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조절(花朝節·역주1)이 되자 증생이 내방하면서 두 명의 종을 시켜 약재를 담가 빚은 배갈 한 동이를 짊어지고 왔다. 그는 도생과 마자재를 불러 함께 마시기 시작했는데, 단지가 거의 비었을 때에도 두 사람은 별로 취한 것 같지 않았다. 마자재는 슬쩍 다른 술병을 단지 안에 부어 넣었고, 두 사람은 그것도 모두 마셨다.
증생은 인사불성으로 취했기 때문에 그의 종들이 주인을 업고 집으로 돌아갔고, 도생은 땅바닥에 누워 또다시 국화로 변했다.
마자재는 그 광경을 본 적이 있었으므로 전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황영이 그랬던 것처럼 국화를 뽑은 다음 곁에서 그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한참 뒤부터 이파리가 시들시들 마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마자재가 깜짝 놀라 황영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말하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맙소사, 당신이 내 동생을 죽였구려!”
황영은 달려가 국화를 살펴보았지만 뿌리와 줄기는 벌써 시든 다음이었다. 그녀는 슬픔에 목이 멘 채 국화의 줄기를 잘라 화분에 심었고 안방으로 가져가 물을 주며 보살폈다. 마자재는 죽고 싶도록 후회하면서 증생을 매우 원망했다. 며칠 뒤 들려온 소문으로는 증생도 그날 너무 취해서 벌써 죽었다는 것이었다.
화분 속의 꽃은 차츰 싹을 틔워 꽃봉오리를 맺더니, 구월이 되자 활짝 꽃망울을 터뜨렸다. 줄기는 짧고도 튼튼했으며 꽃은 분홍색이었다. 냄새를 맡아보면 술 향기가 나서 ‘취도(醉陶)’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술을 뿌려주면 꽃이 더욱 무성하게 피어났다.
훗날 도생의 딸이 장성하게 되자 벼슬아치의 집으로 시집을 보냈다. 황영은 늙어 죽을 때까지도 별달리 이상한 행적은 없었다.
이사씨는 말한다.
청산백운인(靑山白雲人)이 결국에는 술에 취해 죽고 말았구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를 두고 안타까워하지만 그 자신만은 스스로 죽음을 통쾌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취도를 정원에 심어두고 매일 바라볼 수만 있다면 마치 좋은 벗을 대한 듯, 혹은 절세미인과 마주 앉은 듯한 느낌이 들리라. 이 품종의 국화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지 않을 수 없구나.
국화남매 끝
〈주우(酒友·술친구)〉
차생(車生)이란 사람은 가산이 넉넉하진 못했지만 술 마시기를 매우 좋아했다. 그는 매일 밤 몇 잔이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침대맡에 놓인 술병은 빈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밤 그가 잠에서 깨어나 몸을 옆으로 뒤척이는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 곁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덮고 자던 의복이 흘러내린 줄로만 알았는데, 더듬어보니 고양이와 비슷하면서도 크기는 그보다 큰 털북숭이가 손에 잡혔다. 등불을 비춰보니 여우 한 마리가 술에 진탕 취해 곤히 잠들어 있었다. 다시 침상맡의 술병을 들여다보았더니 벌써 말끔히 비워진 상태였다. 차생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녀석은 진정 나의 술벗이로다.”
그는 차마 여우를 놀라게 해 깨울 수가 없었으므로 자기 윗도리로 여우를 덮어 감싸주며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촛불은 켠 채로 두어 여우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려 하였다.
한밤중이 되었을 때 여우가 하품을 하면서 기지개를 켜자, 차생은 웃으면서 말했다.
“달게도 자는구나!”
그가 여우에게 덮어준 옷을 들춰보니, 갓을 쓴 준수하게 생긴 선비 하나가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선비는 일어나 침대 아래서 절을 하더니 차생이 자기를 죽이지 않은 은혜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 차생은,
“나는 술에 중독되었다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바보 취급하지. 자네만이 나의 진정한 벗일세. 자네가 만약 나를 꺼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구(糟丘·역주2)의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
라고 말하면서 다시 여우를 침상 위로 잡아끌어 나란히 잠을 잤다. 한편으로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자네, 자주 찾아오게나. 아무 염려 하지 말고.”
여우도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다음날 차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여우는 벌써 가버리고 없었다. 그는 좋은 술을 한 병 따로 준비해 놓고 여우가 찾아오기만 기다렸다. 저녁이 되자 여우는 약속대로 그를 방문했다. 둘은 서로 무릎을 맞대고 즐겁게 술을 마셨다.
여우는 대단한 호주가인 데다 우스개 농담도 잘했으므로 차생은 둘이 너무 늦게 만난 것이 애석해 죽을 지경이었다.
어느 날 여우가 말했다.
“언제나 당신에게 좋은 술을 대접받고 있으니 그 은혜에 어떻게 보답할까요?”
“기분 좋게 몇 잔 마시는 것에 불과한 일인데 그런 얘기는 무엇 하러 입에 올리는가!”
