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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한류가 영류되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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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12-17 14:08:00 수정 : 2005-12-17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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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韓流)!
아우성이다. 요란법석이다.
남의 칭송에 다들 흥청대는 모양이 학교에서 상 타고 좋아하는 애들 같다. 천진하고 또 난만하다. 하긴 그런다고 해서 크게 흉될 건 없다.
또 ‘어정뱅이’ 노릇한다고 욕먹을 일도 아니다. 내친김에 ‘어정뱅이’란 갑자기 잘 된 사람, 문득 난척하는 사람을 빈정대는 말이란 것을 덧붙여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한류가 넘실대는 데는 몇 가지 원인 또는 동기가 있을 것 같다. ‘제3 세계’ 또는 ‘제3의 존재’가 ‘제1’로 올라서는 것이 총괄적인 원인이나 동기다. 달리 말하자면 가장자리 또는 변두리의 나라, 민족 그리고 존재가 우여곡절 끝에 한복판에 들어앉거나 아니면 바닥에 처져 있던 그런 것들이, 풍파를 겪고는 드디어 꼭대기에 올라서는 과정을 보여주는 ‘역전(逆轉)의 역학’ 또는 역전극이 한류를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동기, 그나마 문화적인 동기가 되었다고 필자는 보고 싶다.
한국이 제2차대전 직후, 식민지를 갓 벗어난 아프리카·아시아의 제3국가 무리의 하나였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 없다. 그나마 식민지의 황무지에 겹쳐서 민족상잔의 폐허에서 떨치고 일어선 것이다. 그런 나라가 무엇보다 산업분야에서 가진 안간힘을 쓰고는 유로·아메리카 및 일본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제1의 국가군과 어깨를 거의거의 나란히 하게 되었다. 그것도 맨 처음, 최초의 주자로서 말이다.
그같은 국가가 겪은 역사적 과정이 곧 ‘대장금’을 낳고 ‘겨울 연가’를 빚어내는 드라마툴기(극문법) 노릇을 했다. 두 작품의 주인공이 꼭같이 땅뱀이 용이 된 격이란 것은 의심할 여지없다. 이들, 한류를 불러일으킨 두 드라마는 서민의 ‘용비어천가’다. 또 하나 역전극이 있다. 세번째로 문제될 역전에서는 ‘페미니즘’이 큰 구실을 도맡아 내고 있다.
‘대장금’은 아예 여성 주인공의 엄청난 성공담이다. 그나마 압도적으로 또 절대적으로 가부장제 사회요 남권 국가인 중세기 조선왕조가 무대다. 땅위를 기는 뱀이 용이 되어서 하늘을 날아오른 정도가 아니다. 땅밑의 지렁이가 봉황새가 되어서 창공 드높이 날아오른 셈이다.
‘대장금’이 여성 주인공에 의한 페미니즘의 개가(凱歌)라면 ‘겨울 연가’는 남자 주인공이 차근차근, 그러나 다사롭게 읊조린 페미니즘이다. 하지만 둘은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입에 입을 맞추어서 여성에 바치는 송가(頌歌)며 또 연가(戀歌)를 부르고 있다.
대장금은 남성사회의 바닥에서 치고올라 와서는 남녀의 담을 아예 허물고 있다. 이처럼 세 겹으로 엮인 용비어천가야말로 한류의 원천이다. 물론, 다른 동기나 이유도 있을 것이다. ‘대장금’이 대장편 서사시를 겸하고 있다는 것은 크게 강조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날 장편의 각종 서사물(敍事物)은 물론이고 소설이나 연극을 포함한 ‘긴 이야기 문학’은 이미 한물 가고 있다.
독자가 견뎌내지를 못한다. ‘컴퓨터 게임’이 오늘날을 대표하는 이야기문학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수긍이 갈 것이다.
순간적이고 돌발적인 이야기, 난데없이 의표를 찌르는 토막 이야기, 괴이한 것이 엎치락거리고 뒤치락거리는 찰나의 이야기… 등등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것들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감각성에 넘쳐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 아리까리한 현실 속에서 ‘대장금’이라는 대 장편 서사시가 당당히 시청자를 사로잡다니, 그건 기적 같은 것이다. ‘대장금’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크게 긴 지금(只今)’이다. ‘위대하고도 장구(長久)할 현재’다.
이 글이 우리 스스로 꼼꼼히 캐고 따지고 그리고 풀고 해야만 ‘한류’가 비로소 ‘장류(長流)’가 되고 ‘영류(永流)’가 될 것이라는 것을 귀띔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열규 계명대 석좌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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