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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기 칼럼]‘고 정관훈 추모전’을 기획하며

입력 : 2005-11-27 16:32:00 수정 : 2005-11-27 1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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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안녕’ 이란 말을 실감한다. 밤늦게까지 함께 지낸 사람이 다음 날 교통사고로 이 세상을 하직했다. 그것도 뺑소니차에 치어. 더구나 음주 운전을 하던 우리 동포 젊은이의 차에.

서양화가 정관훈이 그렇게 떠나버렸다. 마흔 살의 건장하고 미래가 창창한 사람이. 그래서 그를 아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17일 맨해튼 돈의보감 식당에서 한용진, 이 일, 김차섭씨 부부를 비롯하여 한 20여명의 작가들이 모여 저녁식사를 했다. 안식년을 맞이하여 1년 가까이 뉴욕생활을 하고 떠나는 화가 김호득 교수가 그간 가까이 지내던 작가들을 초청한 송별회였다. 떠나는 자를 위해 이곳 사람들이 마련한 게 아니라, 떠나는 자가 남은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이제껏 없었던 풍경의 특별한 자리였다. 거기에 화가 정관훈도 끼어있었다.

그날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끝낸 후 브루클린에 사는 화가 김영길의 집으로 옮겼다. 2차로 모인 이곳에서 작가들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또 넓은 공간의 리빙룸에서 가라오께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서 작가들끼리의 회포를 풀었다. 김화백의 송별 모임이면서 실제는 오랜만에 뉴욕작가들의 만남의 자리였다. 그곳에도 정관훈이 왔었다. 그는 말이 별로 없이 조용했고, 점잖았다. 내년에 맨해튼 어느 갤러리에선가 있을 개인전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한 2년 전쯤 그가 스페이스 월드로 나를 찾아왔었다. 그는 미국 오기 전 한국서 전시했던 팜플렛 몇 권을 들고 있었다. 영남대학과 계명대 예술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12회의 개인전을 했고, 100여 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몇 개의 공모전에도 입상하는 등 열심히 활동했던 작가였다. 그는 아름다운 꽃과 정물이 있는 구상작품을 하는 화가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미학적인 요소를 화폭에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었으며, 동서양의 엔틱 정물이 주는 사회적, 시대적 이미지를 작품화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작가들이 처음 미국에 오면 하는 고생을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었다. 생선배달도 하고 작업실에서 쫓겨나기도 하면서.

그 이후 이날 처음 그를 가까이 보게 된 것이다. 그에게 22일부터 열리는 김태신 화백 전시회 카드를 주면서 오프닝 때 오라고 했다. 앞으로 있을 기획전에 그를 끼울 예정이었지만 별도로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튿날, 아마도 만 하루에서 한 두 시간 조금 더 지났을까 하는 때에 그가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뉴저지의 무슨 갤러리에선가 있었던 전시회오프닝에 갔다가 술 취한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치었고, 그 차가 뺑소니 친 후, 쓰러진 그를 또 하나의 차가 치고 달아났다 한다.

이 소식은 다음 날 있을 전시회 오프닝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21일 아침, 화가 김영길이 전화로 들려준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는 가슴 두근거리면서 그날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처음 차에 치었을 때 운전사가 도망가지 않고 그를 병원에 옮겼더라면 그는 살았을 것이라 한다. 화가 정관훈은 젊은 나이에 너무나도 처참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처음 그를 치고 도망 간 차는 경찰견과 헬기까지 동원해서 잡았다고 하는데, 범인이 술 취한 스물 네 살의 한인 청년이라고 했다. 그 청년은 음주운전에 사람까지 죽였으니 중벌은 뻔한 것. 그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세계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굳혀보겠다는 꿈을 안고 어린 자식들과 함께 미국에 왔던 화가 정관훈. 그는 자신의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어이없이 갔다. 그 동안 가족을 뒷바라지하면서 어렵사리 작품을 했다는데...

그의 시신은 고향인 예천으로 보내졌다. 성공해서 돌아가야 할 고향에 처참한 죽음의 모습으로 그는 떠났고, 이제 이곳엔 한순간에 가장을 잃은 그의 가족만 남았다. 3살 난 아들 하나에 그 위로 10살 12살의 어린 두 딸, 그리고 부인. 그들은 한창 아버지가 필요하고 남편이 필요할 때이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더구나 남의 나라에서.

이러한 딱한 상황을 보고 뉴욕의 작가들이 화가 정관훈 가족돕기에 앞장섰다. 미국서 작품생활을 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생활이 어렵다. 그러한 작가들이 정관훈 가족돕기 작품전을 기획하고 작품 판매 수익금을 유가족에게 보내기로 했다. 정관훈 유작 특별전도 함께 열기로 했다.

화가 정관훈의 변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일이다. 그의 남겨진 가족은 바로 우리들의 가족이다. 연말이면 불우이웃을 돕는 행사가 많다. 올해의 불우이웃 돕기는 진정한 동포애를 모아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 화가 정관훈의 가족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고통 없이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그릴 때만큼은 신나고 즐겁다. 미친 듯한 열정을 쏟는다. 그리고 그 단맛을 즐기고싶다.”

이 글은 그가 전시 팜플렛에 쓴 글이다. 그는 그렇게 열심인 작가였다. 고 정관훈 추모전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옥기·스페이스월드 관장

<전교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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