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국회에 첫 등원한 그는 기쁨보다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지나간 27년의 세월이 원망스러웠기 때문일까. 과거 민주화투쟁을 함께 한 김원기 국회의장이 인사차 의장실을 방문한 늦깎이 국회의원인 그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들어왔구먼, 들어왔어”라고 반겼지만 이 의원의 마음은 왠지 착잡했다.
1978년 10대 총선에 첫 출마해 재산을 다 날려 가족을 데리고 무턱대고 처가에 갔다가 공무원인 장인으로부터 “제발 집을 나가 달라”며 문전박대를 받으면서도 처가살이를 했던 일, 송도,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공사판에서 막노동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간 어려운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1992년 14대 총선때다. 5억원의 자금을 줄테니 당적을 바꿔 출마하라는 모 정당측의 제의를 받고 마음이 크게 흔들렸던 적이 있다. 2억여원의 선거빚이 있는 그에게 5억원은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루만 여유를 달라”고 말할 정도로 심적 동요와 갈등을 겪은 그는 부인과 상의한 뒤 없었던 일로 했다. “당신, 그 돈 받으면 병 나서 못 살 것”이라는 부인의 뼈있는 한 마디에 돈의 유혹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한다.
뜨개질, 보험설계사 등 돈 버는 일이라면 닥치는대로 하면서도 남편의 ‘허튼 짓’을 막아준 부인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는 이 의원. 그동안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뭐든지 하면서 살아왔다는 그는 총선에서 패배할 때마다 낙심이 커 남들에겐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던 적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 의원은 10일 “한번은 케이블카를 탄 적이 있는데, 내 표정을 본 주부들이 ‘저 사람 자살하려는 것 아니냐’고 수군거리는 것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며 “눈에 초점 없이 오죽 멍하게 있었으면 남들한데 그런 소리를 들었겠느냐”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기까지에도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공천심사위원들이 “나이가 많고 여러번 떨어져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반대해 하마터면 출마 자체를 할 수 없을 뻔했다.
홍문표 충남도당 위원장의 끈질긴 설득으로 공천 관문을 통과해 당선된 그는 “임기 동안 많은 것을 하기보다는 몇개만 선정,역점 추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황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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