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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칼럼]떠벌림과 과대포장이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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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11-07 14:56:00 수정 : 2005-11-07 14: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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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일어난 사건 외신 한 토막이 생각난다. 기억에 남아 있는 대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중국의 어떤 소도시가 장맛비로 강물이 범람하여 시내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대로가 강으로 변할 만큼 공포를 주는 물난리를 겪고 있었다. 마침 다리 위에서는 많은 사람이 몰려 나와 물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급류에 휘말려 허우적거리는 한 사람을 발견한다. 그러나 물결이 워낙 거세기 때문에 익사 일보 직전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도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 구경꾼 중에서 한 젊은이가 대담하게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익사 직전의 사람을 물 밖으로 끌어내어 목숨을 건져주었다. 그의 용감하고 거침없는 선행이 언론매체에 알려진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언론에선 부랴부랴 그 젊은이의 소재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백방으로 당사자의 행방을 찾아보았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날 이후부터 도무지 오리무중이었다. 소문이 떠돌기에는, 몇 해 전에 물난리가 났을 때에도 한 젊은이가 급류로 뛰어들어 익사 위기에 빠진 두 사람을 구해주고는 말없이 사라져 버린 적이 있는데, 필경 같은 사람일 것이라고 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수소문을 거듭하던 한 기자가 마침내 당사자를 찾아냈다. 홍수가 난 그 당시의 지방으로부터 수백㎞ 떨어진 어떤 건설공사 현장에서 날품팔이를 하고 있었다. 미장일 품팔이로 먹고사는 그는 한창 마감 공사를 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기자는 잠시 일손을 멈춘 그에게 거듭 물었다.
익사 직전의 사람을 구해준 적이 있지 않으냐, 이번뿐만 아니라 몇 해 전에도 그런 적이 있지 않으냐, 어째서 그렇게 좋은 일을 하고도 생색은커녕 쫓기는 사람처럼 숨기를 일삼는가. 이런 선행은 세상에 널리 알려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귀감이 되도록 조처함이 좋은 것 아니냐는 등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기자의 질문을 한참 듣다 말고 불쑥 내놓은 그의 대답이 이랬다. 지난번 장마 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준 적이 있는데, 그때도 기자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 당시 급류 속으로 뛰어들 때의 기분이 어떠했느냐, 어떤 각오로 급류에 감히 몸을 던졌느냐, 다리 아래로 몸을 날릴 때 무슨 생각을 했느냐는 둥 몇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는 것이다. 자기는 남들보다 헤엄을 좀 하는 편이고, 그래서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이 있기에 본능적으로, 그리고 무작정 뛰어들어 구해 주었을 뿐인데, 무슨 각오를 가졌겠는가. 기분은 어떠했느냐고 묻는다면 도무지 대답할 말이 없고 난감하기 그지없을 뿐만 아니라, 인터뷰라는 것도 자기 해야 할 작업량만 지체시키는 결과만 낳을 뿐이어서 기자들을 피해 왔다는 대답이었다.
하찮은 것이라 하더라도 생색을 낼 기회라고 생각하면 침소봉대하여 곧잘 떠벌리고, 과대 포장을 일삼아 깃발처럼 흔들어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요즘 풍속에서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던지며 웃음 짓게 만드는 이웃 나라에서 생긴 짤막한 뉴스는, 자기 표현이 지나친 수준에 이른 우리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첨예한 경쟁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우리 사회에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떠벌림과 과대 포장에 반성 없이 빠져들다 보면 필경, 사회 전체가 거짓 속으로 침몰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대를 이겨내거나 짓눌러 버리기 위해 힘들이지 않고 거짓을 만들어 내거나 모략을 동원한다면 우선은 세상이 속아 위기를 넘길 수 있겠지만, 진실이 밝혀지는 날에는 두번 다시 재기할 수 없는 낭떠러지로 추락해 버린다는 것을 우리의 현실에서도 여러 번 목격하고 있다. 좀 괴롭더라도, 조금은 껄끄럽고 더디더라도, 그리고 핀잔을 듣게 되더라도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걸어간다면, 거기에서 얻어낸 성과는 수많은 세월의 풍랑 속에서도 오랫동안 감동을 유지하며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는 것을 체험에서도 얻는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정도인가 한번 되돌아볼 때다.


김주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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