그랬나? 지상 천국의 나라 미국이라고…
풍요가 넘쳐 나서 사람들이 살이 디룩디룩 찌고 이제는 비만이 국민 전체의 문제가 된 이 풍요의 나라에서도 저렇게 하루 먹을 빵과 잠자리를 해결하기 위해 목 길게 빼고 자기를 사갈 사람을 기다리다가 남아진 처참한 사람들이 있다. 일자리가 없으니 아이들이 먹다 버린 세븐 일레븐 쓰레기통을 뒤질 것인가?
사람이 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람은 동물이 아니다. 당연히 동물과는 생의 가치가 다르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최소한의 행복은 누리고 살아야 한다.
자기나라 경제가 너무도 빈곤하여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국경을 넘어온 그들이 성공 못하면 여기서 또 비참하게 살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불행한 삶들이 누구의 잘못인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게으름 피지 않고 아주 열심히 일자리를 찾다 보면 그들에게 기회가 열리는 게 또한 미국 땅이다. 내가 듣기에 대개 남미에서 올라온 불법 체류자들이 많다고 한다.
백인도 흑인도 몇 사람 안보이고 황인은 한 사람도 없으며 얼굴들이 대개 멕시칸처럼 생긴히스패닉들이 많은 것 같다, 내가 본 사람들도 얼굴 모양이 그랬다.
참 마음 아프고 안됐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모두 일자리 걱정 안하고 살수 있을까? 저들에게 내가 누리는 이 조그마한 행복을 나누어 줄 수는 없을까? 그렇게 하려면 내가 대기업을 운영하여 그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차에 태우고 가야 한다. 지금으로선 꿈같은 이야기다.
가난? 그건 무엇인가? 돈? 그건 또 무엇인가?
돈 많은 부모 만나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 가난한 부모 만나 평생 비빌 언덕 없이 고달픈 사람들 그게 다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할수록 알 수 없는 인생의 수수께끼는 내 가슴을 치고 올라온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늘이여 내일 아침은 저들이 남김없이 일자리를 구하게 하소서'' 하는 기도뿐이다.
한국은 구정이라고 민족대이동이네 떡국이네 한 살 더 먹네 축제에 들떠 있다. 오늘 아침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가 행복한 소리로 들린다. 그 떡국 남거 든 저기 가난한 히스패닉 노인에게 한 그릇 대접 하고 싶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는 오늘 이 아침, 나는 새삼스레 가난과 부에 대한 무거운 상념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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