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 이상훈 8단 黑 양건 7단
제6보(85∼105)=이상훈이 좌하중앙에서 연발탄식으로 이단젖힘을 터뜨린 것은 주변이 뒤를 받쳐준 때문이고, 그래서 강공(强攻)은 그대로 통할 수밖에 없었다. 이쪽으로 불어나는 세력은 한 수만 가일수해도 곧장 집으로 굳어질 수 있는 호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에 비해 하변을 중심으로 한 흑의 중앙은 널브러질 대로 널브러져서 차라리 황당하기까지 하다. 한 수를 더 보탠다 해도 침공수단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기왕의 열세에다 열악한 환경까지 가세했으니 중중난국(重重難局)을 헤맬 수밖에 없다.
어쨌든 89로 좌중앙에 삭감수를 들이민 것은 상변 흑의 두터움을 배경으로 한 일리 있는 착점. 이상훈이 90으로 좌상변에서 튼튼하게 지키며 몸을 사리자 양건은 아예 91로 깊숙이 건너붙여 물불 가리지 않고 물고 늘어질 기세다. 그러나 92∼94 젖히고 단수치고, 96으로 막아대서는 삭감을 위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오히려 집으로 굳혀주는 데 일조를 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그런데 이상훈으로부터 예기치 않은 실수가 등장하면서 반상은 갑자기 요동을 쳤다. 양건이 97로 빠듯하게 밀었을 때 98로 젖힌 것이 화근이다. 양건은 99로 좌중앙에서 단수쳐 놓고는 101로 중앙에서 젖혔다. 축몰이를 위해 덫을 놓은 것이다. 이상훈은 할수없이 102∼104로 중앙에서 흑 2점을 취하면서 좌중앙에서 백 2점을 내줬다. 이를 빌미로 양건은 기대 이상의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따라서 애초 97로 밀었을 때 98로는 참고도 백1로 늘어 막고, 흑2 젖힐 때 백3으로 끊었으면 큰 탈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흑이 큰 전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세를 전반적으로 뒤집기에는 역시 역부족이다. 백이 상당한 우세 속에서 발생한 돌발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가령 팽팽하게 어울렸거나 어느 정도 균형이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해도 바둑은 끝났어야 했다.
여기에다 지금은 백이 선수를 뽑은 입장이고, 중앙의 백이 더더욱 두터워지면서 상중앙의 흑돌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이 그만큼 좁아진 것으로 백의 우세는 흔들림이 없다.
이건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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