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부의 최대 공업도시인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의 이더로(一德路). 이 거리의 서쪽에 세계 최대 완구도매시장인 ‘광저우 국제완구도매시장’이 들어서 있다. 중국 완구산업을 대표하는 곳이어서 동남아시아는 물론 남미와 아프리카 완구상들이 모여든다.
이곳에는 한국의 완구상도 활약하고 있다. 한국의 완구산업이 중국으로 옮아간 이후 완구 한상들도 무대를 바꿔 이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 완구한상은 200∼300명에 이른다. 이들뿐 아니다. 광저우와 칭다오(靑島), 이우(儀烏) 등지에는 ‘완구산업의 꽃’인 크고 작은 완구업체는 물론 주문생산 업체까지 뿌리내리고 있다.
◆한국 완구산업의 중국 내 두 거점=한국 완구산업이 중국으로 건너간 것은 1980년대 말부터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일반완구 기업은 중국 최대 경공업지대인 남부 광둥성으로 옮아가고, 봉제완구 기업은 칭다오를 중심으로 한 산둥(山東)성으로 건너갔다.
한국 완구산업은 지금도 이들 지역에서 완구제국을 형성하고 있다. 칭다오를 중심으로 한 산둥성에 업체가 70∼80군데에 이른다. 인성모피, 텍슨, 동림섬유 등 완구용 인조모피를 만드는 곳에서 화인토이, 청도통상, 오로라월드 등 중·대형 완구업체까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화인토이를 비롯한 대형 한국 완구공장에는 수천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산둥성에서 만들어지는 한국 완구 수출액도 3억달러선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휴대전화와 같은 최첨단 제품과 비교하면 적은 규모지만, 봉제완구 하나로 3000억원이 넘는 수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한국 완구산업의 저력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장갑생 중국인성모피 사장은 “한국 완구산업은 중국 완구산업의 중심에 서 있다”며 “중국에서 수출되는 고급 완구의 상당수는 한국계 기업에서 만들어지는 완구”라고 말했다.
광저우 지역에도 한국의 완구공장은 100여군데에 이른다. 중국 남부 완구 생산기지는 광저우·선전·둥관(東莞) 3개 도시에 분포돼 있다. 그 중에서도 광저우 산터우(汕頭)는 최대의 완구 생산기지가 만들어진 곳이다. 가내공업 형태의 완구공장을 합하면 2000곳에 이르는 공장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완구를 생산하는 이상용 프레이메카 사장은 “중국은 세계 완구의 절반을 생산하고 있으며, 중국 완구의 절반은 광저우 주변지역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광저우 국제완구도매시장에 가게를 열거나 이곳을 오가는 완구무역상은 200∼300명에 이른다.
◆다시 시작되는 완구전쟁=세계 완구시장은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 예전 장난감을 갖고 놀았던 어린이들이 온종일 컴퓨터와 전자오락기에 붙어 사니 완구가 팔릴 리가 없다. 점점 위축되던 세계 완구시장 규모는 전성기인 1990년대 중반에 비해 6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 같은 벽을 넘기 위해 말하는 인형, 노래하는 원숭이, 기어다니는 강아지처럼 온갖 완구를 다 만들어보지만 10여년 전과 같은 호황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완구 한상들은 과거 완구대국의 자존심 하나로 ‘완구대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 내 완구 생산판도는 크게 한국계와 대만계, 중국계로 나뉜다. 이 가운데 최강자는 역시 한국계다. 고급 완구로 분류되는 한국계 완구는 중국계 완구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린다. 이상용 사장은 “광저우에 들어오는 외국 바이어들은 중국계 완구보다 한국계 완구를 더 찾는다”며 “한국의 완구는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품질과 디자인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계 완구의 추격도 만만찮다. 가격경쟁에서 한국완구를 앞서는 데다 2000년대 들어서는 품질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름 밝히기를 원치 않은 칭다오의 한 대형 완구업체 사장은 “세계 시장이 위축될수록 완구시장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더 빨리 더 싼값에 더 좋은 질의 완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완구시장에서 누가 진정한 최강자인지는 지금부터 벌어지는 싸움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광저우·칭다오=강호원 특파원
중국이 노동집약산업 천국? 천만에
중국에서도 노동집약적 산업은 힘들어지고 있다. 국내 기업이 진출한 연해지역의 임금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값싼 노동력 의존성이 강한 완구산업도 마찬가지다. 칭다오(靑島)의 완구업계 관계자는 “수요인력의 30% 정도는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력이 부족하면 임금이 오르기 마련이다.
산둥성 칭다오의 공장 근로자 임금은 각종 보험과 부대비용을 합하면 한 달에 최소 1200위안선(약 15만원)에 달한다. 국내에 비해서는 아직 낮지만 국제시장에서 가격경쟁을 해야 하는 현지 기업으로서는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 재료 구입과 임금에서 중국 기업보다 우위에 서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 내 임금 상승은 우려로 다가온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해 중국에서도 임금이 급격히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주중 한국대사관의 이태희 노무관은 “이 같은 점이 ‘차이나 리스크’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노동집약 산업에 대해 새로운 정책을 내놓고 있다. 생산기지를 연해지역에서 내륙으로 옮기도록 유도하는 한편 연해지역의 노동집약 산업에 대해서는 세금 감면 혜택을 줄이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은 가난한 중·서부 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죽느냐 사느냐를 놓고 시장 경쟁에 나서고 있는 중국 진출 한국 기업의 입장은 다르다. 중국 내지로 공장을 옮기면 이에 따른 물류비용과 원자재 구입 부담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산둥성의 한국 기업 관계자들은 “중국의 기업정책이 새로운 산업이동 현상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경쟁기반을 상실하면 투자기업은 다른 곳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게 된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 가운데는 최근 투자선을 베트남과 인도로 돌리는 기업이 하나둘 생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칭다오에 투자한 한 한국 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에는 많은 사람이 아직도 실업·반실업 상태에 놓여 있다. 노동집약 산업에 대한 지원 축소는 중국 정부가 생각하듯이 연해지역의 공장을 내지로 옮기는 효과를 내기보다는 외국 기업의 투자를 철수시키는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광저우·칭다오=강호원 특파원 hk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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