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춘추시대 정(鄭)나라 무공(繆公)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자태가 빼어나고 행실이 방정했던 그녀는 무공의 총애를 독차지하며 자랐다. 그런 하희에게 훗날 거센 치맛바람을 휘날리게 만드는 운명의 밤이 찾아온다. 다음은 나이 15살에 맞이한 그 은밀한 밤의 한 자락이다.
“눈을 떠보거라.”
하희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그녀의 침대 옆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잘 차려입은 우의로도 감추지 못하는 강건한 체격과 관옥 같은 얼굴로 하희의 눈을 부시게 했다.
“누…누구세요?”
“참으로 아름다운 자태와 미색을 타고났구나. 네 미질(美質)을 사랑하고 중히 여겨 영원히 늙지 않고 평생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 줄 것이니 어서 일어나 옷을 벗거라.”
하희는 거역할 수 없었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부름을 받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희는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낯선 사내 앞에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눈부신 하희의 몸매는 어둠에서 더 빛났다. 하얀 피부는 광채를 머금고 있었고, 나비의 인분처럼 화사한 색채를 뽐냈다. 가는 목덜미에서 갸름한 어깨로 이어진 선에는 때이른 관능이 넘쳐났고, 풍만하고 탄력이 넘치는 가슴은 도저히 15살 소녀의 육체로 여겨지지 않았다. 잘록한 허리는 세류의 풍정을 두르고 있고 팽팽한 아랫배에는 윤기가 농밀했다. 이런 자태를 두고 편약경홍(翩若驚鴻)이요 영요추국(榮曜秋菊)이라고 했을 것이다.
하희가 침대에 눕자 남자가 알몸으로 올라왔다.
“지금부터 너를 위해 흡정도기라는 선인들의 방중비술(房中秘術)를 가르쳐 줄 것이다. 이를 잘 배워 행하면 지열지락의 도취경을 맛볼 수 있고, 양기를 취해서 음기를 보충하면 영원히 늙지 않고 젊음과 아름다움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니라.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머릿속에 깊이 새기고 행동을 기억해 두었다가 밤낮으로 비법을 닦고 연마하거라.”
남자의 손과 입술은 명필의 손에 들린 붓이 되어 하희의 몸을 구석구석 탐닉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몸에는 정·기·신이 있다. 이것이 생명의 근원이고 성의 뿌리니라. 그 정·기·신이 성적인 작용을 일으키게 되면 원기로 바뀌게 되고, 정신과 육체에 강한 힘을 갖도록 만든다. 그 강한 힘은 다시 양기를 발생시키니, 그 생성된 양기를 교접을 통해 흡취하는 것이 바로 흡정도기니라.”
“으음…!”
하희는 다리를 꼬며 신음했다. 남자의 손과 입술이 닿은 곳에서 정염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다. 온몸의 세포가 원초적인 욕망에 팔딱팔딱 뛰고, 실핏줄을 타고 전해진 희열은 피를 펄펄 끓게 만들었다.
“흡정도기의 최대 목적은 양질의 양기를 최대한으로 흡취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의 몸 구석구석에 제멋대로 퍼져 있는 원기를 한 곳으로 끌어모아 양기로 바꾸는 작업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사내라는 동물은 매우 충동적이니라. 원래 양이 지닌 성질 자체가 피동적인 음의 기질과 달리 왕성한 활동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충동적이고 왕성한 활동력을 지닌 상대의 본능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펴라. 오로지 한 가지 생각과 하나의 목적만을 지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사냥개처럼 너를 물고, 뜯고, 죽이고 싶어서 눈에 불을 켜고 날뛰도록 최대한 자극해라. 더 이상 상대가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비로소 문을 열어주고 포획의 단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남자는 하희를 황홀경으로 몰아넣었다.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둔덕을 향하는 그의 손길에 하희는 녹아 내렸다. 그가 유순한 강아지처럼 가슴을 핥고 깨물자 음란한 육욕에 빠져 방자하게 엉덩이를 들썩였다.
“교접이 시작되면, 경박하게 허리를 흔들거나 엉덩이를 들썩여 상대보다 앞질러 가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외려 네 음정(陰精)을 상대에게 빼앗기게 되고, 기와 혈이 고갈되면서 생명의 원천인 물줄기가 점점 허약해져 온갖 병마를 부르게 되고 종래에는 말라버린 우물처럼 될 것이니라. 몸을 뜨겁게 달구어 사내를 받아들이되, 이성은 항상 차갑게 식혀 두고 상대가 진입하면 숨을 깊이 마셔 아랫배에 이르게 하고, 상대가 나가면 슬그머니 내뱉어라. 그렇게 흡(吸)과 토(吐)를 반복하면 사내의 양기는 더욱 견고해지는 법이다.”
하희의 머릿속은 난잡한 환상들로 채워졌다. 사내를 끌어안고 그 건장한 힘을 소유하고 싶은 갈망에 몸부림쳤다.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뜨거운 애욕이 요원의 불길로 변해 무섭게 번져 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남자가 하는 말을 머리에 새겨 두려 애를 썼다.
“이제 포화상태에 이른 양기를 취해 양음(養陰·양기를 기름)의 단계에 들어야 한다. 남자에게 양질의 양기를 허락 없이 얻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평소 훌륭한 그릇, 즉 명기(名器)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 악기가 좋아야 천래의 묘음을 연주할 수 있듯이, 그릇이 좋아야 양질의 양기를 마음먹은 대로 퍼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명기라 함은 심천(深淺)이나 광협(廣狹) 등의 형상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산이 꼭 높기 때문에 존귀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듯이 여자의 그릇도 마찬가지다. 열려 있지만 닫혀 있는 것처럼 항상 긴축해 있음이 좋고, 부드러운 가운데 신축작용이 왕성하면 금상첨화다. 사내를 받아들일 때는 마치 용의 비늘이 움직이고 솔개가 날개를 치듯 수축시켜라. 그러면 상대는 황홀경에 빠져 미친 듯 날뛰고 발광하게 될 것이니라.”
