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퇴치법은 감당치 못할 정력?
어떤 태사가 여우에 홀려 병이 들면서 몸이 수척해졌다. 도사에게서 부적을 얻어다 붙이기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등 온갖 수단을 다했지만 그래도 여우가 물러가지 않자, 그는 결국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여우로 인한 수난에서 벗어나길 희망했다. 태사가 길을 떠나자 여우도 그를 따라왔다. 태사는 엄청나게 무서웠지만 여우에게 대응할 방도가 없었다.
하루는 그가 탁주에서 여장을 풀게 됐다. 그가 묵고 있는 여관 밖을 지나가던 의원이 요령을 흔들어 손님을 끌며 자신이 여우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소개했다. 태사는 그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의원이 준 약은 바로 방사를 할 때 먹는 최음제였다. 의원은 그를 재촉하여 약을 먹게 한 다음 방 안으로 들어가 여우와 교접하게 했는데, 태사의 정력은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대단했다.
여우는 놀라고 당황하여 몸을 움츠리면서 제발 그만해 달라고 사정했다. 태사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더욱 용맹스럽게 돌진했다. 여우는 몸을 비틀며 빠져나가 보려고 애를 썼지만 도대체 몸을 뺄 수가 없었다. 한참 뒤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조용하기에 살펴보니 여우는 제 본색으로 돌아온 채 죽어 있었다.
이사씨는 말한다. 예전에 나와 동향이었던 아무개 서생은 평소 양물이 큰 것으로 유명했는데, 자기 평생 한번도 흡족한 적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사방에 인가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외진 여관에 묵게 되었다. 문득 한 여자가 나타나더니 문도 열리지 않았는데 어느새 방안까지 들어와 있었다. 서생은 그녀가 여우임을 짐작했지만 그래도 기쁘게 맞아들여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바지끈을 풀자마자 그는 바쁘게 진격해 들어갔다. 여우는 놀랍고 아파서 ‘깨갱’ 하고 우는 소리를 내더니, 매가 사냥감을 덮치듯 느닷없이 창문을 뚫고 달아났다. 서생은 여우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면서 계속 창 밖을 내다보며 달콤하고 느끼하게 교성을 질렀다. 하지만 여우는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았고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 서생은 정말 여우 퇴치의 맹장이로다! ‘여우를 물리쳐 드립니다’라는 방문을 내걸고 직업으로 삼아도 괜찮을 성싶다.
2. 약승(藥僧)―욕심이 지나쳐서
작다고 불평마라, 계속 커진다면…
제녕(濟寧)의 아무개가 우연히 교외의 절간 밖을 지나다가 유랑승이 해바라기를 하며 이를 잡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지팡이에 매달린 호로병으로 보아 흡사 약장수 같기도 했으므로 그는 농담처럼 질문을 던졌다.
“스님도 양기를 북돋는 방중단(房中丹) 같은 약을 파십니까?”
“있고 말고요. 정력이 달리는 사람은 힘이 좋아지고 음경이 작은 사람은 커지게 하는 약이 있습니다. 먹기만 하면 당장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밤새워 기다릴 필요도 없지요.”
아무개는 몹시 기뻐하며 그 약을 내달라고 요청했다. 중은 가사 자락을 헤치고 좁쌀만한 크기의 환약 한 알을 꺼내더니 그에게 삼키라고 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아무개가 자신의 음경을 만져보니 예전보다 삼분의 일 정도가 커져 있었다. 그래도 흡족하지 않았던 그는 중이 오줌 누러 자리를 비킨 틈을 타 가사 자락을 헤치고 두세 알을 움켜쥔 뒤 한꺼번에 그것을 삼켜버렸다.
잠시 뒤부터 음경의 피부가 찢어질 듯 부풀어오르면서 근육이 뿌리째 뽑히는 듯한 통증이 왔다. 목이 움츠러들고 허리가 낙타처럼 굽어졌지만 음경은 멈추지 않고 자꾸만 커졌다. 아무개는 공포심에 부들부들 떨었지만 스스로는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이윽고 중이 돌아와 그의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당신, 내 약을 훔쳐먹은 게 틀림없구려!”
그가 다급하게 환약 한 알을 꺼내 아무개에게 먹이자 음경의 팽창은 비로소 멈췄다.
아무개가 옷자락을 헤치고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니 그곳은 두 허벅지와 굵기가 똑같아져 흡사 세발솥 같은 형국이었다. 그는 모가지를 잔뜩 움츠린 채 어기적어기적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부모조차 자식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그의 모습은 벌써 달라져 있었다. 이로부터 아무개는 폐인이 돼 날마다 길가에 드러누운 채 시간을 보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희한한 꼴을 구경하며 지나쳐 갔다.
3. 호징음(狐懲淫)―음란을 징계한 여우
침대 밑 최음제는 귀신도 미워한다
아무개가 새 집을 샀는데 여우가 들끓는 바람에 고민이었다. 옷가지며 물건들을 어지럽히기는 예사였고 때로는 흙가루를 먹는 음식에 뿌려놓기도 하였다. 하루는 친구가 찾아왔는데 때마침 아무개는 출타 중이었다. 날이 저물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처는 맛있는 음식을 차려내 손님을 대접했다. 손님이 밥상을 물린 뒤 처는 계집종과 더불어 손님이 남긴 음식을 나눠 먹었다. 아무개는 평소 행동이 그다지 단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여우는 그가 간직해 둔 최음약을 언제인지 모르게 처가 먹을 죽그릇에 섞어 버렸다.
