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정보전쟁 중=20세기에는 한 나라의 국력이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평가되었다면, 21세기는 지식과 정보력으로 평가한다. 이 중에서도 핵심은 정보력이다.
핵탄두 미사일이나 전투기 등 가시적인 무기와 병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효율적으로 상대방을 제압해 버린다는 점에서 정보전은 이상적인 전투 개념이다. 정보전의 승패는 정보능력에 좌우된다. 선진국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전자통신기술을 바탕으로 암암리에 첨단장비를 운용하여 고도의 첩보전과 해커전을 전개함으로써 정보전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정보전의 최강국은 미국이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대테러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올해 육해공군 및 해병대, 국방정보국(DIA) 국가안보국(NSA) 국가지리공간정보국(NGA) 국가정찰실(NRO) 등 8개 국방 관련 정보기관과 중앙정보국(CIA)을 포함한 15개 정보기관을 통괄하는 국가정보국장(DNI) 직제를 신설했다.
미국의 정보기관 하면 흔히 CIA를 거론하지만, CIA보다 더 막강한 정보력을 갖춘 조직이 있다. 1960년 처음 그 실체를 드러낸 ‘국가안보국(NSA)’이다.
국방부 산하인 NSA는 미 정보기관이 수집하는 인간·신호·영상 정보 중 신호정보를 총괄한다. NSA는 요원이 CIA(1만5000명)보다 배나 많은 3만8000여명이나 된다. NSA를 비롯한 미 정보기관들의 1년 예산은 국방예산(4000억달러)의 10%에 해당하는 400억달러로 추정된다.
◆에셜론 프로젝트란=NSA의 주요 임무 가운데 가장 주목 받는 프로젝트는 바로 전 세계의 모든 지역을 감시·감청하는 ‘에셜론’이다. 주로 고주파(HF)통신 감청, 위성을 이용한 마이크로웨이브 감청, 해저케이블 및 인터넷 감청을 담당하고 있다.
에셜론은 1947년 미국과 영국의 비밀협정인 ‘UKUSA 협정’에 따라 1차 가입국인 영국과 미국 외에 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 앵글로색슨계 3개국을 참여국(제2차 가입국)으로 시작됐다. 이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한국 일본 터키(제3차 가입국)가 가입했다. 이 가운데 1·2차 가입국은 에셜론의 모든 정보를 제공받지만 제3차 가입국은 정보접근이 제한적이다.
에셜론 감청기지는 독일 바트 아이블링과 일본 미사와 등 전 세계 미군기지를 이용하고 있다. 미국이 중남미 러시아 아시아 중국 등지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비롯해 캐나다는 옛 소련 북부, 영국은 유럽 아프리카 러시아 서부, 호주는 인도차이나 서아시아, 뉴질랜드는 태평양 서부의 정보 수집을 담당하고 있다.
에셜론은 음성을 인식할 수 있는 최첨단 도청 장치와 기술이 있어 전화, 팩스, 계좌추적, 전자우편은 물론 항공기와 함정의 전파 등 지구상의 모든 통신을 매일 30억건씩 추적해 감청할 수 있다.
한 예로 누군가 인터넷 메일이나 전화로 ‘테러’ ‘폭탄’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 즉각 추적 대상이 된다. 또 목표 건물 유리창에 레이저를 쏴 안에서 나누는 대화 내용을 도청하는 장비도 보유하고 있다. 이 외에도 특정인의 목소리를 사전에 저장해 놓았다가 해당자가 통신을 이용하는 순간 감지하여 기록할 수도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2000년 유럽의회 보고서를 인용해 120개가 넘는 위성을 기반으로 한 도청 시스템이 동시에 작동 중이며, 운영 비용만 한해 150억∼200억달러에 이른다고 폭로했다.
◆에셜론의 위력=에셜론은 미국의 외교정책과 세계경찰이 되려는 노력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에셜론이 수집한 정보는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를 지탱하는 데 이용되지만, 비우호적인 국가나 조직에 대해서는 반대의 힘을 작용시킬 수 있다.
실제로 9·11 이후 미국과 유럽의 정보기관들은 100여건의 테러 음모를 사전 준비단계에서 차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9·11 당시 4000명에 이르렀던 알 카에다 요원 중 80% 가까이가 체포되거나 사살됐다.
탈냉전 시대에 들어와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자리잡은 미국의 힘은 바로 막강한 정보력에서 나오며, 여기에는 세계 최강의 통신감청시설 에셜론을 운용하는 NSA가 있다.
수집된 정보들은 과거엔 주로 군사목적에 사용됐으나, 외국 기업의 상업비밀을 자국의 경쟁자들에 제공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생활을 침해하기도 한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빈은 사망하기 전까지 에셜론의 감시 하에 있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각국의 정보기관
''007''의 英 MI6·이 모사드 세계적 명성
◆영국 MI5와 MI6=국내 첩보는 보안국(SS)이, 해외정보활동은 비밀정보국(SIS)이 담당한다. 1909년 설립됐고 1916년 군사정보국(Military Intelligence)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MI5(국내)와 MI6(국외)이라는 명칭을 부여 받았다.
영화 ‘첩보원 007’ 시리즈의 소재가 된 MI6은 아직 베일에 쌓여 있다. 영국 정보국법에 따르면 MI6은 국토 바깥에 있는 인물들의 행동과 의도에 대한 정보를 수집·제공하며, 국방·외교정책과 관련된 비밀업무를 수행한다. 요원은 2300여명.
◆일본 내각정보조사실=1952년 8월 총리부 설치령으로 내각 관방장관 산하에 창설돼 1957년 국가 정보 수집의 중심기관으로 재발족됐다.
내조실은 일본방송협회·세계정경조사회·국제문제연구회 등 다수의 민간 연구기관에 지원 요원을 운용하면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정보를 수집해 분석·평가한다. 일종의 ‘허가받은 스파이’인 대사관 정무과 소속 외교관이나 영사, 언론사 특파원까지 나서 주재국 정보 수집을 담당한다. 러시아 중국 북한 등 공산권 정보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이스라엘 모사드=이스라엘은 모사드가 해외정보를, 신베트가 국내보안을, 아만이 군사정보를 담당한다. 이들을 통합 조정하는 기관으로 최고정보조정위원회가 있다.
세계적 명성이 자자한 모사드의 정식 명칭은 ‘정보 및 특수임무 연구소’로 인간정보와 비밀공작, 대테러 활동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1200명의 소수 엘리트 요원이 지구촌 정보 레이더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국가안전부(MSS)=1983년 공공안전부와 중앙조사부, 군 총참모부가 통합 설립돼 초기엔 9개 공작국으로 구성되었으나, 컴퓨터·정보통신·위성·무인항공기(UAV) 등 첨단기술을 이용한 첩보활동 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17개 공작국으로 조직이 크게 확대됐다.
인원만 1만명이 넘는 신화사(新華社)는 통신사 고유기능 이외에 107개의 해외 지국을 통해 세계 각지의 소식을 수집·번역·요약·분석하여 관계 부처에 수시 보고하며, 안전부 요원의 해외 파견 때 신분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대만 관련 정보 수집과 공작에 최우선 비중을 두고 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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