하희는 불끈 치솟은 남자의 건장한 힘에 정복당했다. 그것은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싱싱한 충격이었으며, 성숙한 여자라는 징표를 새겨준 충격과 환희의 고통이었다. 하희는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갈매기처럼 격조 있는 신음을 흘렸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엉덩이까지 들썩이며 보조를 맞췄다.
“이제 몇 가지 금기를 알려 주겠다. 교합을 할 때 눈을 뜨고 상대를 바라보거나 불을 밝게 켜놓고 정사를 벌이면 어지러운 증세가 생기고 청맹과니가 될 우려가 있으니 삼가라. 춥고 덥고 바람이 세차게 불거나 큰 비가 내리는 날은 천지자연의 기가 바르지 못하니 반드시 피할 것이며, 술에 취했거나 음식을 많이 섭취했을 때, 그리고 걱정이나 노여움, 두려움, 기쁨으로 감정이 정상의 궤를 벗어난 날도 삼가야 한다. 사찰이나 무덤이 있는 장소를 피하고, 병중이나 병후 등으로 기의 순환작용이 원활치 못할 때는 음양이 조화를 이룰 수 없으므로 피함이 당연하다.”
하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로 도리질만 쳤다.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가 네 몸 안에서 용감무쌍한 전사가 되어 흉포하게 날뛰도록 만들어야 한다. 장수가 적진을 무너뜨리듯 힘차게 도리깨질을 하도록 격려하고, 용문의 잉어가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듯 위아래로 요동치게 코앓음을 흘려라. 갈매기가 너울을 타고 노닐 듯 방아를 찧을 때마다 들고 나는 것을 도울 것이며, 큰 바위가 바닷물에 잠기는 것처럼 네 몸 안으로 깊이 들어오도록 이끌면 필시 상대는 하루도 너를 멀리하지 못할 것이니라.”
하희는 닭이 홰를 칠 때까지 남자에게 온몸을 내맡기고 황홀한 상태에서 흡정도기를 배웠다. 30가지에 이르는 체위에서부터 회춘법과 도인술(導引術)에 이르기까지 모두 습득했다.
“훌륭하구나. 앞으로 내가 가르쳐 준 대로 남자와 교접을 맺게 되면 너 또한 서왕모(西王母)처럼 영원히 늙지 않고, 쾌락의 묘미를 맛보며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네가 아름답고 선택받은 여자이기에 주는 것이니라.”
남자는 그 말을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하희의 기쁨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온 몸이 얼얼하고 땀이 흥건했지만 용이 여의주를 얻은 것처럼 황홀한 기분에 오래도록 취해 있었다. 영원히 늙지 않고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다니 어찌 기쁘고 즐겁지 않으랴. 운명의 거칠고 뜨거운 회오리가 휩쓸고 간 그날 밤 이후, 사내의 그림자만 보아도 부끄러움으로 볼을 곱게 붉히던 청순한 소녀 하희는 희대의 요부로 표변했다. 48살이 되던 해에도 여전히 20살의 미색을 자랑하던 하희. 그가 말 많은 역사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팽조(彭祖)의 도인행기(導引行氣)를 습득한 초(楚)나라 대부 굴무(屈巫)를 만난 뒤였다.
■발문 성적 욕구란 무엇인가. 동·서양의 어느 전문가들에게 들어보더라도 식욕이나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빼놓을 수 없는 본능의 하나다. 종족 보존의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선가(仙家)에선 이 또한 장생에 이르는 길로 꼽는다. 완전한 음양화합으로 참다운 쾌락을 얻고, 그 쾌락으로 생명의 환희를 끌어내고, 그 환희로 원기를 북돋아 장생에 이른다는 것이다. 다만 감각적 쾌락만을 꾀한다면 삶을 보양하기는커녕 정기를 고갈케 하고 심신을 손상시켜 죽음에 이르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성욕을 술법으로 다루는 방중술의 함정이다. ‘흡정도기(吸精道氣)’를 완성한 춘추시대 하희의 삶은 어떠했는가. 하희는 청순한 이면의 어두운 본성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눈으로는 남자의 가슴을 꿰뚫어보고, 코로 남자의 속내를 맡아냈으며, 달콤한 입술은 사내를 유혹하는 촉수로 삼았다. 그리하여 이복오빠인 공자 만(蠻)과 근친상간을 맺으면서 음란한 치맛자락을 요란하게 펄럭이기 시작했다. 밤마다 애욕의 땀방울을 쏟아내며 정욕을 불태우기를 1년여. 하희는 만의 정기를 고갈시켜 저승바닥에 팽개쳤다. 다음 상대는 또 다른 이복오빠인 이(夷)와 자(子)였다. 두 사람의 침대를 바쁘게 오르내리며 하희는 열심히 흡정도기를 갈고 닦았다. 그녀의 현란한 요분질에 이성을 잃고 쾌락에 빠진 형제는 결국 칼부림까지 나누게 된다. 육욕의 향연이 계속될수록 하희는 아름다워졌고 몸매는 탄력을 더해갔다. 그 후 진(陳)의 대부 하어숙(夏御叔)과의 혼인을 시작으로 세 명의 남편과 두 명의 왕을 복상사라는 배에 태워 구만리 황천길로 배웅하며 눈물을 쏟았다. 당대 사람들은 “하희는 세 번씩이나 젊어졌다”고 후세에 전하고 있다. 무협·만화작가 이상남/무협·만화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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