부인이 식사를 하는데 음식 안에서 장뇌(樟腦)와 사향(麝香) 냄새가 났다. 계집종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그녀는 모르겠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식사를 마치자 부인은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잠시도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참아도 시간이 흐를수록 열이 오르고 조갈증은 더해만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 안에 남정네라곤 아까녘에 온 손님뿐이었으므로 그녀는 방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손님이 누구냐고 묻자, 부인은 자신을 밝혔다. 손님은 또 용건을 물었고,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님은 마침내 그녀를 매섭게 물리쳤다.
“나와 당신 남편은 도덕과 의리로 맺어진 친구입니다. 나더러 그런 짐승 같은 짓거리를 하라니, 절대 그럴 수 없소이다.”
부인이 그래도 머뭇거리며 자리를 떠나지 않자, 손님은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내 친구의 학문과 덕행이 네년 때문에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구나!”
그는 창문 너머로 그녀에게 침을 뱉었다. 부인은 너무나 부끄러워 비로소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았다. 문득 죽그릇에서 풍겨 나오던 이상한 냄새가 머리에 떠올라 ‘ 혹시 최음제는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이 싸둔 최음약 봉지를 찾아보니 과연 탁자 위며 그릇 속에 약가루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그녀는 냉수가 이 약에서 깨어나게 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았으므로 얼른 물을 떠다 마셨다. 순식간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게 되자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경이었다. 침대 위에서 오랫동안 뒤척이던 그녀는 점차 밝아오는 하늘을 보자 환한 낮에 다른 사람 얼굴 대할 일이 더욱 걱정됐다. 마침내 그녀는 허리띠를 풀어 목을 맸다.
계집종이 발견하고 끌어내렸을 때는 숨이 거의 끊어져 가는 중이었다. 그녀는 아침나절이 돼서야 겨우 약간 기척을 할 정도가 됐다. 손님은 밤 사이에 슬쩍 돌아가 버리고 없었다. 아무개는 저녁나절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가 자리에 누운 처를 보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부인은 아무 말도 않고 그저 눈물만 머금을 뿐이었다. 계집종이 마님께서 목을 매달았다고 보고하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처에게 이유를 추궁했다. 처는 계집종을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사실을 고백했다. 이야기를 들은 아무개는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다 내 음탕함에 대한 징벌이니 당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소? 다행히도 올바른 친구를 두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후 어떻게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었을꼬!”
그는 이때부터 과거의 좋지 못한 행실을 완전히 고쳤고 여우의 장난도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사씨는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집 안에 독약을 감춰두지 말라고 서로 타이르지만 최음약에 대해선 말이 없으니, 이는 흡사 무기를 두려워하면서도 침대 밑에 그것을 숨기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최음제가 비상보다 무서운 것을 그들이 어찌 알꼬! 최음제를 숨겨 처첩하고만 놀아나도 귀신의 미움을 사게 되거늘, 방탕한 인간들의 음란한 행위야 약을 감춰두는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지 않을까.
■해설 오늘은 성(性)에 관한 짧은 이야기 세 편입니다. 인의(仁義)를 절대명제로 내세운 맹자조차 고자(告子)의 입을 빌려 “식욕과 성욕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다”(食色, 性也)라고 하며 이를 긍정했지요.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그래서 공자는 또 그렇게 중용(中庸)을 강조하고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외쳤나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마지막 편에 실린 이사씨(異史氏)의 논찬이 사뭇 각별합니다. 여기서 이사씨는 저자 포송령(蒲松齡)이 자신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중국 역사서를 보면 객관적 서술을 마친 뒤 저자의 논평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지요. 예컨대 ‘좌전(左傳)’은 “군자 가라사대(君子曰)”, ‘사기’는 “태사공 가라사대(太史公曰)” 하는 식으로 허두를 떼고 역사가 자신의 해설이나 평가를 덧붙이는 것이지요. 이는 역사가 단순히 사실의 기록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그들 나름의 역사적 전통에서 기인한 서술 방식인데, 공자가 ‘춘추(春秋)’를 편찬할 때 포폄(褒貶)을 강조하는 춘추필법(春秋筆法)을 성립시킨 데서부터 비롯됐습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지요. 역사가의 본질적 역할이란 정확한 사건 서술보다 역사적 사실의 해석에 있음을 공자는 남 먼저 실천했고 후대 역사가들은 그 취지를 충실히 계승했던 것입니다. 이런 형식은 훗날 소설에서도 차용돼 허구를 마치 실제처럼 강조한다거나 고사(故事)에 대해 논평을 가하는 데 이용되곤 했습니다. ‘이사씨왈’도 바로 그런 경우이지요. 식구들 몰래 집안에 에로 비디오나 최음제를 숨겨놓은 분들, 부디 포송령의 논평을 읽고 자신의 행위를 한번 반추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한밭대 외국어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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