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문학]페루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장편소설 ''리고베르토씨의 비밀노트''

입력 : 2005-01-15 12:47:00 수정 : 2005-01-15 12:47:00

인쇄 메일 url 공유 - +

직설적이고 솔직한 섹스와 관능의 미학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69)의 장편소설 ‘리고베르토씨의 비밀노트’(김현철 옮김·새물결, 전 2권)를 읽는 일은 매혹과 고통을 동시에 겪는 작업이다. 먼저 익숙하지 않은 형식이 독자들을 괴롭힐 것이다. 화자가 어떤 이야기를 인용하는 싶으면 금세 그 인용 속의 인물이 화자로 등장하고, 과거시제가 현재시제로 둔갑하는가 하면, 어느 이야기가 실제고 허구인지(소설의 근본 자체가 허구라는 사실을 전제하더라도) 혼돈스럽게 한다.

에곤 실레(1890∼1918)라는 오스트리아 출신 요절 화가의 삶과 에로틱한 그림들을 차용해 끌고 나가는, 대단히 직설적이고 솔직한 섹스와 관능의 미학은 이처럼 고단한 독서를 쉬 멈추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어렵사리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면 그제야 소설 전체의 윤곽이 비교적 선명하게 잡힌다.
폰치토는 리고베르토의 어린 아들이다. 루크레시아는 리베르토의 아내이자 폰치토의 새엄마다. 리고베르토와 루크레시아는 10여년 동안 금실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특히 밤의 관계가 황홀했던 부부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혼한 뒤 따로 떨어져 산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 갈망하지만, 헤어지게 된 원인은 한국적 시각으로는 특히 입에도 담기 어려운 어린 의붓아들과의 몸의 ‘유희’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소년 폰치토는 ‘뻔뻔하게도’ 아버지와 헤어져 살아가는 루크레시아를 방문해, 그것도 학교에서 수업을 빼먹고 도망쳐서 새엄마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건넨다. 그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에곤 실레의 삶과 그림에 관한 것이다. 소년은 자신이 에곤 실레의 환생이라고 주장한다.

에곤 실레는 28세에 요절한 화가로 어린 소녀들을 그림에 자주 등장시켰고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그림들로 당대를 풍미했던, 시대의 일반적인 관념과 대치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미성년 성추행과 풍기문란을 이유로 잠시 구속되기도 했었다.
그림의 모델들과 동거도 했지만 생의 후반기에는 한 여인과 결혼해 지극히 사랑하다가 그 아내와 며칠 간격으로 독감에 걸려 거의 동시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직후 모습을 담은 사진은 한손은 팔베개를 하고 또 한손은 가슴에 올려놓은 채 평화롭게 낮잠이라도 자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소설은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루크레시아가 다른 남자들 혹은 리고베르토와 다양한 형태의 섹스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소설 말미에 가면 이 이야기는 결국 리고베르토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펼쳐낸 것임이 드러난다)이고, 또 하나는 그의 아들 폰치토가 새엄마를 찾아가 실레의 그림을 소재로 대화를 나누며 결국 새엄마와 아버지가 다시 합치도록 유도해내는 줄거리다.
◇에곤 실레의 ‘자화상’.
그러나 이 소설은 이렇듯 단순하지 않다. 매 장의 말미에는 엉뚱하게도 줄거리와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는 작가의 주장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왜 작가 자신이 로타리클럽에 가입하지 않는지, 혹은 “인류를 여성과 남성으로 딱 잘라 구분하는 것은 전체주의적인 착각이며 개개인의 주권을 억압하는 음모”라는 식의 주장이 정색을 한 채 등장한다. 사실 이러한 편린들은 소설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라는 작가의 이력을 알고 나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요사는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 남미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게다가 그는 페루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일본계 후보에게 패하기까지 했던 적극적인 현실참여형 인물이다. 그는 관능이라는 외피를 빌려 인간의 본질적인 행복과 쾌락에 대한 솔직한 서술을 통해 작가적 능력을 과시하면서 동시에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직설적으로 펼쳐 놓고 있는 셈이다. 요사의 소설은 파편들이 혼란스러운 대신 다 읽고 나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특유의 구성방식 때문에 ‘총체소설’로 불린다. 정서적인 충격과 실레의 컬러 도판과 요사의 요설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는 이 소설을 통해 새로운 독서체험을 하고 싶다면 읽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우리네 문화와 다른 현실적인 차이는 일단 접어둘 필요가 있다.



조용호 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있지 유나 '반가운 손인사'
  • 있지 유나 '반가운 손인사'
  • 에스파 카리나 '민낮도 아름다워'
  • 한소희 '완벽한 비율'
  • 최예나 '눈부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