“그렇긴 하지만 당신은 가난한 선비이니 장두전(杖頭錢)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약간의 술값을 마련해 보죠.”
다음날 저녁 여우가 오더니 차생에게 일렀다.
“여기서 동남방으로 칠 리를 가면 길가에 돈이 떨어져 있을 테니, 내일 아침 일찌감치 가서 주워오십시오.”
이튿날 아침 차생은 그곳으로 갔다가 과연 두 냥의 은자를 주울 수 있었다. 그는 이 돈으로 그날 저녁에 마실 술상을 차렸다. 한번은 또 여우가 이렇게 말했다.
“뒤란에 있는 움 속에 돈이 묻혀 있을 테니 한번 파보십시오.”
여우의 분부에 따랐더니 그 안에서는 일백여 꿰미의 돈이 나왔다. 차생은 기뻐하면서 여우에게 말했다.
“주머니에 돈이 생겼으니 이제는 술값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구먼.”
“꼭 그런 것은 아니지요. 어찌 수레바퀴 사이에 고인 물을 오랜 시간 퍼낼 수가 있겠습니까? 마땅히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여우는 그렇게 말하더니, 어느 날 차생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지금은 시장에 나온 메밀 가격이 아주 쌉니다. 이것을 매점매석해서 쌓아두고 값이 오르기를 기다리십시오.”
차생은 여우의 말대로 메밀 사십여 석을 사들였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속으로 차생을 비웃었다. 오래지 않아 큰 가뭄이 들어서 파종한 작물들은 죄다 말라 죽었고 오직 메밀만을 심을 수 있었다. 차생은 자기가 사들였던 메밀을 종자로 내다 팔아 열 배의 이문을 남겼다. 줄곧 이런 식으로 나가다보니 그는 갈수록 부유해져 비옥한 땅을 이백 마지기나 사들이게 되었다. 그는 무슨 일이든 전부 여우에게 물어서 결정했다. 여우가 보리를 많이 심으라는 해에는 보리가 풍년이 들었고, 기장을 많이 심으라는 해에는 기장의 수확이 좋았다.
이렇듯 파종하는 작물과 시기를 모두 여우가 결정해 주는 대로 따라서 하다 보니 차생과 여우의 우정은 해가 갈수록 깊어만 갔다. 여우는 차생의 아내를 형수라고 불렀고 아들은 자기 친자식처럼 예뻐하였다. 그러나 훗날 차생이 죽고 나자 여우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역주
1)화조절(花朝節):음력 이월 십오일은 백화(百花)의 생일이라 하여 화조절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몽량록(夢梁錄)’의 ‘이월망(二月望)’에 보인다. 어떤 책은 이월 십이일, 혹은 이월 이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2)조구(糟丘): 술지게미로 쌓은 작은 언덕이란 뜻. 술을 가리키는 말로 ‘신서(新序)’의 절사(節士)편에 나온다. “걸왕이 술로 연못을 만들었는데 배도 띄울 수 있을 정도였고, 쌓아놓은 술지게미는 칠 리 밖에서도 보였다(桀爲酒池 足以運舟 糟丘足以望七里)”라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해설 중국 문학에서 문인과 술에 얽힌 일화는 무궁무진합니다. 도연명의 외할아버지 맹가(孟嘉) 역시 용산낙모(龍山落帽)라는 유명한 고사의 주인공인데, 술에 흠뻑 취한 그가 바람에 모자가 날리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대장군 환온(桓溫)의 명을 받은 손성(孫盛)이란 유명한 문인이 이를 조소하는 글을 짓자, 맹가는 더욱 흥이 나 거기에 답하는 명문을 지어 동석했던 모든 이들을 탄복시켰다지요. 국화남매의 동생 역시 도씨 가문의 전통을 이어 술독에 빠져 살다 술 때문에 죽습니다. 그러나 도생의 죽음이 결코 추하거나 아쉽지 않은 것은 그가 죽은 뒤 취도(醉陶)라는 운치 있는 이름의 국화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일 겁니다. 세상의 모든 구속을 거부하고 거침없이 살다 죽은 그 상쾌한 한평생이 시처럼 아름답게 다가오는군요. 부혁(傅奕)이란 사람은 나이 여든다섯에도 항상 술에 취해 잠들곤 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부혁은 푸른 산과 흰 구름 사이에 살던 사람으로 술에 취해 죽었다(傅奕, 靑山白雲人也, 因酒醉死)”라는 묘지명을 지었습니다. ‘구당서(舊唐書)’ 부혁전(傅奕傳)에 나오는 이야기지요. 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술친구’라는 짤막한 이야기 한 편을 덧붙였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장두전(杖頭錢)이란 단어 역시 술 사는 돈을 가리킵니다. 완선자(阮宣子, 阮脩)라는 위진 시대의 명사가 나다닐 때마다 지팡이 끝에 항상 백 전의 돈을 매달아 두었다가 술집이 나타나면 혼자서 취할 때까지 질탕하게 마셨다는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任誕)’의 고사에서 비롯된 성어입니다. 한밭대 외국어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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