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대학을 방문하면 너무 조용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전원도시 같은 캠퍼스 분위기나 연구성과를 나타내는 통계학적 기록보다 ‘자유’라는 이름에서 이 대학의 성격과 추구하는 목표를 더욱 잘 알 수 있다.
황기우 역사학과 |
자유대학은 다른 유럽 대학들과는 달리 오랜 전통도, 고색창연한 캠퍼스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유럽은 이 대학을 주목한다. 단순히 4만5000명의 학생 수와 3000명의 교수 및 연구진이 보여주는 유럽 최대라는 꼬리말을 넘어, 독일인들은 이 대학을 ‘독일 학문의 업적’이라고까지 말한다.
이러한 업적은 독일에서 유일하게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이라는 매우 독특한 시스템에서 연유한다. 자유대학의 설립 동기는 국가권력과 경제의 종속으로부터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학사 관리와 연구 주제·방향 설정은 학생과 교수를 포함한 대학 구성원의 자율적 권한에 맡겨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의 주제와 프로젝트의 다양성이 대학의 가장 큰 특징이다. 실제로 같은 학과에서 서로 정반대되는 연구논문이 나오는 경우가 흔해 학기 중 특별 토론회가 많은 것도 이 대학의 독특한 모습이다.
이러한 학문적 자유와 다양성의 공존은 베를린자유대를 독일뿐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선호하는 대학 중의 하나로 만들었다. 재학생의 10%가 넘는 6000여명의 외국 유학생에 세계 70여 대학과의 공동연구, 매년 100여회의 국제 심포지엄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연간 750억원에 가까운 연구지원비 등은 이 대학이 가히 국제적인 대학임을 보여준다.
‘자유’라는 단어는 이 대학의 슬로건인 동시에 저력의 원천이다. 독일인들은 잘못된 역사에 대한 뼈저린 반성에서 이 대학의 존재 의미를 찾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베를린으로부터 자유를 찾아 넘어온 교수와 학생들에 의해 1948년 문을 연 뒤 68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냉전 시기에도 유럽의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주도해 왔다.
특히 독일의 탈나치화와 유럽통합의 정치사상을 선도했다. 68세대로 대변되는 현 독일 정치인의 70% 이상이 이 대학 출신이라는 점은 2차대전 이후 ‘유럽 속의 독일’이라는 외교정책과 통합으로 가는 유럽의 신질서가 이곳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독일통일의 학문적 뒷받침이 된 곳도 바로 이 대학이다.
필자는 자유대학에서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던 많은 것을 얻고 있다. 많은 과제와 빡빡한 수업 일정보다 고정관념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과정에서 묘한 쾌감을 느낀다. 이것은 이 대학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자유대학에서만큼은 유럽은 아직 건강하다. 신자유주의라는 일방통로 속에서도 새로운 대안을 찾는 유럽의 양심과 인문·자연과학 전반에 걸친 첨단과 고전을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대학만의 특권이다. 세계적 석학과의 대화가 자만으로 몰고 가는 일이 있지만, 나는 그들로부터 잘사는 법보다 바르게 사는 법을 배워 가고 있다.
베를린자유대에선 유럽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모든 것이 공존하는 유럽 사상의 쓰레기장인 동시에 실험실과도 같다.
세계적인 석학들은 이곳에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실험을 하고 있다. 학문의 자유와 다양성,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재정 지원 등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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